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코끼리는 다리를 옭아맨 동아줄을 끊어 내기 위해서 부단히 몸부림친다. 나도 로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갖은 몸부림을 쳐야 했다. 그러나 성과는 신통치 않았다. 코끼리와 처지가 다를 바 없었다. 나는 호흡과 명상에서 해결 가능성을 기대했다. 나는 해결책이 상부에 있다는 생각에 매우 오랫동안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머물러 있었고 끊임없이 정신적인 방면으로 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호흡법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나는 두 개의 호흡법 단체에서 활동했었다. 처음 접한 단체는 근육 이완과 피로 해소에 집중하는 단체였다. 나는 이러한 운동법은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고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이 단체야말로 호흡법의 기능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다음에 들어간 단체는 첫번째 단체와 거의 모든 면이 유사했지만 좀 더 정신 쪽에 치우쳐 있었다. 그러나 정신적인 부분에서 터무니없는 주장을 내세웠다. 수련을 통해 자신들이 신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는 망상에 빠진 단체였다. 천계에 가면 예수나 석가는 자기들보다 레벨이 낮아서 허드렛일이나 하고 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들은 호흡법의 용도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 스님들에게 호흡법은 깨달음을 얻기 위한 기초 작업이다. 깨달음을 위해서 무수한 질문을 던져야 하는데 그러려면 우선 마음의 잡념을 제거한다. 스님들에게 호흡법은 고결한 영혼을 얻기 위한 도구이다. 그러나 그들은 호흡법만 완성하면 고결한 영혼이 알아서 찾아온다고 크게 착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 어쩌면 고결한 영혼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는지도 모른다. 내가 다닌 지부의 책임자로부터 방금 우주 끝에 잠깐 다녀왔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자신은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알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들은 관심법에 매력을 느끼는 듯해 보였다. 하지만 관심법도 그것에 끌리는 심리도 허무맹랑할 뿐이다.
다른 사람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재주에 있어서 나는 그들보다 차라리 무당에게 훨씬 믿음이 갔다. 나는 무당의 신기는 실체가 있다고 어느 정도 인정을 한다. 인간은 상대방의 내부를 이해하거나 분석하는 데 두 가지 방식을 사용한다. 첫 번째가 인터폴레이션이고, 두 번째가 익스트라폴레이션이다. 인터폴레이션은 몇 가지 드러난 사실로부터 상대방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작업이다. 가령 상대방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를 판단할 때, 눈에 보이는 상대방에 관한 몇 가지 사실로부터 상대방의 속내를 짚어내려 한다. 그것이 인터폴레이션이다. 이는 인간관계에서 누구나 시도하는 일이다. 인류학에서는 인간이 두뇌를 발전시킨 가장 커다란 이유가 인간관계를 잘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인간관계를 잘하려면 상대방의 내부 상태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우선 인터폴레이션을 잘해야 한다. 인터폴레이션이 상대방의 내부 상태를 파악하는 데 사용된다면 익스트라폴레이션은 상대방이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지를 예측하는 데 사용된다. 결국 , 인간은 상대방의 내부상태가 어떻고 상대가 어떻게 행동할지를 예측하기 위해서 두뇌를 고도로 발달시킨 것이다. 무당은 적어도 인터폴레이션 기능에 특화된 사람이다. 몇 가지 사실을 놓고도 상대방의 내부 상태를 귀신같이 알아내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다. 진정한 무당이라면 그렇다.
무당과 같은 신기를 지닌 도박사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라스베가스의 카지노에 한 일본인 도박사가 찾게 되는데 그는 매일 거액을 땄다. 카지노 측은 사정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카지노 측은 그가 무슨 불법적인 수를 쓰는지 카메라 녹화를 통해서 감시를 해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조사를 해봐도 그는 전혀 불법적인 수를 쓰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이 도박사에게 신기에 가까운 능력이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고 방치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카지노 측은 어떠한 조건에서 그의 신기가 방해를 받는지 파악하기 위하여 다양한 시도를 했다. 어느 날 한 여자를 도박사 옆에 붙였다. 그러자 그가 더 이상 신기를 발휘하지 못했다. 카지노 관계자는 그것이 무엇일까 조사를 하던 중에 그녀가 바른 향수에 그가 반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 그 도박사는 신기를 발휘하지 못하게 되자 더 이상 카지노에 나타나지 않았다.
무당이든 도박사든 신기는 외란에 매우 취약한 면이 있다. 신기의 바탕이 극도의 민감함이기 때문이다. 센서가 민감하면 충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무당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무당의 신기는 가까스로 카드를 쌓아 올려 만든 성과 같다. 수많은 우연과 행운이 겹쳐 쌓은 성인지라 어떻게 쌓았는지조차 과정을 알 수가 없다. 그 카드의 성은 간단한 외란에도 쉽게 무너지는 데 다시는 예전의 형태의 성을 쌓을 수가 없다. 무수한 우연과 행운이 거기에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무당이 신기를 잃어버리면 완벽한 회수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무당은 자신의 신기를 잃지 않기 위해서 세심한 관리를 해주어야 한다. 무당은 외란이 충만한 일상으로부터 적당히 격리되어야 한다. 무당은 신기를 잃어버려도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어느 정도 실력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예전의 날카로움을 다시는 찾지 못한다. 도박사는 자신의 신기를 다른 곳에서 발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의 신기는 외란 앞에 언제든지 무력화될 준비가 되어있다.
나도 한때나마 잠시 날카로운 인터폴레이션 능력을 보인 적이 있었다. 주변 사람들의 행동거지를 유심히 살펴보면 그 사람의 상태가 눈에 들어왔다. H 중공업에 있을 때, 언젠가 한 직장 선배에게 “지금 이러이러한 기분이 들지요“ 라고 한 마디 툭 던졌다. 그는 화들짝 놀래서는 나를 분노의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 모습에 나도 놀랐다. 그때 이런 능력을 함부로 밖으로 드러내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밖으로 드러내는 순간 상대방을 두렵게 만든다. 그런 능력에 많은 시간을 쏟을 필요는 없다고 판단을 내렸다. 관심을 줄이자 날카롭던 나의 인터폴레이션 능력은 이내 무뎌졌다.
누구에게나 상대방의 내부를 정확하게 들여다보는 능력은 소중하다. 그러나 모두가 무당이 될 필요는 없다. 인간관계를 위해서 상대방의 내부를 속속들이 들여다보아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상대방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상대방의 상태를 알았다면 적절히 대응해야 한다. 그런 대응 능력이 더 중요하다. 어차피 인간관계는 대응 능력에 의해서 결판이 난다. 아무리 분석을 열심히 하면 무엇하는가? 대응이 엉터리면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다. 물론 훌륭한 분석이 전제되어야 좋은 대응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관계를 위해서 영험한 무당처럼 신기에 가까운 분석 능력을 반드시 지녀야 하는 것은 아니다. 반면에 대응 능력은 뛰어나면 뛰어날수록 좋다.
나는 새 영혼이 이 두 가지 능력을 조화롭게 보유하기를 바랐다. 적당한 분석능력에 최상의 대응 능력을 갖추기를 바랐다. 한편, 무당이 외란과 거리를 두어야 하는 것과 달리 새 영혼은 외란이 난무하는 세속의 삶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밝게 빛나야 했다. 내가 기대하는 새 영혼은 바람에도, 소리에도, 번개에도, 천둥에도, 그리고 세상 온갖 외란에도 흔들리지 않기를 바랐다. 나는 흔들리지 않은 근사한 영혼을 갖고 싶었다. 그런 영혼을 품에 안으려면 하루라도 빨리 로딩 문제에서 해방되어야 했지만 갈 길이 너무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