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자신이 하는 말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깨달음의 영역까지 이른 것은 아니었기에 늘 상대에게 재차 물으며 확인했다. 맞장구를 쳐주면 좋아하며 더욱 떠들어대는 것, 그것이 그의 대화 방식이었다. 그는 언제나 흥겨운 음악을 들었다. 그리고 그 음악은 언제나 한 명의 남성과 한 명의 여성이 등장하는 듀엣곡인 모양이었다. 파란 눈의 소녀, 적갈색 머릿결을 지닌 남자의 산길을 걸어가며 들리는 분위기를 풍기는 노래는 그가 즐겨 듣는 노래였다. 노래의 분위기가 노을을 그려낼 즈음이면 마음 한구석이 슬퍼졌다. 딱히 모난 것도 넣어둔 적 없는 마음인 터라 상처 날 곳도 아물어질 곳도 없을 터였는데, 그의 마음은 그렇게 이유 없이 무언가를 잡기 위한 공허함을 품고 있었다.
평소 마시지 않는 술에 거하게 취한 그는 집에 들어가 전신거울 앞에 섰다. 거울 안의 자신이 말을 건다는 영화 속의 이상한 클리셰 따위의 일이 일어나려나. 그렇게 5분 정도 거울을 뚫어져라 쳐다본 그는 이내 현기증을 느껴 그대로 주저앉았다. 서 있는 것은 다리 아픈 일이기도 하고, 거울 속의 나라면 내가 앉아서 당신을 상대한다고 해도 그다지 기분 나빠하진 않을 테다. 거울 속의 나라면 예의 없는 나라도 이해해 주겠지. 그게 '나'니까.
그렇게 헛소리로 궁시렁댈 즈음 거울 속의 그는 조금 다른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심지어 머리카락이 길기까지 했으며 얼핏 보았을 때 여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는 거울 속의 남자와 오늘의 일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친구와 술을 먹던 중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보고 있었는데 괴한이 다가와 그의 머리를 내려쳤던 일. 깜짝 놀란 그는 반사적으로 주먹질을 하며 괴한을 제압했고, 맞은 것 이상으로 때려눕혀 피투성이로 만들었다. 괴한이 기절하기 전 “당신이 먼저 어깨를 치고 그냥 갔다고….”라고 한 것 같은데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먼저 때린 쪽이 잘못했다고 생각한다며 거울 속 남자에게 “그렇지?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지?”라며 질문인지 답안지 체크인지 모를 말들을 뱉어냈다.
남자는 대화가 흡족했다. 그는 순종적이며 언제나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 자신의 대답을 확인받는 기분은 인정받는 기분이 들어 좋고,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아닌지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야기의 재미를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의 각색은 괜찮다고 생각했고, 내가 더한 어느 정도의 각색은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숨이 죄여올 정도로 무언가 답답하게 느껴져 연신 고개를 끄덕이던 거울 속의 남자를 바라봤다. 남자는 숨이 가빠하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리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말을 내뱉었다. “... 일어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잠에서 깼다. 전신거울 앞에 쓰러져 자고 있었던 그는 떠오르지 않는 남자의 얼굴을 상상하며 침대로 향했다. ‘그는 나와 무척 닮아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 설명은 못하겠지만.’그렇게 생각하며 잠을 청했다. 그 이후의 잠에선 꿈을 꾸지 않았다. 아마도 긴 시간 동안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의 집에는 진정한 의미의 거울이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없는 남자는 평소처럼 시간을 축내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