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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리향 Oct 08. 2024

프롤로그

 대학에 입학하고 나는 내 영혼을 새로 장만하기로 마음먹었다. 후줄 그래 한 낡은 영혼을 버리고 근사한 새 영혼을 장만하기로 했다. 헌 것을 새것으로 바꾸려면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영혼을 새로 장만하는 데도 대가가 필요했다. 그러나 당장 지불할 수 있는 대가는 아니었다.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조금씩 조끔씩 지불해야

했다.

  피렌체의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 미켈란젤로의 미완성 작품을 본 이후로 새 영혼을 장만하는 일이 조각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조각처럼 나도 영혼을 원하는 형태로 다듬어 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영혼을 새로 장만하는 일이 생각처럼 깔끔하지 않았다. 조각 작업처럼 소음과 잡음이 가득했고 먼지가 풀풀 날릴듯한 소동이 뒤를 따랐다. 요란하고 지저분한 과정이 조각이라는 작업에 잘 녹아들어 있었다. 나는 내 영혼을 조각하는 조각가였다.

  그러나 나는 미켈란젤로와 같은 천재 조각가는 아니었다. 내가 조각에 소질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초보 조각가로서 조각 솜씨가 형편없었을 뿐만 아니라 조각하는 방법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제든지 끌과 망치를 집어 들었다. 영혼 조각가에게 끌과 망치는 고통이다. 나에게 미켈란젤로와 같은 천부적 재능은 없었지만 나는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쓸만한 인내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인내력이 30년 넘는 기간 동안 번번이 끌과 망치를 다시 집어 들도록 만들었다. 그 사이에 나는 수도 없이 고통의 오름을 올랐다가 내려와야 했다.

  영혼을 새로 조각하는 것이 매우 거칠고 무모한 시도였다는 사실을 고백해야 할 것 같다. 30년을 훌쩍 넘겨버렸다는 것이 그 사실을 말해준다. 영혼을 새로 조각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나는 그 안에 어떤 위험이 내재되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공학자로서 실험을 할 때에도 이런 일은 자주 발생한다. 머릿속으로는 실험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질 듯하다. 그러나 막상 닥치고 나면 어딘가에 지뢰가 매설되어 있다. 그리고 그 지뢰를 해체하는 것이 일정의 대부분을 좌우하게 된다. 나는 새 영혼을 원하면서 어딘가에 지뢰가 매설되어 있을 거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의 시도에는 대형 지뢰가 매설되어 있었고 그것을 해체하는 데는 작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 지뢰는 내 정신에 발생한 오류였다. 흔한 정신병도 아니었다. 정신과 의사들도 낯설어했다. 굳이 명명하자면 의식병이라 칭할 수 있는 데 나는 그냥 로딩 문제라고 불렀다. 나는 이 로딩 문제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나름대로 원인을 파악하려 했지만 실체를 전혀 그려내지 못했다. 나는 의식병 혹은 로딩 문제 앞에서 동아줄에 단단히 묵인 어린 코끼리를, 쇠사슬에 묶여 옴짝달싹 못하는 가여운 생명체를 떠올리곤 했다. 그만큼 막막했다. 나는 동아줄을 끊고, 쇠사슬을 풀어헤치는 해방을 원했다. 해방을 쟁취해서 내가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래서 나는 무수히 많은 시도를 했지만 번번이 주저앉고 말았다. 나는 그때마다 다시 일어났다. 나를 일으켜 세운 것은 실낱같은 희망의 불빛이었는데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나는 눈을 부릅떠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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