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리향 Oct 08. 2024

영혼을 조각하는 조각가

피렌체의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가면 처음 관광객을 맞이하는 것은 미켈란젤로의 미완성 작품들이다. 그 미완성 작품을 통해서 조각가가 단순한 돌덩이에서 어떻게 형상을 조각해 내는지 알 수가 있다. 나는 그 미완성 작품들 앞에서 꽤 긴 시간을 머물렀다. 나도 조각가라는 생각이 나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 조각처럼 나도 영혼을 원하는 형태로 조금씩 다듬어 가고 있었다. 필요 없는 부분을 덜어내면서 원하는 모습이 드러나기를 기대했다. 

  미켈란젤로의 앙숙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조각가를 제빵사와 같다고 조롱했다. 가루를 풀풀 날리면서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이 서로 닮았다고 비웃었다. 그 말에 미켈란젤로는 발끈했다. 어떤 단면 하나만을 가지고 조각 전체를 깎아내리려는 그의 불순한 의도에 분노를 느꼈다. 그런데 다빈치가 조롱거리로 삼는 데 사용했던 단면으로 보더라도 영혼을 새로 장만하려는 나의 작업은 조각과 닮아 있었다. 나의 작업에도 조각가의 작업처럼 먼지가 날릴법한 소음과 소동이 동반되었다. 새 영혼을 장만하는 일이 돌덩이를 조각하는 것과 이모저모 흡사했다. 나는 내 영혼을 조각하는 조각가였다. 

  천재인 미켈란젤로는 돌덩이를 조각하기 전에 어떤 작품을 만들지 이미 구상이 확실했다. 어떤 방식으로 조각을 해야 하는 지도 누구보다 명확했다. 그러나 나는 미켈란젤로와 같은 천재 조각가는 아니었다. 나는 영혼을 조각하려는 초보 조각가로서 모든 것이 서툴렀다. 나는 조각 방법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으며 작품의 구체적인 형태도 명확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제든지 끌과 망치를 집어 들었다. 기약이 없는 작업이었지만 나는 근사한 작품을 만나는 간절한 꿈을 끝내 버리지 못했다.

  리셋버튼을 누르면서 영혼 조각가의 길에 들어섰을 때 주요 관심사는 두 가지였다. 첫째, 원활한 대인관계였다. 나는 넉넉잡아 10년이면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 기간에 두 번째 관심사인 세상을 바라보는 혜안을 키우기로 했다. 그러나 로딩 문제가 터지자 대인관계가 뒷전으로 밀려나 버렸다. 로딩 문제를 안고 원활한 대인관계를 다룰 수 없었다. 심각한 일정 차질이 불가피했다. 나는 기계가 아니기에 타격을 받으면 회복기가 필요했고 그 시간도 꽤 길었다. 나는 심리적 충격을 받은 자신을 추스르느라 원인 분석의 시간조차 갖지 못했다. 문제의 원인이 상부에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점도 있지만 나를 일으켜 세우는 것에 급급했다.

  영혼 조각가로서 로딩 문제 해결이 가장 급선무였다. 로딩 문제로부터 해방을 쟁취하지 못하는 한 나의 조각은 아카데미아 미술관의 미완성 작품들처럼 미완으로 남을 것이었다. 조각가에게 미완성 작품은 버리면 그만인 돌덩어리에 불과하다. 그러나 나는 나를 버릴 수 없었다. 나는 로딩 문제를 안은 채 미완성 작품으로 살아갈 수도 없었다. 그건 사회에서 격리된 채로 살아가거나 거의 격리된 채로 산다는 것을 의미했다. 나는 작품을 미완성으로 방치할 수 없었고 끌과 망치를 내려놓지 못했다. 영혼 조각가에게 영혼을 조각하는 끌과 망치는 고통이다.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서 나는 고통의 오름을 반복해서 오르고 또 올라야 했다. 나에게는 미켈란젤로와 같은 천부적 재능은 없었지만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쓸만한 인내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인내력이 번번이 끌과 망치를 다시 집어 들도록 만들었다.

 나는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서 반드시 로딩 문제로부터 해방을 쟁취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 무의식과 치열하게 전투를 벌여야 했다. 내부와 투쟁이 시작되었고 끝이 없는 고통의 오름을 등반해야 했다. 내 고통의 오름은 대부분 내부적으로 벌인 치열한 싸움의 흔적이었다. H 중공업에서 주로 벌어진 외부적인 싸움은 내부적으로 벌어진 치열한 전투에 비하면 아주 순한 맛이었다. 내부적인 싸움은 매우 치열했고 나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었다. 외부적인 싸움은 내부적인 전투에 비하면 쉽게 종료되었다. 반면에 내부적인 싸움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죽음에 무덤덤해질 만큼 나에게 고통을 안겨 주었다.

  내부적 전투의 산물을 오르내리면서 나는 코끼리를 떠올렸다. 코끼리는 어릴 적에 다리를 묶어 놓으면 나중에도 벗어나지 못한다고 한다. 나는 로딩 문제라는 동아줄에 단단히 묶여 있는 한 마리 코끼리였다. 하지만 나는 영원히 코끼리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단단한 동아줄을 끊어 내고 어디든지 가고자 하는 곳으로 내달릴 수 있기를 원했다. 나는 끝까지 한번 해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런데 그런 의지는 동력이면서도 집착을 내포하고 있다. 나는 집착의 함정에 빠져들었고 집착하면 할수록 로딩 문제의 수렁 속으로 더 깊이 빠져들었다. 

   미국의 한 유명 여배우는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을 더 이상 거부하지 않고 그냥 순순히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먹었노라고 고백했다. 그녀가 뒤늦게 깨달은 것처럼 벗어나려는 집착은 문제 해결에 도움 되지 않는다. 나에게도 그러한 마음가짐이 필요했지만 그것을 깨닫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흘려보내야 했다. 나는 그런 자세는 포기라는 우매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밀어붙이는 동력도 필요하지만 한편으로 집착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는 작업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쉽지는 않지만 의지에서 동력은 취하고 집착은 버려야 한다. 고도의 줄타기가 필요하다. 

이전 04화 고통의 오름을 등반하는 시지프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