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향한, 마음지도>11
“야, 너 고향이 전라도라며?”
“…….”
째째는 질문을 듣는 것만으로 주눅이 든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조금씩 견딜 만해지면서 째째에게는 다른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른바 지역감정.
한일여자실업고등학교가 있던 곳은 마산, 한일합섬이 있던 곳도 당연히 마산. 마산은 경상도. 째째가 고등학교를 들어갔던 때는 1979년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정권의 막강한 힘을 휘두르던 때.
“왜 말을 못하노?”
빤히 알면서 공장의 선배는 묻는다.
“……예.”
겨우 째째가 대답하고.
“전라도 어디?”
“……남원……요.”
잠시 조소와 멸시의 눈빛이 째째에게 머문다. 그러다가.
“남원이 전라남도가, 전라북도가?”
“전라북도…….”
째째의 목소리는 소심하고 나약하게 흐려진다.
째째를 바라보는 멸시와 조롱의 눈빛. 그러다가 선심 쓰듯 한마디, 툭.
“뭐, 그래도 전라북도 사람들은 전라남도 그것들보다 낫지.”
참을 수 없는 억울함, 견디기 힘든 부아, 참아서는 안 될 것 같은 부당함. 그런데 째째는 말을 하지 못한다. 처음 겪는 지역 차별에 째째는 대응할 어떤 생각도 가지지 못했으니까.
지역감정은 딸로서 받은 차별과 결이 다른 차별이었다. 지역으로 뭉뚱그려 행해지는 차별에서 가해자는 많았다.
게다가 힘 있는 자에게 힘없는 자들이 붙었다. 충청도에서 온 아이들, 강원도에서 온 아이들, 경기도에 온 아이들, 서울에서 온 아이들까지. 그들은 경상도에 편승해 전라도에서 온 동료들을 무시하고 왕따 했다.
전라북도와 전라남도를 나누어 다시 분열시켰다.
전라도를 고향으로 둔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건 함께 뭉치는 것. 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았다.
“야, 너희들, 전라도 따라지들. 함께 뭉쳐 다니지 말그라, 엉?”
“도둑년들이 뭉치면 어이 되겠노? 어이?”
노골적인 무시. 견디기 힘든 멸시.
째째는 다시 이불속에서 울었다. 알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
‘왜? 왜? 전라도가 왜? 그저 전라도에 부모님이 살았고, 그 부모님을 두고 태어났을 뿐인데? 왜?!’
‘어떻게 하면 말도 안 되는 이런 일에 상처 받지 않을 수 있지?’
‘왜 사람은 이런 식이지? 왜 이토록 잔인하지?’
이 또한 나무에 달린 수많은 나뭇잎 하나일 터인데, 째째는 차별이 주는 고통의 해일에 이리저리 떠밀렸다. 떠밀려 찢어지고 상처 받았다.
째째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는 일, 더욱 단단히 꿈을 붙잡는 일.
하지만 꿈은 손에 닿지 않았고, 닿을 길도 알지 못했다.
길은 안갯속에 오리무중이었다.
얼마 전 정치권에서 논쟁을 불러일으킨 전라도를 비하하는 ‘수박’이라는 은어를 처음 알게 되었다. 의미를 알고는 놀랐다. 누군가의 처참한 고통을 유희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소름이 돋았다.
내가 지역감정을 겪기 시작한 지 42여 년이 흘렀는데, 아직도 우리 사회는 갈등을 부추기고 증오를 키운다.
수년 전, 아는 역사학자로부터 호남에 대한 지역 차별이 일제강점기에 처음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1894년 전라도 고부에서 시작된 동학농민혁명에 놀란 일제가 전라도 사람들을 고의로 차별하면서 시작됐다는 것이다. 이후 차별의 심화는 60-70년대 최고 권력자에 의해 확대 재생산됐다는 건 주지의 사실.
차별은
남보다 내가,
저들보다 우리가,
권력도 많이!
돈도 많이!
좋은 것도 많이! 가지려는 욕심이 있는 한 사라질 수 없는 마음이라는 걸 안다.
이런 마음을 갖지 않고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어려운지!
지금도 스스로 깨닫지 못한 사이 관습에 물들고, 습관에 기대 행동하는 내 모습을 인지할 때면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마음 들여다보기가 조금이라도 느슨해질라치면 어느새 틈새를 비집고 들어앉은 고약한 마음이다.
한 번 태어난 것들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이든, 이념이든, 마음이든, 지속되는 힘이 갖는 것 같다. 과학적으로 설명하자면 ‘관성의 법칙’이 되겠다. 그래서 중독이 생기고, 습관이 생기고 관습이 생길 것이다.
시간은 행동을 축적해 습관을 만들고, 관습을 만들고, 문화를 만든다. 덩어리들은 시간과 비례해 자꾸 커진다. 커진 덩어리는 한 문화의 특색이 되고, 나름의 힘을 갖는다. 나라는 현재 이 문화를 구분 짓는 가장 큰 덩어리.
내 행동을 결정짓는 마음의 움직임, 그 움직임을 결정짓는 가치의 주춧돌을 생각한다.
여자로서 갖는 남자에 대한 구분.
나이가 갖는 다른 세대에 대해 갖는 생각.
한국이라는 국적으로 살아오면서 다른 나라에 대해 갖는 감상.
나를 특징짓는 온갖 경험과 생각의 총합이 만들어내는 기준들을 감시해야만 이에 자유로울 수 있으리라.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 들여다보기, 감시하기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하겠지. 그 길만이 타인을 괴롭히지 않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방법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