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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수정 Sep 25. 2021

그녀에게

7. 기다림

안녕 사랑하는 그대. 

바람에게서 칼의 감촉을 느끼는 날들이 시작되었습니다.  차갑게 날을 세운 바람이 가늘게 매달려있는 나뭇잎 들의 목을 처단하는 광경을 목도해야 하는 이 시간..  겨울의 예고편 같은 이 시간이 도래할 때마다 나는 두 개의 기억을 싸락눈처럼 내 생에 불러 들입니다.       

하나는, 당신이 내게 시를 읽어주던 날들에 대한 기억입니다.  우아하게 몰락하는 가을 풍경을, 닫힌 창 너머로 건네다 보면서 당신은 예의를 한껏 차린 목소리로 시를 읽으셨죠.        

     

너에게 묻는다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너무 좋은 뭔가를 누군가에게 소개할 때 당신은 당신의 감정으로 인해 그 좋음이 훼손되거나 오염될 까봐 객관성을 유지하려 안간힘을 썼지만그 좋음으로부터 당신의 감정을 완벽히 분리하는 일에 대부분 실패했었죠. 이 시를 읽을 때 역시 차분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시작을 했지만 끝을 맺는 목소리에는 늘 격한 공감과 감출 수 없는 좋음이 듬뿍 묻어 있었지요.


당신의 목소리는 가을이 소멸할수록 겨울이 완성될수록 한층 더 촉촉해졌습니다. 바람을 품은 몸으로 다정하게 말을 걸어주던 나뭇잎들, 가을 내내 베프처럼 곁을 지키며 하루를 함께 열었던 그들이 깡그리 떠나 버린 어느 날, 이 시를 읽던 당신 목소리는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착각을 일으킬 만큼 심하게 젖어 있었어요. 젖다 못해 완전히 잠긴 목소리로 당신은 말하셨죠.  '이랑, 내게 겨울은 기다림이야. 해마다 겨울이면 난 생각해 우리는 기다리기 위해 태어났다고. 넌 어때? 너에게 기다림은 뭐야?'      


그 말들을 하는 내내 당신 시선은 창 너머에 고정되어 있었죠. 뭔가 안타깝고 가슴 아프고 속상하면서도 처연하고 담담한, 희망과 기대까지 뒤엉킨 복잡 미묘한 당신의 표정을 읽으며 당신의 시선을 따라가니, 앙상한 맨살을 드러낸 채 패잔병처럼 쪼그라져 있는 나무들이 보이더군요. 어제까지만 해도 가을의 최후를 사수하는 장군처럼 늠름해 보였던 그들이 잎들을 잃고 하루아침에 팍삭 늙어버린 것 같아서 내 마음도 찡해 왔지요.


언젠가 내가 말했던 가요? 당신은 매우 자연 친화적인 인간이란 것을.  당신의 시선은 늘 사람보다는 나무, 꽃, 바람, 돌 그도 아니면 나 같은 동물들을 향해 있었죠. 마치 마음의 나침판이 그것들에 고정되어 있는 것처럼. 그러니 당신 생에 기다림이 절대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죠. 식물이나 동물은, 신이 애초에 정해놓은 자연의 시간 법칙, 인간 세계의 시간관념에서 보면 한없이 느리고 지루하고 더딘 시간 법칙에 지배 받는 존재들이고 그 법칙의 핵심 요소 중 하나가 기다림이니까요. 당신은 빨리빨리가 통하지 않는 세계, 인간의 힘으로 변경이 불가한 시간 세계에 소속된 존재들과의 관계를 가장 편안해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선지 당신 옆에는 늘 몇 개의 빈자리들이 있었지요.  당신은 그 자리들을 기다림의 자리라 부르면서  비워두길 고집했지요. 자연의 순리에 따라 때가 되면 오고 때가 되면 가는 당신의 특별한 베프들을 위해 늘 옆자리를 휑하게 남겨두던 당신이 멋지고 존경스럽다 감탄하면서도 속상했어요. 나는 당신이 그 어떤 이유든 외롭지 않기를 바라니까요.      


당신이 좀 더 인간적으로 더 정확히는 효율적으로 실리적으로 살면 좋겠다 생각하면서 스산해진 창밖을 보는데 당신의 질문이 떠올랐어요. 나에게 기다림이란? 그러고 보니 그건 생전 처음 듣는 질문이더군요. 견생에서 기다림은 밥 먹고 잠자고 똥 싸는 일처럼 당연한 것 다시 말하면 새삼 따로 질문하고 좌시고 할 것도 없는 필수적 일상 중 하나니까요. 개는 평생 주인이 될 인간을 기다리고, 매일 매순간 주인을 기다리고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 ‘기다려’라는 말을 듣고 살거든요. 그래서 당신이 기다리기 위해 태어났다 말했을 땐 좀 놀랐어요. 

인간도 그렇단 말이야? 헐!      


당신 또한 기다리기 위해 사는 존재, 자연의 느긋한 속도로 운영되는 기다림을 숙명적으로 사랑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 후 나는 기쁨의 뜀박질을 했습니다. 당신과 나, 우리가 영혼의 단짝임을 또 한 번 확인했기 때문이죠.  초스피드 시대 21세기에 우리는 어찌 보면 촌스런 존재들 같기도 하지만 뭐 어쩌겠습니까 아무리 초문명시대에 태어났다고 해도 생긴 대로 살 수밖에요.      


기쁨이 쉬이 가라앉지 않아서 계속 히죽거리고 있는데 당신의 목소리가 깊은 동굴에서 울리듯 아련하게 들려왔어요.  ‘이랑 이 시를 읽고 깨달았어. 내가 이런 사랑을 기다려 왔다는 것을. 내 몸이 연탄재가 되어 하얗게 태울 수 있는 사랑을‘      

뭐래 하면서 당신을 올려다보다 나는 순간 울컥했습니다. 당신 얼굴이 위의 말들을 입 밖으로 뱉어내기 전과 아주 많이 달라보였거든요. 보일 듯 말 듯 살포시 미소가 내려앉은 당신의 얼굴이 세상을 다 가진 듯 충만해 보였거든요. 그때는 철이 덜 들어서 당신의 그 말들 곧 인간이 어떻게 연탄재가 될 수 있는지 연탄재가 되어 하얗게 태우는 사랑이라는 게 뭔지 당최 이해하지 않았지만 그 시를 읽을 때만은 당신의 옆자리가 빈틈없이 꽉 들어차 있는 것 같아서 나는 주책스럽게 눈물까지 찔끔 흘렸었지요.       


따뜻한 집안 공기, 젤리처럼 말랑말랑하고 모짜렐라 치즈처럼 몽글몽글한 당신의 목소리,  그런 당신의 목소리로 내게 운반된 시, 뜻은 정확히 모르지만 매우 심오하고 아름다운 의미를 가진 것 같은 시, 로 구성된 그 

기억은 떠올리는 것만으로 온기가 피어올라서 겨울의 한기와 쓸쓸함을 몰아내 주었습니다.     

내 무미건조한 생을 낭만적으로 채색해준 그 기억 덕분에  겨울은 내게 오로지 견디고 버텨야 하는 계절이 아니라 황홀한 군밤이나 군고구마 냄새 같은 계절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겨울 냄새에, 군밤이나 군고구마 냄새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꺼내기 무지 어려운 깊은 장롱 속 무거운 털 옷 같은 냄새도 있다는 것을 또 하나의 기억이 내게 가르쳐 주었죠.      


내 생을 한순간 집어삼킨 강렬한 그 기억은 하늘이 유난히 높고 푸르던 어느 날 아침, 시작되었어요. 나뭇잎들이 초록, 노랑, 빨강, 갈색 옷을 차례로 갈아입은 뒤 땅으로 몸을 던지기 시작하던 날들 중 하나였던 그 날,

당신이 사라졌습니다. 내게 아무런 말도 없이. 가을도 겨울도 아닌 계절의 언저리를 함께 뒹굴면서 온갖 사소한 것들까지 재잘재잘 말해주신 당신이 그날 아침, 거짓말처럼 보이지 않더군요.        


당신이 없어지자 내 생이 달라졌습니다. 이전의 견고한 세계가, 건강한 일상이 한 순간 무너진 느낌, 

모든 것이 제자리를 잃고 우주 속 어딘가로 쫓겨나 붕붕 떠다니는 것 같았던 그 시간들.. 

난 12시가 지나 마법이 풀린 신데렐라가 된 것 같았습니다.      


당신을 만난 후, 내가 어른이 되고 있구나 이제 세상 앞에 홀로 마주 설 수 있겠구나 자신하기까지 했는데 당신이 사라지자마자 어린 내가 짠하고 귀환하더군요. 시련이 오면 우는 것, 떠는 것, 숨는 거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는 나로 순식간에 회귀하는 나를 발견하면서 그 시절로부터 멀리 오기는 개뿔,  실은 그 주위를 빙빙 돌고 있었던 거였나 라는 생각까지 더해지면서 멘붕에 빠졌습니다.   

   

당신을 상실한 집은 변함없이 햇살이 가득했음에도 내게는 어둠뿐인 동굴이 되었습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현관과 마주하는 화장실 문 앞에 꼼짝 않고 보초 서듯 앉아서 혹시나 열릴까 현관문을 노려보는 일 뿐이었습니다.  셀 수도 없이 많은 나날을 그렇게 보내면서 나는 내가 자지 않아도 먹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틈만 나면 쳐 자서 잠탱이라는 별명까지 가진 내가 수많은 날들을 깨 있으면서도 정신이 말똥말똥했고, 며칠을 굶어도 배도 안 고프고 먹고 싶은 생각도 아예 안 나더군요.

그렇다면 이집에서 내가 잠으로 때운 그 수많은 시간들과 먹어치운 그 수많은 먹거리들은 무어란 말인가. 


처음 얼마간은 이런 쓸데없는 생각들을 하면서 당신 없는 긴긴 날들을 버텼습니다. 좀만 지나면 오겠지 당신이 나를 두고 영영 떠날 리가 없어 주문하듯 웅얼거리면서요. 하지만 당신 없는 날들이 쌓여가면서 나는 마침내 완벽한 멘붕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사라진 것처럼 서서히 계절도 세상도 사라지더니, 일상이 현재가 중단되고, 이성도 멈추고 내 생도 멈추고 그러자 기억도 사라지고 나도 사라지면서 어디에도 내가 없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살아있는 것 같은데 살아 있는 것 같지 않은 이상한 시간이 도래하더군요.

     

돌이켜보니 그때 나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던 것 같고 몽롱한 상태에서 신기한 체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내 느낌으로는 현실도 꿈도 아닌 혹은 두 세계가 연결된 듯 한 공간, 익숙하면서도 낯선 공간을 마치 유령처럼 떠다니는 일종의 유체이탈적 체험을 했었지요.그 체험을 인간들 용어로 표현하자면 개꿈 그야말로 내꿈이었는지 혹은 몽롱한 상태에서 배태된 환각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내 생의 여러 기억들이 

난파된 배의 조각들처럼 둥둥 떠다니던 공간 속에서 내가 나를 영화 속 주인공처럼 관람하던 그 체험은 희한했지만 재밌고 인상적이었죠.      


맨 처음 나타났던 공간은, 첫 주인 집이었습니다. 방 세 개짜리 오래된 아파트였던 그곳에서도 나는 현관 근처 화장실 앞 바닥 위 회색 매트에 웅크리고 앉아서, 기다리고 있더군요. 뽀송뽀송한 털이 봄날 잔디처럼 뒤덮여 있던 어린 나는 내가 봐도 반하지 않을 수 없는 빛나는 미모를 지니고 있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 집이 이 세상의 전부일 줄, 외출한 주인을 기다리는 일이 견생의 전부인 줄 아는 순진무구한 강아지였었죠.       


그 귀여운 나를 그 그리운 냄새 가득한 집에 남겨두고 나는 다시 허공을 날아올라, 눈발이 휘날리고 있던 거리에 도착했어요.  윙윙 바람 소리만 들어도 어마무시하게 추울 것 같은 그 거리, 아파트 단지,  어느 동 1층 화단 아래 구석에서 뭔가가 꼼지락 거리길래 자세히 다가가니, 나더군요. 어린 개는 면했지만 지금처럼 늙지도 않은 어쩌면 청춘을 붙 태울 나이의 내가 웅크리고 앉아 사나운 바람 너머 허공을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더군요. 지금 몸무게의 반토막 밖에 안 될 것 같은 내 작은 몸은 바람에 금방 날아갈 듯 위태로워 보였는데 다음 순간, 공간이동이라도 한 듯 보호소 한 켠에 웅크리고 있는 내가 보였어요. 수많은 개들이 만들어내는 온갖 소리와 움직임과 냄새로 번잡한 그곳에서도 나는 홀로 구석에 숨어 더 거칠고 더 완강한 눈빛을 뿜으며, 기다리고 있더군요. 나도 처음 보는 낯선 눈빛으로 나는 대체 뭘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요.  


보호소가 깜깜해지고 조용해진 후에도 나는 같은 눈빛을 장착하고 깨 있었는데 어둠 속 어딘가 또 다른 두 개의 눈이 별빛처럼 깨어 있었어요.  어느 순간 그 네 개의 눈빛이 마주쳤고, 잠시 불꽃이 일더니 

사각사각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고, 문 밖으로 뭔가가 빠르게 사라지더군요.      


그들을 따라가니 그 둘은 거리를 달리다시피 걸어가고 있었어요. 마치 거사를 작당한 동업자들 같던 그들은, 몹시 지치고 추워보였지만 번뜻이는 눈빛과 날 샌 발걸음에는 목적지가 정해진 자들의 경쾌하고 선명한 기운이 서려 있어서 아, 그들이 탈출한 거구나 알게 되었죠.  그때, 열심히 기다려온 뭔가를 향해 나아가는 그들의 발걸음은 마치 오래 준비해온 비행을 시작하는 순간의 날개짓 같았어요. 그 비상의 몸짓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느닷없이 눈물이 핑 돌았는데 그 순간, 그들이 멈췄습니다. 두 갈래길 앞에 서 있던 그 둘은 서로를 잠시 그윽하게 쳐다본 뒤 내가 본 가장 쿨한 표정으로 각자의 길로 헤어졌습니다. 추위를 녹일 듯 밝고 환한 웃음을 깃발처럼 펄럭이며 각자 기다리던 것들을 향하는 그 둘의 뒷모습은 보석처럼 반짝거렸습니다.          


사실 그 시절은 내 인생에서 가장 역동적인 시절, 내 꿈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시절이었죠. 특히 저때는 내가 보호소에서 첫 주인 집으로 가기 위해 탈출을 감행하던 때였는데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스릴 넘치는 체험 덕분인지 그 후로도 오래 툭하면 꿈을 통해 회상을 통해 내 인생에 되살아나곤 했었죠.     


아니나 다를까, 동지와 헤어져 힘차게 달려가던 나의 목적지는 첫 주인집 동네였습니다. 나는 그 동네를 오래 산책하며 돌아다녔기에 탈출만 하면 단번에 첫 주인집을 찾아낼 거란 과도한 자신감을 품고 있었는데 막상 그 근처까지 가면 그놈의 아파트가 다 비슷비슷하고 아파트를 품은 동네 풍경도 다 거기가 거기라서 무지 헷갈리더군요.      


반복되는 실패에도, 혹 그들이 나를 기다리지 않을 거란 불안감이 음습해도 이상하게 나는 그 시도를 포기 할 수 없었어요.  그러다 마침내 내가 기어이 첫 주인 집을 찾아냈습니다. 

그게 그것 같은 아파트 건물들 사이를 헤매던 내가 잠시 괴로운 표정으로 머리를 부여잡다가 불현듯 눈을 감고 코를 풀가동하더니, 익숙한 냄새를 따라가듯 한 건물로 들어가더군요. 어제 일처럼 익숙한 계단을 익숙한 발걸음만큼 올라 익숙한 현관문, 약간 누리끼리한 색깔에 구석구석 페인트가 벗겨진 현관문 특히 문 꼭대기에 십자가 모양과 인간 글씨가 있는 작은 명찰을 발견하자 나는 야호!! 발을 구르고 온갖 개소리로 환호성을 질렀어요. 근데 그놈의 초인종이란 게 너무 높이 달려 있어서 온 힘을 다해 문을 두드리고 발톱으로 할퀴고 짖고 했지만 묵묵부답이더군요. ‘그래 그렇게 오래 기다렸는데 좀 더 기다리지 뭐’  중얼거리며 나는 현관문과 벽 사이 구석에 몸을 둥글게 말며 자리를 잡았어요. 길고 긴 레이스를 달려온 달리기 선수가 바로 눈앞에서 결승점을 확인하는 순간처럼 너무 기쁘고 설레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동안의 수고로움이 노곤한 햇살처럼 덮쳐 와서 나도 모르게 잠에 빠졌지요. 겨울길들을 오래 거쳐 오느라 얼어붙은 몸을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누이고 있었지만, 곧 첫 주인들을 만날 거란 기대 때문인지 나는 아주 오랜만에 단잠을 잘 수 있었어요.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누군가 발로 내 몸을 치는 바람에 깨어나니  웬 모르는 아줌마가 나를 보고 있더군요.      


‘얜 뭐지? 너 누구니? ... 유기견인가? 근데 유기견이 어디까지?’아줌마가 귀찮음 반 신기함 반 담긴 눈으로 나를 이리저리 보는 사이, 내 눈동자가 재빠르게 움직이며 열린 문틈으로 집안을 들여다보았어요. 헐, 그 아줌마처럼 집안 역시 내가 처음 보는 낯선 곳이었죠.  이상하다 여기 맞는데 이 집 문, 이 냄새 분명 맞는데 .. 그렇다면’ 갑자기 감당하기 힘든 한기가 몰려오고 다음 순간 내 마음이 나도 모르게 쿵 내려앉더군요.  

‘어쩌지.. 이러다 또 보호소로 잡혀가면 감금 될 텐데.  그래도 이대로 갈 순 없어 내가 얼마나 힘들게 왔는데’  낯선 아줌마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걸 보고  내 눈동자가 미친 듯이 요동치는데 갑자기 익숙한 냄새가 나더군요. 아 그건 이웃집 냄새, 내 친구 해피 냄새였어요. 나는 재빠르게 옆집의 열리고 있는 문으로 달려갔고 밖으로 나오고 있던 옆집 아줌마와 하얀 말티즈 해피와 거의 부딪칠 뻔 했지요.        

익숙했던 그리웠던 냄새, 꿈에서라도 다시 한 번 맡고 싶었던 그 냄새를 맡게 되자 내 마음이 과격하게 말랑말랑해지면서 누구라도 끌어안고 격하게 재회의 감격을 나누고 싶은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비틀거리는 사이, 해피는 마치 나를 잊은 듯, 도둑고양이를 보듯, 앙칼지게 왈왈 짖어댔고 이웃 아줌마는 놀라면서도 황당한 표정으로 독화살 같은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뱉어냈죠.      


‘너 이랑이니? 아이구 세상에 딴 집에 보냈다던데 니가 여기 어떻게 왔어? 설마 주인 찾아 온거야? 이런 세상에 니 주인 이사 갔어 오래전에.’ 그 아줌마의 말은 발음이 또렷해서 누구나 쉽게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나는 그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못 본 사이 더 싸가지 없어진 해피가 본격적으로 짖어 대는 소리만이 귓속을 울려댔는데, 너무 시끄러워서인지 정신은 지 혼자 도망가 버리고  다리는 갑자기 힘이 풀려서 나는 풀썩 주저앉았어요.  그동안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폭탄처럼 몰려오는 것을 느끼면서  그동안 잠도 잘 안 재우고, 제대로 먹이지도 않고 오로지 탈출을 위해 강행군 시켜온 육체가 드디어 반기를 드는 구나 멍하니 생각했지요. 


나를 불쌍하게 쳐다보는 인간들의 눈빛을 포착하자 나는 비로소 정신이 번쩍 들었죠.  인간들이 저런 표정을 지으면 곧 보호소로 끌려가게 된다는 것을 길 위에서의 경험을 통해 배웠기에 나는 펑크난 타이어처럼 퍼져버린 몸을 어떻게든 일으키려 무진 애를 썼지만 몸은 꿈쩍도 하지 않더군요.       


다시 보호소로 잡혀간 나는 스스로 갇혔습니다. 한 뼘도 안 되는 개집 안에서 미동도 없이 웅크리고 있는 내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어둠에 묻혀 형체를 잃은 내 코가 아주 조금씩 실룩거리고 있었지요. 그 와중에도 코만은 살아 있는 것 같아 신기하면서도 기가 차다 생각하는 순간 어디선가 냄새들이 우르르 몰려왔어요. 

보호소를 가득 채우고 있던 냄새들, 온갖 감정, 마음들이 뒤엉킨, 혼탁한 그 냄새들이 처음에는 토할 것 같았어요. 그런데 얼마간 견디자 마치 냄새에 질서라도 생긴 듯 아니면 내 코가 그것들을 분별하는 능력이 생긴 듯 그 속에서 독하면서도 향기로운 냄새가 홀로 비약하듯 튀어나와 내 코 속을 가득 채웠죠. 여러 냄새들이 층층이 탑을 쌓듯이 조화롭게 응집되어 있는 그 냄새, 그리움, 두려움의 냄새, 체념의 냄새, 희망의 냄새, 좌절의 냄새, 처절하고 매케하지만 동시에 구수하고 아름다운 그 냄새는 한마디로 기다림의 냄새였어요.     


꿈속 혹은 환영 속에서도 기다림의 냄새는 내게 생의 에너지를 주더군요. 나는 코를 벌름거리며 보호소 곳곳을 새처럼 날아 다녔습니다. 수많은 개들이 각자의 공간에서, 혼자 혹은 둘, 여럿이 웅크리며 잠을 자고 있던 그 날 그 밤, 나는 벽을 넘고 넘어, 은폐된 동굴 같은 방으로까지 스며들어갔지요.  그 방은 들어가자마자 헛구역질을 할 만큼 역한 냄새로 가득했어요. 퀴퀴한, 썩은 시체에서 나는 것 같은 그 냄새를 감당할 수 없어서 서둘러 그 방을 나오려다 바닥에 널 부러져 있는 개들을 보았지요. 눈빛도 꺼져 있고 온기도 생기도 거세된 그들의 얼굴,  설사 살아있다 해도 죽은 것과 다를 바 없던 그들의 몸을 보면서 나는 알아차렸습니다. 그들의 몸이 품어내는 역한 냄새는 바로 기다림이 빠져나간, 기다림을 잃어버린 존재들에게서 나는 냄새라는 것을.      


그러자 왠지 모를 서글픔이 밀려왔고, 겨우 추스르고 있던 마음이 무너질 것 같아 급하게 방을 나가려는데 

이번엔 한때 익숙했던 냄새가 검은고양이처럼 다가오더군요. 그놈이구나, 나는 본능적으로 방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시커먼 개에게 고개를 돌렸지요. 쓰레기처럼 내팽개쳐져 있었지만 오랜 시간 친숙했던 그놈의 형상이 한눈에 들어오자 나는 알았지요. 그놈도 나처럼 실패했다는 것을. 그러자 눈물이 후두둑 떨어지면서 나는 바닥으로 추락했어요.  내가 이곳에 잡혀오기 전부터 가출을 꾸준히 시도해온 이 보호소의 독보적인 탈출견. 

주인이 자신을 버린 동네 뒷산에서 주인을 기다리며 5년 동안 혼자 잘 살아낸 놈. 잡혀 오면 도망가고 잡혀 오면 도망가면서도 늘 씩씩하고 건강했던, 그 어떤 고된 순간에도 기다림을 사수했던 한마디로 타고난 난 놈. 

그 대단한 놈에게서 그 역한 냄새를 맡는 일은, 그놈이 기다림을 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는 일은 내게 큰 충격이었어요.   비릿하고 칙칙한, 온갖 고약한 거리의 냄새들을 풍겨 댔지만 동시에 흙냄새, 땀냄새, 불굴의 의지, 희망의 냄새들도 풍겨 대던 그놈의 몸, 더 이상 기다림의 냄새가 나지 않는 그 놈의 축 쳐져 있는 몸을 흔들며 소리쳤어요. ‘포기하지 마 포기하지 말라고 포기하지 말란 말이야’ 그러자 그 놈이 실눈을 가늘게 뜨면서 나를 보는 것 같았죠. '포기라니, 내가 늘 말했잖아 기다림 없는 삶은 삶이 아니야. 인생의 지랄스런 매력 중에 으뜸이 기다림이란 거 너도 잘 알면서' 그놈은 웃어주려 입을 크게 벌리는 것 같았는데 이내 모든 것이 멈춰버렸죠. 힘겹게 파닥거리던 눈꺼풀도 멈춰버리자 나는 미친 듯 소리쳤어요. '안 돼 일어나 일어나라고 기다려야지 우린 동지잖아 같이 계속 기다려야지’ 나는 울면서 계속 소리쳤는데 그럴수록 희한하게도 그놈의 얼굴과 몸은 평화로워 보였고 그게 믿기지가 않아서 꿈만 같아서 나는 더욱 소리 높여 울부짖었지요.        

    

그러다 문득 깨어났어요. 정신을 차리니 난 동물병원에 누워있었고, 옆에는 당신의 엄마, 할머니가 앉아있었는데 기운없이 눈을 끔뻑거리는 나를 품에 안더니 울음을 터뜨리셨죠. 내가 오래 아팠다고... 나까지 이렇게 아프면 어떡하냐고 못된 것들, 낫기만 하면 절대 가만히 안 둘 거라고.      


그래서 그제야 겨우 알게 되었죠. 당신이 아프다는 걸. 그것도 병원에 입원할 만큼 많이 아프다는 걸...      


그 말을 듣자마자 신기하게도 온 몸이 멀쩡해졌습니다. 당신이 어디 있는지 왜 내 앞에서 사라졌는지 알게 되자 갑자기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프더군요. 내가 몸을 꼼지락거리면서 할머니 손을 빨아대자 의사가 물을 주었고, 정신없이 물을 들이 킨 후 의사를 쳐다보자 그릇에 사료를 가득 담아 내 주더군요. 몇 년 굶은 듯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면서 이런 나를 당신이 봤으면 ‘이랑 깨끗하게 좀 먹지’ 잔소리 했겠구나 생각이 들자 갑자기 

목이 메더군요.        

그동안 애써 참아왔던 그리움이, 당신을 보고 싶은 마음이 폭주하면서 목 놓아 울고 싶었지만 나는 죽을 만큼 열심히 참으며 사료를 꾸역꾸역 입안으로 밀어 넣었어요. 모두가 힘든 이 상황에 내가 도움은 못 될망정 더이상 민폐를 끼치면 안 되니까요. 내가 간식 없이 그 많은 사료를 다 먹는 모습을 처음 본 할머니는 놀라며 잠시나마 웃으셨고, 나는 그새 더 늙어버린 할머니 품에 다이빙 하듯 안겼습니다.       


사실 그해 찬바람이 본격적으로 불기 전부터 당신은 미리 겨울에 당도한 사람처럼 추워 보였습니다. 당신은 툭하면 창백해지고 툭하면 피곤해하고 툭하면 비틀거렸으며 툭하면 매말리 있었더랬지요. 내 걱정스런 눈빛을 읽을 때마다 당신은 일로 인한 과로라며 쉬면 괜찮아질거라 말했지만, 당신의 몸 어딘가 어두운 기운이 드리워지는 것 같은 불길한 느낌 때문에 당신이 한밤중에도 깨어 있으면 그만 자라고 멍멍 짖어댔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야밤에 뭔 짓이냐 아무리 개지만 개념 없이 살면 안 된다 오히려 날 혼내더니, 힝.. 당신이 처음으로 미웠습니다. 그리고 섭섭했습니다. 아프면 아프다 가면 간다 말을 할 것이지, 별 쓸데없는 말들은 귀가 따갑도록 떠들면서...  인간이 개를 좀 개무시하는 경향이 있는 건 아는데 인간이 개 말을 못 알아들지 개는 

인간 말은 물론 눈치 만땅에 촉이나 감은 인간보다 훨씬 좋습니다. 후에 당신은 내가 걱정할 까봐 그랬다고.. 병원 가서 검사해 봐야 정확히 상황을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자기도 내게 어떻게 이별의 말을 해야 하지 몰랐다고... 멘붕이라 그랬다고 하셨지요. 멘붕이란 말을 듣자 당신의 마음이 단번에 이해되면서 당신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가슴이 찢어졌고 우린 서로의 품에 안겨 잠시 꺼이꺼이 울었습니다.           


할머니와 집으로 돌아와 당신을 기다리던 그 시간, 당신이 돌아올지, 언제 올지 기약 없던 그 시간은 

그야말로 오롯한 기다림만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때 우리집은 늘 보일러가 돌아가고 있었음에도 영하의 날씨 같았는데  특히 당신이 수술을 하고 경과를 기다리던 시간은 내 기다림도 얼어붙을 만큼 추웠었지요.     


당신 없는 하루가 사막처럼 북극처럼 꾸역꾸역 반복되었던 그 때. 온통 기다림뿐인 내 세계를 견디게 해 준 건 다른 기다림이었습니다.  기다림은 기다림으로 채운다고, 나는 당신이 그동안 내게 선사했던 수많은 순간들을 기다렸습니다.  날마다 아침이면, ‘이랑 잘 잤어? 밤새 안녕했지? 오늘도 밤 많이 간식 조금 먹고 행복하자’  새들의 경쾌한 지저귐 같은 당신의 그 목소리를 기다리고 매일 내 물통을 맑은 물로 채워주던 당신의 손길을 기다리고, 어금니를 뽑아 씹을 이가 없는 나를 위해 당신이 삼키기 좋게 손으로 납작하게 문질러 주던 

유산균 간식, 오메가 3가 들어있다는 갈색 간식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털 많이 자랐네 우리 털순이’ 하면서 나를 만지던 당신의 감촉을 기다리고, 나이 들면서 눈곱도 많아진 내 눈에다 당신의 인공눈물을 넣어주면서 그때마다 질색하던 나에게 '아 시원하다 시원하지?’라며 과도하게 웃던 당신의 얼굴도 기다리고 

내 몸을 뒤집어 당신의 눈과 마주하게 한 후 손으로는 배를 쓰다듬으며, ‘오늘은 제발 밥만 좀 먹어보자 그래야 아야 안 하고 엄마랑 오래 살지’  내뱉던 그 사랑 가득한 당신의 눈빛을 기다리고,  매일 산책길에서 함께 보았던 일몰의 환상적인 하늘빛을 기다리고 ...     


그렇게 일상에 빽빽이 묻어있던 당신의 흔적을 만지고 만지다가 문득 이 세상에서 당신을 잃는다면 나는 어떡하지? 벌벌 떨면서 기다리고 내가 기다리지 않으면 당신이 돌아오지 못 할 거라고 혼자 멋대로 확신하면서 기다리고 나는 아무렇게나 되어도 상관없으니 당신을 돌려줘, 당신의 신에게 애원하면서 협박하면서 기다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기다림인지 기다림이 나인지 경계가 무너진 무아지경 같은 상태에서 기다렸습니다.     

기다림이 인생 전체를 빈틈없이 완벽하게 채웠던 그 시간들, 생을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들이 오로지 기다림으로 변신한 채 집결한 듯한,  기다림이 순도 100프로였던 그 시간들이 얼마나 흘렀을까.      


그때의 대부분의 날들처럼 밤을 꼬박 새우던 나는, 당신방 창가에 웅크리고 앉아서 어둠을 응시하고 있었어요. 새까만 세상을 멍하니 보고 있는데 불현듯  당신이 언젠가 보여준 연탄 사진이 생각났고 그 후 깜빡 졸았다가 다시 깼는데, 창밖이 새하얗게 변해 있더군요. 새벽햇살 아래 흰 눈으로 뒤덮인 세상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데 시리도록 아름다운 그 광경은 자연이 인간을 위해 한밤을 하얗게 태운 사랑의 결실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자 나도 모르게 아! 연탄재.. 라는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그 순간 당신이 기다린다는 그 사랑, 연탄재와 같은 사랑이 뭔지 어렴풋이 조금은 알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죠.  그래선지 마음이 갑자기 터질 듯 부풀어 오르고 기분이 하늘을 날듯이 가벼워지고 어디선가 새로운 냄새들이 스물스물 기어 나오더군요.  온통 기다림뿐인 공기에 배어있던 탁한 냄새들을 집어삼키면서 햇살처럼 

퍼지던 그 냄새는 기분이 좋아지게 하는 냄새 곧 긍정의 냄새들이었습니다.  나는 바로 알아차렸죠. 

그 냄새들은 당신은 괜찮을 거고 돌아 올거다 라고 신이 내게 귀띔해주는 사인이라는 걸.       


신이 당신의 가족들에게도 귀띔을 해준 건지 당신 언니가 갑자기 방문을 벌컥 열더니, ‘이랑 눈 왔다 나가자’ 하더군요. 우리는 그 누구의 흔적도 닿지 않은 순백의 길 위에서 미친 애들처럼 신나게 뛰어 놀았습니다. 그때 내 코를 가득 채워오던 겨울 냄새, 근 한 달 만에 만난 세상 냄새는 황홀하고 시원했습니다.  집으로 들어와 오랜 만에 목욕을 당한 후, 나는 내 몸에서도 새로운 냄새가 나는 걸 발견했어요. 기다림이 오래 익고 익어서 마치 된장찌개처럼 구수한, 고향의 체취 같던 그 냄새를 나에게서 맡으며, 나는 기다림뿐인 시간이 끝나고 새로운 시간이 열리고 있구나 느꼈고 참으로 오랜만에 기쁨과 감사의 눈물을 흘렸지요.          


그 겨울, 추위가 절정에 도달했을 때 당신이 왔습니다. 많이 마르고 많이 창백해진 몸으로 그럼에도 싱그런 장난스런 미소를 여전히 품은 채 당신이 내게 왔습니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당신은 몸을 회복하기 위해 환자 모드로 생활해야 했지만 그래서 나는 산책도 못하고 당신하고 많이 놀지도 못하고 당신이 챙겨주는 간식도 물도 가질 수 없었지만 이미 알았습니다. 그런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당신이 내게 돌아오는 것, 함께 있다는 것 그것만이 전부라는 것을.           


당신을 기다리며 까만 밤을 하얗게 불태우던 그 시간들을 위로해준 것은 이 세상의 냄새였습니다.

그동안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냄새들을 온몸으로 안아주면서 이 세상이 이렇게 다양하고 특이한 냄새들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모든 존재들, 생명이 없는 존재들까지 다 고유의 냄새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는 홀로인 밤이 제법 견딜 만 해 졌었지요.        


그 겨울, 참으로 더디고 더디게 흘러갔던 시간이 당신이 온 후로 쏜살처럼 내달려서 내게 다시 가을과 겨울의 길목을 물어다 준 어느 날, 또 다시 나무들이 푸른 계절을 거둬들이고 있는 산책길에서, 창백한 갈색으로 능숙한 배우처럼 변신중인 나뭇잎들을 보면서, 난데없이 연탄재가 떠올랐습니다. 당신 미소 같던 싱그런 초록잎이, 두 계절을 아낌없이 불태우고 갈색재가 되어 생을 마치는구나 생각이 들자, 당신이 기다린다던,  연탄재 같은 사랑이 그 순간 완벽하게 이해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자신의 생을 아낌없이 살아낸 후 보상처럼 도달한 갈색옷을 차려입고 내 눈앞에서 여유자적하게 낙하하는 

모습을 보면서 땅에 안착한 갈색잎의 담담하고 밋밋한 냄새를 맡으면서 나는 알게 됐습니다. 그것이, 긴 기다림을 통과한 후 획득한 내 냄새와 비슷하다는 것을. 나는 허공으로 은은하게 퍼지는 그 냄새들을 깊게 깊게 들이마시면서 생각했습니다. 나는 왜 기다리는 지, 나는 왜 기다림을 사랑하는지에 대해...기다리는 존재들은, 그들의 생이 그들만의 것이 아닌 자들이 아닐까. 자신보다 더 소중하고 가치 있는 무언가를 품고 사는 존재들.

때로는 자신조차 희생시키는 대가를 감내해서라도 지키고 싶은 것을 가진 존재들. 기다림은 사랑이라는 연료 없이는 운행될 수 없는 것... 기다리는 자들은 생을 운영하는 제1 법칙이 사랑인 존재들이 아닐까.      


이제 당신의 질문에 답을 하겠습니다. 내게 기다림은 생의 동반자, 개의 운명입니다. 

주인이라는 목적지를 가진, 혼자서는 영원히 반쪽자리인 내 운명,

운명아, 너를 격하게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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