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향한, 마음지도>4
째째의 엄마가 승리했다. 째째는 중학생이 되었다.
이제 째째가 할 일은 공부하기. 그냥 공부하기가 아닌 공부 잘하기.
공부는 재미있었다. 째째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은 수학. 제일 싫어하는 과목은 영어.
요인은 외우기의 차이가 주는 감정 탓. 영어는 무조건 외워야 하지만 수학은 규칙만 외우면 다양한 문제에 적용할 수 있다는 것. 또 하나 수학은 깔끔하게 딱 떨어지는 답이 나온다는 것.
중학교 1학년 째째의 최고 성적은 전교 4등이었다.
그날은 기말고사 첫 번째 시험을 치른 날. 째째는 경쟁하는 친구와 답을 맞혀 보다 자신의 점수가 낮은 것을 알게 됐다.
“엄마, 내가 정희보다 국어 점수가 낮아! 어떡해!!”
밭에서 돌아오는 엄마에게 가방을 집어던지며 째째는 씩씩거렸다.
그런데, 엄마의 표정이 엄해졌다.
“못써! 그러면 못써!”
단 한 번도 째째를 향해 거친 말을 하지 않은 엄마, 온갖 불행으로부터 큰 우산이 되어주는 그 엄마가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째째는 놀라 숨을 멈췄다.
엄마가 부연하듯 말했다.
“성적 때문에 그러면 못써!”
“왜……?”
겨우 째째가 물었고, 엄마는 대답했다.
“그런 마음으로 공부하면 못써. 시기하는 마음으로 해서는 안 돼.”
엄마는 더 설명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 엄마의 말은 째째의 가슴에 숙제가 되어 자리 잡았다.
사실 째째가 큰 꿈을 품었다고는 하지만, 이는 씨앗이 심어진 것에 불과했다. 째째의 마음에는 사람 째째로 갖고 태어난 온갖 감정들에 출렁대고 있었다. 친구들과의 갈등, 성적을 두고 벌이는 시기 등.
웃고 떠들고 장난치고 노래 부르고. 그중 째째가 좋아한 일은 노래 부르기.
째째에게는 노래 공책이 한 권 있었다. 라디오에서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재빨리 가사를 받아 적어 만든 공책이었다. 이 노트는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이었다. 쉬는 시간이 되면 아이들이 몰려들어 공책에 적힌 가사를 보며 노래를 불렀다.
이때 째째와 친구들에게 인기 있던 가수는 박인희, 최헌.
“길가에 가로수 옷을 벗으면 떨어지는 잎새 위에 어린 얼굴……아~ 이 길은 끝이 없는 길 계절이…….”
“오동잎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그 시절 노래는 째째와 친구들에게 큰 유흥이었다.
이런 와중에도 째째의 마음속에는 '마음의 자유를 얻기 위한' 간절한 마음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시기의 마음을 극복할 수 있을까, 하는 엄마가 준 숙제와 함께.
내게는, 가까이 알고 지내는 나와는 많이 다른, 작가가 있었다.
이를테면 이런 것.
“조선 22대 왕 정조? 정조는 1776년에 왕위에 올랐고 24년 왕 위에 있었지. 그러다 1800년 돌아가셨어.”
“아유, 저런 옷에 저런 재킷은 안 어울리지. 옅은 베이지 티에는 짙은 브라운 재킷이나 어두운 계열 카디건을 걸쳐주면 제격인데.”
“나는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아. 어딜 가나,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꼭 있다니까. 정말 귀찮아. 귀찮아 죽겠어.”
그러니까 이 작가는 '기억력의 비상함'과 패션에 대한 관심 그리고 이성의 인기에서 나와는 많이 다른 사람이었다.
불편했다. 한 가지는 부럽고, 두 가지는 내 성향과 달랐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다.
나와 다르다는 이질감, 태도에서 느껴지는 잘난 체에 대한 거부감. 그리고 상대의 성향이 잘못됐다는 나의 평가.
이 세 가지 중 핵심은 상대를 내 기준으로 평가하는 태도였다. 이 태도 때문에 나는 그와 함께 한 시간들이 불편했던 것이다.
상대는 그저 자신의 존재로 있었을 뿐인데, 나는 나의 성향 때문에 스스로 불편한 감옥에 들어앉았다.
'대자유(깨달음)'에 대한 목표를 향해 그려온 삶의 지도들 중 하나가 세상 전체를 이루는 뭇 생명체들에 대한 이해였다.
이를 위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은 행동의 기초 같은 것. 이를 아는데도 나는 이 태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직 나와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이해는 머리와 가슴의 거리만큼이나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