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이제 한고비를 넘긴 것 같아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더 좋은 유스팀에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혹시나 거기서 경쟁에 밀려 제대로 경기에 뛰어보지도 못하고 벤치에만 앉아 있을 것 같으면 아이에게 기회가 조금이라도 더 주어지는 곳으로 보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아이가 가고 싶은 팀으로 가는 게 나중에 후회도 덜 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아직 어리광 부리고 아빠에게 팔씨름 해보자며 남자가 되기 시작하는 나이인데 단체 생활 하는 곳에서 과연 생활할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이 생겼습니다. 지도자와 선배들 눈치 보느라 기도 제대로 못 피고 주눅 들어 생활할 것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아팠습니다.
신문이나 뉴스에서 한 번씩 터지는 운동부 선배들의 구타문제는 어느 종목이나 있는 고질적인 이슈였습니다. 사실 내가 지나온 학창 시절, 군대시절 모두 구타가 통용되고 인정되는 시기였습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빰을 맞거나 엉덩이에 빠따를 맞는 건 당연했습니다. 그런 광경은 학교 안에서 자주 만나는 일상이었고, 군대는 비슷한 연배의 선임들에게 항상 구타를 당해 왔습니다. 그것이 나쁜 일이라고 생각을 크게 하지 않았는데, 이제 사회는 구타 근절, 구타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가하는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프로구단에 야구선수로 멋지게 입성했는데 학창 시절 같은 야구부 후배 구타사건이 문제가 되어 결국 선수생명이 끝나는 일도 보게 되었습니다. 배구 감독이 선수 빰을 때린 과거 사실을 현역 선수가 공개적으로 사과를 요구하며 크게 이슈가 된 적도 있었습니다. 정말 아무리 실력이 좋고 좋은 선수라고 인정받아도 이런 문제가 발목을 잡는 일은 이제 사회에서 쉽게 넘어가지지 않는 일이 되었습니다.
교육부는 2010년부터 초·중학생 운동부 학기 중 합숙훈련을 전면 금지했습니다. 하지만 지방에서 올라오는 학생은 부모가 이사를 하거나 아니면 하숙 또는 또래끼리 자취를 해야 하는 게 현실입니다. 지방의 유명구단인 전북현대 fc, 포항스틸러스, 울산 HD fc 같은 경우 좋은 선수 영입을 위해 클럽하우스에서 합숙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갈 유스팀에서 선후배 간 구타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이런 문제로 인하여 구단에서는 U-15 선수의 합숙을 전면 금지하였습니다. 구단 스카우터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합숙이 안 되게 되었는데 어떻게 입단을 하겠느냐고 물어왔습니다. 우리 부부는 아이와 함께 고민을 했습니다. 하숙을 시키는 것도 자취를 시키는 것도 쉽게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습니다. 우리는 구단의 클럽하우스가 생길 동네로 이사를 결정하였습니다. 구단에서 학교까지 전용버스로 통학을 시켜준다고 하여 학교 주변으로 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21년 11월에 @@fc 부근 동네에 아파트를 전세계약을 했습니다. 그리고 아이와 아이 엄마만 @@시로 가고 저는 OO시에 남았습니다. 직장을 쉽게 옮길 수도 없을뿐더러 만일 1년 후에 아이가 퇴출이 되면 굳이 @@시에서 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의 어린 시절, 학교 친구들, 축구를 같이 했던 친구들까지 모두 OO시에 있는데 결국 돌아갈 곳은 OO시라고 생각하여 퇴로를 열어 두기로 하였습니다.
6학년 12월부터 팀 훈련에 참가하였습니다. 정식 등록이 안되었기에 비공식적인 훈련 참가였습니다. 자신의 상황에 맞게 훈련에 참가하라는 유스팀의 권고에도 이왕 하는 거 적극적으로 열심히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OO에서 다니던 학교에는 사정 이야기를 하고 @@시에서의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신입생 학부모 OT가 있어 참석을 했는데 인천, 서울, 일산, 수원 등 대부분 수도권에 거주하는 가정들이었습니다.
구단에서 처음으로 멀리 충청도 OO시에서 선수를 데려온 건 처음이라도 들었습니다. 모두들 신기해하였습니다. 얼마나 잘하길래 지방에서 데려온 건지, 어떤 대회에서 본 적이 있는지 학부모들 사이에서 잠시 관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원래 @@ fc U-12 출신 선수가 10명, 그 외 다른 축구클럽에서 스카우트되어 온 선수가 6명으로 구성되었습니다. U-12 소속이라도 하더라도 모두 U-15로 올라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대도시에서의 생활은 시작되었습니다.
두 집 살림은 우리 부부에게도 부담이 되었습니다. 본의 아니게 주말부부가 되었고, 할머니, 친구들과도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전에는 주말이면 할머니집에 가서 점심 먹고 놀다가 오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손주 크는 모습 보고, 용돈 주는 재미로 지내셨는데 아이와 와이프가 올라간 뒤로 한 달에 한번 내려오기도 힘들었습니다. 정말로 많은 것들이 변하게 되었고 우리는 그 변화에 최대한 잘 순응하며 살아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