百日紅:
그 향은 너무 향기로워 때로 독하기도 했다. 몸에 악한 성분이 없더라도 그 중독성 하나만으로 독성이 강한 독- 마치 마약 같은 그 향에 중독되면 십중팔구 죽음을 피하기 어려웠다. 그게 전해지는 전설이자 우리 광부들의 편찬 속 지혜였다. 돌을 캐면 캘수록 구멍은 좁아지고 탈출구는 더 더 어두워진다. 미약하게 빛을 내는 잔등 하나에 의지한 채 더 깊은 돌로 들어가면 어느샌가 주변 동료들이 하나 둘 없어지고 나 혼자였다. "나만 있고 싶고, 남아 있고 싶다." 송골 맺힌 땀방울을 걷어내며 늘 혼잣말로 지껄이던 말이었는데, 이제는 정말로 혼자가 되었다.
향은 매혹적인 형태로 미각을 자극해 온다. 중독이라 함은 그 자체에 독이라는 속성이 붙는 만큼 직접적으로 몸에 가하는 해가 없더라도 몸을 빠르게 최악의 상황으로 만들어버리는 특징이 있다. 향기 나는 꽃에 코를 갖다 대니 기분이 좋아진 선조들은 여가시간에 꽃에 코를 꽂고 시간을 보냈다. 꽃은 먹을 수도 없고 딱히 쓸 곳도 없었지만 향기 하나로 엄청난 사치품이 되었다. 점점 꽃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져 식사를 하고, 일을 하는 시간 외에는 완전히 꽃에 코를 처박고 그렇게 좀비처럼 고개를 웅크린 채 꽃밭에 널브러져 있었다.
우리들은 꽃을 위해 전쟁을 했고, 꽃을 위해 살았다. 그게 우리들의 죽음이었다.
죽음이란 태동하는 삶의 시작불이자 완전한 어둠, 살아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을지 모르지만 죽어야 할 이유 또한 어디에도 없다. 그게 내가 살아있는 유일한 이유였을까. 홀로 남겨진 이유인 걸까. 홀로 남겨진 것이라면 이토록 처절하게 살아감을 누가 알아주지? 사실 고민거리도 아니다. 살아갈 이유는 애초에 없다. 사는 건 재미없지만 그렇다고 죽을 때까지 돌을 파면서 대화할 사람 하나 없다는 건 심심해서 죽을 지경인 이야기였다.
무한한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발견한 요깃거리는 뇌를 이용한 장난이었다. 안면 근육의 안쪽 어딘가, 그러니까 마치 뇌가 있을 법한 그 자리에 힘을 주면 순간적으로 뒤통수와 앞통수가 쩍 갈라져 분리되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된다. 그 기분은 너무나도 오묘하고 중독성 있는 것이어서 매혹감을 경험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빠져나오기 힘든 매력이 있었는데, 이 장난을 하면 우주 한가운데로 보내지고 다시 빛의 속도로 지구로 돌아오곤 했다.
나는 이것을 연습했다. 뇌의 신경가소성을 믿었기에 연습에 연습으로 우주로 가는 시간을 늘렸다. 뇌를 찢는 상상을 뇌로 연습하다니, 이 자체만으로 유쾌한 상황이지 않나.
쏜살같이 우주로 산책 갔다 올 때 보였던 것은 늘 흰색의 빛이었다. 투명하지도 않고 뚜렷한 흰색이지만, 눈 부시지는 않은 안정감 있는 흰색, 어린 시절 줄기차게 읽었던 <모비딕>에서 흰색은 그렇게 공포적인 색으로 묘사되는 듯했지만, 그 작자도 이 따뜻한 흰색 빛을 보면 생각을 바꿀 것이라고 생각했다.
순진무구 자체의 순수의 백白이 내 시야를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질 때 즘 동굴과 우주 중 어디가 진짜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나는 어느새 빛이 되어 별과 별 사이를 오가고, 내 자녀들은 별을 잉태하여 창조해내고 있었다. 우주는 바다였고 나는 빛이라는 이름의 물고기였다.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고 인간들이 말하던 우주의 그 공백은 사실 돌로 가득 차 있었다. 사람들과 사람들이 만든 지구의 물건들은 들어갈 수 있지만 영혼은 통과하지 못하는 돌로 가득 찬 거대한 감옥. 그래서 나는 꿈을 꿨다. 꿈 속으로 들어가서 계속해서 돌을 파냈다. 그렇게 했더니 더더욱 빛이 커지는 것이다.
나를 감싸는 포근한 그 빛이…. 이 곳에 남아 있고 싶고…. 나만 있고 싶다….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