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향한, 마음지도>12
째째는 기숙사 옥상에 서 있었다. 달마저 구름에 가린 어두운 밤. 멀리 째째가 일하는 제노바 공장 불빛이 보였다.
이제 30분만 있으면 야간 근무를 위해 출근해야 한다. 지금 한 방 식구들은 잠들어 있다. 9시 점호를 마치고, 10시 출근을 알리는 비상벨이 울리기까지의 쪽잠.
째째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가득하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오늘 새벽 째째는 주임에게 불려 갔다.
“너 학교 안 다니고 싶어?!”
다짜고짜 주임은 협박했다.
왜 그러는지에 대한 원인을 생각하기도 전, 째째는 가슴이 뛰고 두려움에 몸이 굳었다. 고2 소녀가 상대하기에 덩치 큰 중년의 주임은 벽 같은 존재였다.
“너, 왜 다른 사람을 선동하고 다녀?!”
엄마에 대한 지독한 그리움을 이겨내고, 째째는 2학년이 되었다.
견딜 수 없고, 죽을 것 같아 돌아가고 싶어 몸부림쳤던 엄마에 대한 그리움도 3개월이 지나자 조금씩 옅어지기 시작했다. 시간은 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셌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째째는 공장에서 일하는 것도, 학교 가는 것도,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것도 적응해 갔다.
그러자 째째의 시선에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잔업, 무보수 잔업도 그중 하나였다. 3교대로 일하는 야간반, 오전반, 오후반 작업 중 야간작업 후가 가장 많았다.
6시 반, 교대가 끝나면 조장은 작업 종료 점호를 하는 것과 동시에 공장 한 곳으로 불러 모아, 그날 생긴 불량품을 처리하도록 지시했다. 불량품은 옷을 만드는 원단의 무늬가 어그러졌거나 바늘 코가 빠져 조직된 것들. 불량품을 한 올 한 올 풀어내 재작업을 할 수 있게 실로 만드는 것이 잔업의 핵심이었다.
모두의 입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마음은 모두 같았다.
‘얼른 기숙사에 가야 하는데, 학교 가기 전에 조금이라도 자야 하는데, 그래야 수업 시간에 조금은 덜 졸 수 있을 텐데.’
더 큰 문제는 잔업이 무보수라는 점이었다. 째째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부당했다. 신문과 독서신문을 구독해서 보던 째째에게는 세상을 보는 잣대가 생겨나 있었다.
째째는 언니들과 동료, 그리고 공장 후배들에게 일의 부당함을 이야기했다.
“언니, 이건 잘못된 거예요. 항의해야 해요.”
“어떻게?”
“잔업을 안 하는 거죠.”
“어떻게 그래? 그럼 조장이 가만 안 있을 텐데.”
“주임은 더 할 걸?”
그러니까 주임이 째째에게 ‘선동’이라는 단어를 쓴 건, 이런 째째의 행동을 두고 한 말이었다.
‘무서워. 엄마 무서워. 나 어떡해?’
두려움에 몸을 떨며 째째는 하천이 흐르는 옥상 아래를 내려다봤다. 극심한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길은 고무줄을 끊어버리듯 상황에서 도망쳐 버리는 것. 그리고…… 부당함에 눈 감고, 등 돌리고, 마음에도 담지 않는 것.
째째는 울었다.
선택할 미래가 부끄러워 울었다.
우는 째째를 협박하듯 10시 출근 시간을 알리는 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잔업 파업 두려움 용기 바보)
‘바보’라는 말을 좋아했다.
‘백치 아다다’
'바보 온달'
‘바보 노무현…….’
내 마음에 일어나는 아수라 같은 감정들, 스스로 일어나서 감옥을 만드는 온갖 욕구를 껴안고 살면서 바랬다.
‘차라리 바보가 되었으면 좋겠어.’
바보가 된다면 비록 놀림은 당할지언정, 갈등의 고통은 없을 것이고,
바보가 된다면 비록 아무 일도 하지 못할지언정,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것이고,
바보가 된다면 욕심 감옥에 갇혀 울부짖지 않을 테니.
절로 웃고, 절로 행복할 것이다.
산의 다람쥐처럼, 들의 개미처럼, 강의 물고기처럼.
하늘을 흐르는 구름처럼.
구름을 흐르게 하는 바람처럼.
바보가 되지 못했다.
대신 모든 걸 거부하지 않고, 포용하는 바보의 마음을,
맑으나 슬프고, 아름다운 바보의 시선을 갖고 싶어 오늘도 용을 쓴다, 애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