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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리향 Oct 08. 2024

의식병이라는 점령군

   3학년이 되자 나는 은둔 생활을 청산하기로 했다. 비밀 프로젝트를 하듯이 2년 동안 준비 단계를 밟았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가 된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능동적으로 관계 맺는 방법을 배우기로 했다. 3학년

1학기가 끝나가는 어느 날. 나는 수업을 마치고 나온 창한이를 만나 학부 식당에서 같이 식사를 했다. 나는 잠시 친구를 빤히 쳐다보고 난 뒤에 고개를 숙인 채 중얼거리는 듯한 소리로 ”나 과대표에 나갈 거야 “라고 말을 했다. 창한이는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창한이보다 더 은둔 생활을 했기 때문이었다. 창한이도 대인관계가 활발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보다는 나았다. 나는 거의 창한이 하고만 어울렸다. 그런 내가 과대표에 나간다니 기가 차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창한이는 별말이 없었다.

  창한이는 나의 단짝이었다. 우리 둘은 죽이 잘 맞았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우리는 무료한 시간에 자주 유성에 나가 만화책을 보았다. 나도 창한이도 만화책을 좋아했다. 그런데 둘은 취향이 약간 달랐다. 나는 무협물을 좋아했고 창한이는 현대물을 좋아했다. 만화책을 읽다 보면 학교와 유성을 오가는 구닥다리 봉고차의 운행시간이 훌쩍 지나버리기도 했다. 그러면 우리는 걸어서 학교 기숙사로 돌아가야 했다. 당시에 유성과 대학 사이는 미개발 상태였다. 시골집이 한둘 있었고 도중에 미나리깡도 있었다. 미나리깡 옆에 놓인 그네에 앉아 우리는 밤 하늘을 보며 속에 있는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창한이는 내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친구다. 만약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누군가 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티켓이 나에게 주어진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그 티켓을 창한에게 사용할 것이다.

  그런 친구에게 무심코 고백하듯이 던진 한마디 선언이 내 삶에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를 몰고 올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것은 플라톤도,  칸트도, 뉴튼도 전혀 예측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 순간을 어떻게 묘사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주 짧게 나타났는데 그건 몸이 나에게 보내는 일종이 경고였다.  아주 강력한 경고였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말라는 경고였다.  내 안의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슬로모션처럼 짧게 지나간 순간 속에서 나는 창한의 손을 보았다.  그 움직임이 세세하게 들어왔다.  아주 잠시 동안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증상은 3학년  2학기가 시작되고,  과대표에 출마하고,  온몸을 달달달 떨면서 사람들 앞에 포부를 말하고,  과대표에서 낙선하는 과정에서 아주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다.  

  증상은 이랬다. 내 의식이 상대방의 움직임 특히 손짓에 매몰되었다. 분명 무의식에 의해서 처리되거나 의식에 의해서 처리되더라도 아주 잠시 할당되어야 할 작업이었다. 그런데 나의 의식이 그 작업에 온통 매달렸다. 나의 의식이 상대방의 손짓을 쫓아다녔다. 곧 나의 이런 이상 행동을 상대가 인식하면서 그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워진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식사할 때 심각해진다. 상대의 젓가락질 숟가락질에 내 의식이 매몰되면 상대는 자연스러운 식사가 불가능해진다. 이내 둘 사이에 어색한 기류가 형성된다. 나는 허락도 없이 점령군처럼 행동하는 이 불온한 의식을 내쫓으려 갖은 노력을 기울여 보았지만 불가능했다. 이 불온한 점령군은 어느 모로 보나 사람의 감정과 행태가 동일했다. 슬픈 장면을 보면 허락도 없이 감정이 폭발하기도 한다. 누군가와 마주한 상황에서 내 허락도 없이 이 녀석이 내 의식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만다. 이 녀석은 내 무의식이 보내서 나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대인관계를 엉망으로 만드는 망나니였다.

  이건 분명 심각한 오작동이었다. 공학에서 말하는 시스템 말펑션 상태에 이른 것이다. 무협 만화에서 말하는 주화 입마였다. 나는 이런 나의 상태를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당시는 정신병을 단순한 병 이상으로 인식하던 시대였다.      


   ”나 정신병 걸렸어! 제길! 병원에 가봐야겠어! “     


 대수롭지 않게 말할 수 있는 그런 시대가 전혀 아니었다. 꽁꽁 싸매고 전전긍긍해야 하는 시대였다. 정신과에 가서 상의를 해보았더라면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원인을 분석하고 의사는 결론을 내릴 것이다. 리셋을 당장 중단하라. 그렇지 않으면 당신을 더 큰 재난에 봉착할 것이다. 지금까지 나타난 증상은 천천히 치료해 보자고 말해주었을 것이다. 당시는 초기였기 때문에 적절히 도움을 받으면 금방 해결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시는 그럴만한 시대가 아니었다. 정신병 하면 그냥 병이 아니라 기피와 혐오의 대상으로 여겨지던 시대였다.

  증상의 심각함은 나에게 더 이상 나아가지 말고 되돌리기 버튼을 누르라 말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리셋 버튼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더욱 채근했다. 그러자 증상은 점점 악화되었고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를 고통의 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고 말았다. 그와 유사한 또 다른 증상은 그보다 더 심각했다. 두 번째 문제의 증상도 첫 번째와 유사했다. 나의 의식이 온통 상대에게 집중된다는 점에서는 동일했다. 하지만 상대를 직접 마주하지 않은 상태에서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내가 사람들과 같은 공간 안에 있고 침묵이 흐르는 상태에서 누군가를 의식하게 되면 그 누군가가 나의 의식을 모두 빨아들였다. 가령 사무실에서 말없이 각자의 업무를 보아야 하는 상황이나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상황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이런 침묵이 흐르는 상황에서 누군가를 의식하게 되면 거의 모든 내 의식이 상대의 미세한 움직임과 소리를 쫓아다녔다. 이것 역시 무의식의 작용이었다. 점령군처럼 행동한다는 점에서 첫 번째 문제와 동일했다.

  의식은 내가 감지할 수 있는 두뇌 활동이다. 그리고 그 의식에 작업 내용을 로딩하는 주체는 이성과 무의식이다. 일반적으로 두 문제의 상황에서 의식의 대부분은 자신의 생각 즉 이성이 차지한다. 무의식에 점령당하지는 않는다. 상대방의 행위에 대한 정보를 처리하더라도 이성이 해야 하는데 나의 경우는 무의식이 이를 강압적으로 처리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상대방의 행위에 대한 정보를 처리하려는 무의식이 나의 의식을 압도하면서 나는 도저히 내 생각을 할 수가 없다. 나의 이성은 이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역부족이다. 미치고 환장할 일이다. 한마디로 쓰레기 같은 작업이 무의식에 의해서 의식에 로딩되면서 다른 유용한 작업이 처리 불능상태에 빠지고 만다.

  이는 분명 정신병으로 특수한 상황에서 무의식에 의해 특정 의식에 지배당하는 강박증의 일종일 것이다. 굳이 병에 이름을 붙이자면 의식병이라 칭해야 할 것이다. 나는 이 둘을 그냥 로딩 문제라 불렀다. 첫 번째를 로딩 문제 1, 두 번째를 로딩 문제 2라 하겠다. 로딩 문제가 발생하면 나는 물론이고 상대방은 아주 곤혹스러워졌다. 곤혹스러운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누군가는 도망가야 했다. 나는 문제를 정면 돌파하길 원했고 도망자가 되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대부분 상대방이 자리를 피했다. 4학년 때 나는 대학원 입시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서 도서관에 상주했는데 당연히 내 주변 상당한 공간은 초토화되어버렸다.

  나는 두 문제에서 벗어나려 무수히 몸부림치고 발버둥 쳤다. 두 문제가 파놓은 구덩이 속에서 빠져나오려 갖은 노력을 퍼부었지만 부질없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나는 분명 과학자인데 이 문제의 해결에 과학적인 접근을 등한시했다. 원인을 분석하고 결과를 분석하고 둘 사이에 인과 관계를 규명하는 절차를 밟아야 하는 데 전혀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 참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이 문제를 고차원적인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그건 심히 멍청한 생각이었다. 거의 모든 심각한 문제는 고차원적인 것이 아니라 저차원적이다. 문제가 심각할수록 저차원적이다. 그러나 당시 나에게는 아직 그런 혜안이 없었다.

  석가탑을 예로 들어보자. 탑에 문제가 있을 때 상부에 문제가 있으면 고차원적인 것이고 하부에 문제가 있으면 저차원적인 것이다. 이때 탑의 상부에 문제가 있으면 상부의 일부를 들쳐내고 고치면 그만이다. 그런데 만약 탑의 하부에 문제가 있다면 문제는 간단치가 않다. 나는 이 문제가 상부에서 발생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면 해결책을 찾을 수가 없다. 문제의 원인은 상부뿐만 아니라 하부와도 연결되어 있는데 계속해서 상부만 들여다보며 해법을 찾으려 노력했다. 한마디로 헛다리를 심하게 짚은 것이다. 그로 인해서 30년 동안 허송 생활을 했다.

  하부란 육체적인 부분을 포함한다. 사람의 정신은 육체라는 땅 위에 자라는 꽃과 같다. 육체라는 땅 위에 정신의 하위 부분이자 꽃의 뿌리인 무의식이 자리한다. 육체와 무의식은 서로 긴밀하게 상호 작용한다. 정신의 상위 부분인 의식은 꽃대와 꽃이라 할 수 있고 무의식과 소통한다. 나의 문제는 땅, 뿌리, 꽃대 등 전반적인 부분에 걸쳐 관련되어 있었다. 두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나는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원시적인 접근을 해야만 했다. 세상에 만약이라는 말은 별로 도움이 안 되지만 위안을 찾기 위해서 만약을 가정한다면 그리고 그 가정 속에서 내가 직면한 문제가 하부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좀 더 일찍 눈치만 챘었더라면 아마도 오래전에 해결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내 고통의 시간도 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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