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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수정 Aug 07. 2021

그녀에게

5. 분노

안녕 사랑하는 그대.

안개처럼 은은한 새벽빛이 서둘러 찾아드는 요즘, 문득 지나가버린 봄이 생각납니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한 후 처음 맞이하는 그 봄에 당신은 편안해 보였습니다. 당신과 살게 된 후 많은 날들이 지났지만 지난 봄, 당신 얼굴에 피어났던 미소는 내게는 신대륙을 발견한 듯 새롭고도 특별했습니다.  

거무틱틱하고 복잡다단했던 기운들이 삭제된, 봄비 같은 당신의 미소는 내게 약간의 감동이기까지 했습니다. 

당신의 얼굴은 당신의 마음을 보여주는 거울이기에 당신이 그렇게 웃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나는 그것만으로 좋았습니다. 그 봄은 그래서 내게 소중했습니다.    

  

그 봄날, 당신은 유난히 내게 많은 것들을 물어보셨지요. 당신과 오롯이 하루를 보낼 수 있는 날들이 많아진 것은 분명 그 봄날 이후부터였습니다. 당신 마음 안과 당신 현실 속을 완강하게 채우고 있던 실타래들, 당신이 그것들에 묶여 있는 느낌을 받을 때마다 나는 그 실타래들이 뭘까 생각하면서 함께 묶이곤 했었지요.     

당신은 나를 향해서는 늘 환한 미소를 지었지만, 당신 자신에게는 한 번도 내게 보여준 그 미소를 지어준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 배운 그 미소를 당신에게 되돌려 드리려 무단히 애를 썼습니다. 

그럴 때마다 당신은, ‘이랑 너 되게 이상하게 웃는다 좀 느끼함 바래는 게 뭐야? 간식은 더 안 돼’. 

장난스럽게 대답하고는 금새 당신의 그 소란스러운 세계로 침잠하곤 했지요.      


내 생은 당신으로 인해 해맑아졌는데,  당신 생은 내가 있어도 우중충해 보여서 마음 아팠습니다.  내가 당신 생의 어둠을 물리쳐 줄 수 있다면 당신 생의 실타래를 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기 위해내가 뭘 해야 하지? 나는 애끓는 심정으로 당신의 신께 당신처럼 아니 당신보다 더 간절히 기도하기도 했지요.      


아무튼 그 봄날 이후 당신이 던진 질문들은, 뭐랄까 좀 넓고 굵직굵직해졌다고나 할까. 순간의 사소하고 미세한 느낌, 감정에 매이는 대신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큰 것들에 대해 당신은 마음을 주기로 한 듯 보였지요. 사람들하고 있는 것보다 나와 있는 것을 더 좋아했던 당신, 나는 그것이 너무 좋았지만 가끔은 걱정도 되었습니다. 나랑 다르게 당신의 세계는 인간들과의 시간이 필수적으로 필요한 넓은, 광활한 신비로운 세계니까요.    


개는, 인간만 있으면 사실 아무것도 필요 없습니다. 동족들이 때때로 궁금하고 만나면 반갑고 하지만 

그들이 내 생에 없다고 해서 나의 행불행을 좌우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압니다. 그래서 늘 당신의 옆자리에 햇살 같은 사람이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날이 오면 내가 당신 옆에서 밀려날까 두려운 건 사실이지만, 그 두려움보다 내게 더 큰 것은 당신의 행복이니까요.      


나는 당신의 변화가 좋았습니다. 당신의 얼굴에 거무스름한 어둠이 잔가지처럼 드리워져 있는 것을 보는 날이면 왠지 모를 통증이 내 온몸으로 차올라서, 마치 감기에 걸린 듯 앓곤 했거든요.       


창밖 마른가지에 새순들이 희망처럼 돋아나고 그 새끼강아지 발톱 같은 새순들이 초록잎으로 푸르게  성장하고 봄눈 같은 핑크빛 꽃들로 만개할 때, 그 모든 광경을 매순간 함께 할 수 있었던 그 봄, 계절이 일상 안으로 초대되어 하루를 푸르게 하던 그 봄날의 순간들이 포근한 이불처럼 내 마음을 여전히 감싸고 있습니다.      


그 어느 날 당신은 문득 내게 물었지요.  ‘이랑, 넌 살면서 가장 화났을 때가 언제야?’ 

당신은 나를 통해 개도 모든 종류의 감정이 있는 걸 알았다고 어쩌면 인간보다 감정이 더 발달하고 풍부한 것 같다고 그래서 생을 더 친밀하게 체험하는 것 같다고 하셨지요. 네. 그런 것 같습니다. 인간의 느낌, 감정이 

어떠한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내가 오래 인간들을 관찰해 온바 확실한 것 하나는, 인간은 때로, 많은 경우 

자신의 느낌이나 감정을 감지하고 그것들과 교류하는 데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개는 감정과 느낌이 생의 전부거든요. 우리와 인생 사이에, 느낌과 감정 말고는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될 겁니다. 당신은 인간들 가운데 그런 면에서 개와 비슷한 스타일의 인간입니다. 그래서 당신과 함께 한 일상은 늘 충만했고 따뜻했습니다. ‘감정불구보다는 감정과잉이 그래도 낫지 않니?’ 어느 밤, 당신은 실컷 울고 난 후 내게 빙그레 웃으며 물었지요. 그 말이 내 생에 그 무엇보다 위로가 되었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계시나요?      


생을 독립적으로 살아낼 능력, 주체적으로 변화시킬 능력은 없으면서 감정만 과도하게 품고 사는 존재.. 

잉여의 삶. 전에도 고백했지만 내 생이 그런 거라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제 당신의 질문에 대답하지요. 내가 살면서 가장 화가 났을 때는 아마도 저런 생각에 깊이 빠져 있던 때였던 것 같습니다. 그 겨울, 시골마을..  다시 떠올리려니... 마음이 좀 그렇네요. 나는 그날들 이후, 그날들을 외면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던 것 같거든요. 그 시간들을 생각하면, 마음 깊은 곳에서 여러 감정들이 지금도 회오리처럼 용솟음칩니다.     

 

사실 그 감정들이 화, 분노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어요. 개는 감정의 층위가 아주 세밀하고 그 강도도 매우 짙은 것이 사실이지만 인간보다는 감정의 범위가 넓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개는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사랑하고 또 그리워하느라 늘 바빠서  원망이나 실망, 배신감, 미움과 혐오, 열패감이나 좌절감 같은 감정들과는 별로 교류 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그런 감정들이 어떠한지 제대로 알 수는 없지만 개도 생명인지라 가끔 가슴 속에 불이 난 듯 뜨거운 것이 올라오고 아무리 물을 마셔도 목이 마르고 답답하며 숨 숨기가 힘들어지고  아무리 맛있는 것을 먹어도 황홀해지지 않고 기운이 빠지면서 자꾸 눈물이 나는 그런 순간들을 겪기는 하지요. 그래서 인간들이 열 받는다 속에서 불이 난다 하면서 그 상태를 화 혹은 분노로 지칭하는 것을 듣고 아, 그게 그 감정들과 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하긴 했었지요.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나는 갑자기 목이 마르고, 마른 침이 삼켜지고 눈물이 날 것 같고, 땅을 파고 들어가 세상 밖으로 나오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듭니다.     

      

그때는 첫 주인과의 이별이후 갑자기 다른 세상으로 돌변해 버린 내 생에 적응하지 못하고 허우적거리고 있던 일명 ‘방황기’였습니다. 인간의 집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고 살다가 흔히 냉혹한 현실세계로 표현되는 생의 또 다른 얼굴을 경험하던 시기였지요. 가족 없는 삶, 사랑하는 사람이 부재한 삶은, 목이 꺾어질 만큼 무거운 뭔가를 머리에 이고 가파른 비탈길을 걸어 올라가는 그런 것 같았어요.    

  

나는 셀 수 없이 많은 집들을 떠돌고 있었습니다. 숫자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이유는, 그때 헤어짐과 만남은 

더는 내 생에 별다른 의미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체념이 내 생을 집어 삼키고 있었던 것도 같던 그때, 

느낌도 감정도 죽어버린 듯 사방이 고요했지요. 어디든 누구든 상관없었습니다. 사랑해도 헤어질 수 있음을 알게 되니까 갑자기 나이가 확 들어버린 것 같았고 나는 늙어버린 내 마음이 오히려 편하고 좋았어요.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정신을 차리니 내가 시골 어느 집 마당의 평상에 앉아있었습니다. 

눈이 차갑게 온 세상을 덮고 있던 그날, 하얀 입김을 풍기며 주위를 둘러보던 내 눈에 그들이 들어왔습니다. 

제대로 땅을 고르지도 않아서 울퉁불퉁한 마당 곳곳에 묶여있던 그들은 저보다 10배 정도 큰 개들이었습니다. 희고 누렇고 시꺼멓고 때로는 그 모든 색을 가져 얼룩덜룩했던 그들은, 바람이 숭숭 뚫고 지나가는 허름한 개집 앞에서, 목에는 커다란 쇠줄을 매달고 멍하니 앉아있었지요. 흙으로 엉성하게 뒤덮인 그 넓은 마당에서 목줄을 하지 않는 개는 나 뿐이었습니다. 어쩌면 그 집의 목줄을 매기에는 내 몸이 너무 적었던 덕분이었습니다. 눈을 온몸으로 하얗게 맞으며 흡사 무생물처럼 정지되어 있던 그들을 보고서야 드넓은 하늘과 신선한 

자연의 조각들이 담백하게 들어서 있던  그곳 세상 풍경이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그 집에는 총 10마리 나까지 11마리의 개가 거주하고 있었지요. 굵고 짧은 목줄에 감금된 노예 같았던 그 대형견들은 진돗개 혹은 풍산개 혹은 똥개로 분류되는 개들이었는데 산으로 둘러싸인데다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어서 그 매서운 바람을 고스란히 감당하며 하루하루 그야말로 살아내고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사료를 먹었지만 때로는 인간의 음식을 아주 조금 얻어 먹을 수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동네 식당에서 얻은 음식 쓰레기만 허락되었고 그것도 이틀에 한 번씩만 먹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 겨울 그 마당에는 바람이 쉴 새 없이 불어 닥쳤음에도 늘 특유의 냄새들로 가득했어요. 평생 목욕은 구경도 못 해본 듯한 개들의 몸에서 나는 냄새와 오물통 같은 밥그릇 냄새, 차갑고 스산한 겨울 냄새와 사랑의 온기가 꺼진 공간에서 나는 특유의 쓸쓸한 냄새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서 본능적으로 새어 나오는 구원을 향한, 간절함의 냄새 혹은 뼈 속까지 사무치는 외로움의 냄새 같은 것들이 버무려진, 희한한 냄새였죠.  

     

그 냄새는 나에게 독가스만큼 치명적이어서 좀만 맡아도 숨이 잘 안 쉬어지는 바람에 어느 순간부턴가 마당으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신호라도 보내듯 자신들의 존재를 계속 나에게 소리로 알려주었지요. 거대한 개 몸에서 나는 소리라고는 믿기지 않는 가늘고 미세한 톤의 휘잉휘잉 실바람 같은 소리,  가슴 깊은 곳에서 퍼져 나오는 사이렌 같은 소리, 날선 발톱을 숨기며 웅크리고 있는 짐승의 묵직한 신음 같은 소리, 

아주 멀리서 큰 새가 절규하듯 내지르는 외침의 끝자락 같은 소리,...그 소리들은 뭐라고 분명하게 규정할 수 없는 하나같기도 하고 여럿 같기도 한,  무엇보다 한 번 포착되면 오래오래 귀속에 눌러 붙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묘한 여운을 남기는 소리들 이었죠.     


집안에만 있어도 온갖 냄새와 소리들로 내 온 몸 마음이 가득 찼던 그 겨울, 나는 귀를 막고 눈을 감은 채 

깊은 잠을 청했지요.  하지만 그 집 아들, 나를 그곳으로 데려온 그 오빠는 말이 유난히 많은 사람이었어요. 

눈이 쌓이면 이동이 어려운 산지대였고 겨울이라 일거리도 별로 없는 때여서 대부분 각자의 집에서 각자 계절을 치르던 그 동네의 한적한 공기를 그 오빠는 참을 수 없어 하는 것 같았지요. 

특히 그 오빠는 눈이 세상을 뒤덮는 순간의 고요를 못 견뎌 하는 것 같았죠. 눈이 유난히 많이 왔던 그 겨울, 나는 툭하면 장이 선 듯이 시끄러워지는 그 오빠의 방에서 그 오빠의 끊임없이 수다를 통해 세상과 계속 만나야 했습니다.  다른 사람과는 심지어 자신의 엄마인 주인 할머니와도 대화를 거의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는 그 오빠가 나한테는 참새처럼 잘도 재잘재잘 떠들더군요. 당시 매우 과묵했던 내가 반응을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쩌면 더 많은 말을 쏟아낸 것 같기도 합니다.  

암튼 덕분에 나는 마당의 개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 한 뼘도 안 되는 공간에만 머물다가 울타리도 없이 뻥 뚫린 마당에서 세상 구경만 실컷 하다가 겨울에서 여름으로 계절이 옮겨갈 즈음 즉 대형견 사이즈로 몸이 완성될 즈음, 보신탕집으로 팔려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어린 강아지를 데려와 두 계절을 마당에 묶어놓기만 하면, 매년 십만 원 이상의 돈을 버는 그 일은 그 집에서 오래전부터 해 오던 짭짤한 부업이라고 그 오빠는 아주 해맑게 애기하더군요.

       

또한 그 오빠가 대학생이 된 후 자폐증 진단을 받았고 개의 얼굴 그 중에서도 나와 같은 요크셔테리어 얼굴 

스타일을 특히 좋아했는데 그 오빠가 유일하게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인 SNS에서 어느 날 내 얼굴을 발견하고 ‘이렇게 이쁜 애가 안락사라니’  충격을 받았고 그 후 잠을 잘 수 없었으며, 당시 몇 년 동안 단절하고 있던 세상 밖으로 나를 구하기 위해 나가고 싶어졌었다는 이야기도 듣게 되었죠. 

하긴, 사는 일이 고단해서인지 무뚝뚝과 무신경을 갑옷처럼 온몸에 두르고 있던, 탁 봐도 접근금지라는 마음의 경고문구가 읽히던 그 집 할머니가 나를 마당을 넘어 집안까지 들인 것이 사실 나도 좀 이상했더랬습니다. 거기다 오래전에 굳은 듯한 얼굴 근육을 애써 움직여 어색하게 웃는 시늉을 해 보여서 ‘왜 저래? 나한테 뭐 부탁할거라도? 헐 설마’하며 뜨악해 했었더랬죠.      


‘너도 자폐지? 내가 딱 알아봤잖아. 니 눈빛이 내 눈빛이고 니 얼굴이 내 얼굴이더라고. 우린 일종의 동지야. 신기하지?’ 그 오빠는 백살 노인처럼 세상일에 시큰둥한 내 텅 빈 눈을 보면서 정말 신기한 듯이

신이 나서 재잘거렸습니다. 저 오빠 진짜 자폐 맞아? 의심하게 할 만큼.       


그러고 보니 그랬던 것도 같습니다. 보호소에서 살던 시절 나는 세상으로 향하는 모든 문을 닫아버리고 

홀로 갇혀 있었는데 세상은 그런 걸 자폐라 부르는 듯 하더라구요. 내가 이쁘게 생겨서 사람들이 얼굴만 보고 호감을 보이긴 했지만 나는 그들이 내미는 손길을 마다하고 개집 안으로 숨어버렸고, 그럼에도 불쑥불쑥 개집 안으로 침입하는 사람들의 손길이 싫고 무서워서 그만 침입하라고 사람들의 손을 꽉 물어버리기도 했지요.    

그냥 그때는 살아가는 모든 일이 다 무슨 소용이야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일들이 여러 번 반복되자 사람들의 발길도 손길도 사라지고  이 세상에 오직 나 혼자만 존재하는 것 같은 순간들이 다가왔지요. 그 투명하고 적막하고 고요하고 구슬픈 순간들을, 한없이 평화로우면서도 

한없이 가슴이 무너지던 그 순간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이미 알았던 것 같습니다. 내가 생을 피해 숨으려고만 한다는 것을. 어떻게 보면 이미 죽은 거나

 마찬가지였다는 것을. 왜냐면 내 가슴에 사랑이 없었거든요. 태어나 처음으로 사랑이 한 방울도 남지 않고 

증발해버려 유령 같아진 내 마음을 보호소 사람들도 그 오빠처럼 딱 알아봤나 봅니다.      


그런데 그 겨울 그 집 마당에 묶여있던 그 개들을 만난 후,  나는 웅크려 있던 몸을 길게 쫙 펼치며 기지개를 켰고, 이불 속이 아니라 창 밖 하늘의 안색을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아직도 무엇이 나를 변화시켰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어쩌면 그 마당의 개들의 내 마음으로 내 허락도 없이 걸어 들어온 것도 같습니다.     


어느 새벽, 나는 그들의 냄새와 소리가 고여 있는 마당으로 나갔습니다. 흰 눈이 보석처럼 반짝이며 차별 없이 온 세상에 골고루 뿌려져 있던 그 새벽의 세상 풍경은, 인간들의 동화 속 세상처럼 비현실적이었고 아름다웠습니다.  나는 순백의 땅위로 천천히 발을 내 디디면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고 그들,  집과 가장 가까이에 있던 흰둥이, 그 옆의 검둥이, 그 너머의 누렁이, 얼룩이 그 너머너머 언덕처럼 높아진 땅 위로 띄엄띄엄 앉아있던 또 다른 흰둥이, 검둥이, 누렁이, 얼룩이들과 눈이 마주쳤지요.     


그들은 매일 매일 평생 서로를 바라봐 왔지만 서로의 냄새를 제대로 맡아보지도 서로의 체온을 나눌 수도 

없는 거리에 말뚝처럼 묶인 채, 함께 있어도 함께 있는 것이 아닌 이상한 관계로 살아가고 있더군요.      


나는 밝고 포근해진 땅위로 타박타박 네 개의 발자국을 남기며 걸어가 그집 마당 곳곳에 섬처럼 배치되어 있던 그들 집을 방문했고 꼬리를 흔들며 다가가 서로의 냄새를 맡았고, 서로의 체온을 나누었습니다.     

 

그들의 몸은 생각했던 것과 달리, 차갑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내가 살짝 놀랄 만큼 뜨거웠던 것도 같습니다. 

어쩌면 집안에서 안락한 밤을 보낸 내 몸보다 더 따뜻했던 것도 같습니다. 텅 비어 보였던 그들의 눈빛도 가까이서 보니.. 따뜻했습니다. 뭔가 모를 기운이 회오리처럼 감도는 것 같았던 그들의 눈 속은... 놀랍게도 평온했습니다.  길고 선한 눈매에 늘 혓바닥이 입 밖으로 길게 늘어져 있던 흰둥이의 눈 속에도, 눈이 와도 비가 와도 하늘이 지붕인 듯 꿈쩍 않고 눈앞에 펼쳐진 먼 산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검둥이 눈 속에도, 가끔씩 끼잉끼잉 목소리를 내면서 제자리걸음 하듯 집 주변을 맴돌던 얼룩이의 눈 속에도 맑고 촉촉하고 건강한 기운이 

가득했습니다. 6개월 정도 나이를 먹은 평범한 강아지들 눈 속처럼.      


그들은 그 눈으로 내게  ‘왜 그러고 있었어? 밖에 나와 하늘을 보니까 좋지? 아름답지?’ 라고 말하는 듯 했습니다. 그러면서 앙상한 얼굴로 해맑게 웃어주는 것도 같았죠.  나보다 한 없이 어리지만 한 없이 차분했던 그들의 깊고 고요한 눈.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그들의 눈은,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어떤 귀한 세계를 담고 있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 마음껏 걸어보지도 못하고 음식다운 음식을 먹어보지도 못하고 저 푸른숲 냄새, 인간의 집

 냄새, 주인의 냄새, 즐거움의 냄새, 충만의 냄새,  짜릿한 황홀의 냄새도 맡아보지 못하고 죽음으로 호출되는 그들.. 에게서 한때 내게 매우 익숙했던 냄새도 났습니다.      


살가운 그 냄새.. 그것이 사랑의 냄새라는 걸 깨닫는 순간 내게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내 안의 깊은 곳에 얼어있던 우물이 쩡 하고 깨지는 느낌? 

내게 아무런 힘이 없던 삶, 생명이란 단어가 갑자기 힘을 얻게 되는 느낌?     


방안에 은둔하고 있던 나를 밖으로 불러내던 그들의 냄새, 소리는 도움을 요청하는 사인, 

고통을 호소하는 소리가 아니라 나를 구원하려는 시도... 였던가.        


나는 간식들을 모으고, 이른 아침 현관문이 잠시 열리는 시간, 그들에게 다가가 입에 물고 온 간식을 부지런히 배달했고 그들은 커다란 꼬리를 격하게 흔들면서 아주 맛있게 그것들을 먹어 치웠지요. 가끔, 동네 사람들이 지나가다 그들에게 고구마며 바나나며 던져주는 일이 있었는데 그들에게 그 같은 생의 축제일을 더 많이 만들어주고 싶어서  나는 그 오빠를 데리고 틈만 나면 마당에 나와 시범을 보이듯 내 간식을 주었고 우리가 진짜 동지였는지 그 오빠는 찰떡같이 내 뜻을 알아듣고는 고구마, 바나나는 물론 먹다 남긴 여러 음식들까지 

할머니 몰래 그들에게 던져주었지요.      


내가 멍한 눈빛을 거두고 점차 차분해지고 깊어진 눈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하자 내 마음이 전염된 듯 그 오빠도 햇살이 가득 비치는 날이면 나를 데리고 동네 산책을 가곤 했었죠.  그 산책길에서도 나는 수많은 흰둥이 검둥이, 누렁이, 얼룩이들을 만났습니다. 신기하게도 그 시골 마을은 집집마다 개가 있었고 그들은 하나같이 목줄에 묶여 마당에 감금되어 있었고, 많은 경우 음식 쓰레기를 주식으로 먹었으며 계절이 두 번 바뀌면 사라졌고 그 빈자리를 어린 개들이 채운다고 하더군요.       


골목 사이로 큰 소리 한번 새어 나오지 않던 평화로운 마을, 선한 얼굴로 서로 웃어주면서 안부를 나누던 정이 넘치던 마을... 그 마을은 그 개들에게는 어떤 곳이었을까요. 나는 지금도 문득문득 순박하고 정겨웠던 그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얼핏 처연해 보이지만 그들은 누군가 다가오거나 지나가면 커다란 꼬리를 힘차게 흔들며 반갑게 멍멍 짖었고, 조금이라도 먹을 것을 던져 주면 짧은 목줄 반경을 춤추듯 돌아다녔었죠. 그들은 척박한 자신들의 생을 미워하지 않았고 사람들을 향한 자신들을 사랑을 끝내 거두지 않았으며 아주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작은 순간이라도 행복을 느끼기 위해  매순간 진심을 다한 진정 멋진 존재들이었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봄을 보내고 여름이 오던 어느날,  보호소로 보내졌어요. 그 오빠가 좀 나아져서 도시의 학교로 공부하러 떠나야 했고 도시의 집은 나와 함께 할 수 없는 곳이었고, 개는 식재료 혹은 알바거리인 할머니에게 할머니 표현대로라면 한 그릇도 안 나올 것 같은 내 몸은 유통기한이 지나 폐기처분해야 하는 것이었죠   

    

내가 떠나던 그날 아침, 그 마당이 텅 비어 있다는 것을 보지 않고도 난 알 수 있었지요. 

그 밤... 평소처럼 수없이 잠이 깨었는데 평소와는 다르게 무언가가 모든 소리를 잡아가 버린 듯 너무 고요하더군요. 익숙한 그 냄새들까지 모조리 소멸해버렸음을 확인한 순간, 문득 뼈가 시리도록 아파오고 죽을 듯이 목이 마르고 미칠 듯이 마음이 가렵고 불에 덴 듯이 서럽고 외로워져서 나는 처음으로 그 오빠 품으로 파고 

들어가 아주 많이 울었던 것 같습니다. 


그 밤, 나는 하얗게 깨어서 그 기분이 뭘까 열심히 생각했습니다.  마치 그들이 내게 남긴 숙제 같아서 최선을 다해 알아내려 했지만 알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몸이 떨려오고 가슴이 벌렁 거리면서 쿵쾅쿵쾅 뛰고 뜨거운 불덩이라도 삼킨 듯 온 몸이 화끈거리더군요. 나는 어쩔 줄 몰라 하면서, 기진맥진하면서,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순간이 오면 잠시 마음에서 밀어내면서 그 숙제에 몰두했지만 예기치 못한 삶의 순간순간에 나도 모르게 불쑥불쑥 치밀어 오르던 그것이 도대체 뭔지 끝내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이제서야 알게 되었네요. 그것이 아마도 분노라는 것을. 무엇에 대한 분노인지는 아직도 잘은 모르겠지만요. 

그 개들의 내면에 본능적으로 서식하고 있던 분노를 내가 떠안은 건지 아니면 내가 살기 위해 너를 죽여야 

하는 생존의 법칙에 내재된 폭력성에 대한 분노인지 혹은 약육강식과 같은 세상의 운영 방식, 구조에 대한 

분노인 건지 그도 아니면 독립적으로 살아 내지 못하도록 설정된 개 운명에 대한 치기어린 분노인지

다른 존재의 비극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나에 대한 분노인지...     


아직도 나는 잘 모르겠어요.  어쩌면 죽을 때까지 모를 것도 같고, 정답을 아는 게 그렇게 중요한가 싶기도 

하고 또 안다고 한들 대체 뭘 할 수 있을까 싶고... 그러니 그냥 내가 아는 것을 얘기하고 의도와 다르게 

길어진 이 이야기를 마칠까 합니다.     


내게 분노는 나를 다시 세상으로 떠 밀어준, 나를 살게 한 감정 혹은 에너지입니다. 다시 생을 향해 돌아서면서 생각했습니다. 그들을 오래오래 내 인생 끝날까지 기억하겠다고. 흰둥이 검둥이 얼룩이 누렁이 혹은 순돌이, 복순이, 복돌이, 몽자, 백구, 깜순이... 그들의 어여쁜 이름과 다정하게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던 인간들의 목소리, 그들의 사랑스러운 얼굴들, 그들이 보여준 생의 아름다움을.. 기억하겠다고. 그리고 그들이 던져준 생의 불덩이를 아무리 뜨겁고 괴로워도 결코 뱉어내지 않고 끝끝내 잘.. 살아내겠다고.        


사실 그 날들 이후, 나는 내 생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느낌을 안고 살았습니다. 가슴 속에는 커다란 돌멩이가 걸려 있는 것 같았고 그래선지 순간순간 숨이 턱턱 막히고 했었죠. 당신을 만난 후, 생이 사랑으로 빵빵하게 충전되면서 나는 아무 때나 느닷없이 ‘그때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해’ 라고 말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지금은 돌멩이가 마치 소화되기 시작한 것처럼 숨쉬기가 한결 편해진데다  나의 시도 때도 없이 반복되는 

고백을 어디선가 듣고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뭔 소리. 넌 도와줬어. 넌 살아 있잖아. 사랑하면서. 

 잊지 마 우린 이미 주체적으로 생을 변화시키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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