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이다. 달리기

(수필) 변화하는 마라톤 풍경

by 불씨

그때와 지금, 그리고 변화하는 마라톤 세태

한강공원을 걷다 보면 익숙한 풍경이 펼쳐진다. 해가 기울 무렵부터 밤이 깊어질 때까지, 형형색색의 운동복을 입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달린다. 특히 놀라운 것은 20~30대 젊은 층의 참여가 폭발적으로 늘었다는 점이다. 이제 인기 있는 대회는 접수 순간에 마감되기도 하고, 유명 마라톤화는 구하기조차 어렵다. 밤이 되면 또 다른 장면이 펼쳐진다. 여성 러너들의 모습이 남성보다 훨씬 많아 보일 때가 있다. 안전하게 정비된 한강 코스 덕분인지, 혹은 야간 러닝의 낭만 때문인지, 형광색 러닝복을 입은 여성들이 리듬감 있게 달려가는 모습은 한강의 새로운 명물이 되었다.


달리기 문화, 그때와 지금

과거 마라톤 동호회는 사실상 중년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 주말마다 모여 기록을 두고 경쟁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달리기가 끝나면 본격적인 시간은 뒤풀이에서 시작되었다. 술잔을 기울이며 쌓는 우정이 활동의 핵심이었고, 나이와 직위보다 풀코스 기록, 특히 Sub3 여부가 서열을 정했다. 후배들은 선배들의 경험담을 경청하며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날 젊은 러너들은 전혀 다른 방식을 택한다. ‘러닝 크루’라고 불리는 새로운 형태의 모임은 기록보다 ‘함께 달리는 즐거움’을 더 중시한다. 위계가 뚜렷한 기존 동호회와 달리, 누구나 동등한 위치에서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수평적 분위기를 선호한다. 달린 뒤에는 술자리 대신 카페에서 차 한잔하거나, SNS에 인증샷을 올리며 추억을 공유한다.

이 변화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남녀가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달리면서, 단순한 운동 모임을 넘어 새로운 만남의 장이 되었다는 점이다. 고가의 러닝웨어와 최신 러닝화, 각종 액세서리로 치장한 젊은 러너들을 보면 이것이 운동인지, 아니면 또 다른 형태의 과시와 만남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우정보다 애정이, 기록보다 자기 표현이 더 크게 드러나는 모습도 적지 않다.


달리기의 본질과 가치

하지만 달리기의 본질은 여전히 단순하다. 달리기는 몸과 마음을 동시에 단련하는 가장 효과적인 운동이다. 체중 감량을 위해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반복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안타깝다. 굶거나 특정 음식만 먹는 방식은 일시적인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결국 기초 체력을 약화시키고 요요를 불러온다.

달리기는 다르다. 심폐 기능을 강화하고 근지구력을 기르며, 정신 건강에도 탁월한 효과를 준다. 달릴 때 분비되는 엔도르핀은 ‘자연산 행복 호르몬’이라 불릴 만큼 큰 힘을 발휘한다. 스트레스가 쌓이고 답답할 때 30분만 달려도 머릿속이 맑아지고 복잡한 생각이 정리된다. 세상이 달라 보이고, 어떤 문제든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솟는다.


나의 마라톤 황금기

나 역시 달리기와 함께한 황금기가 있다. 오래 전, 마흔을 넘긴 나이에 처음 풀코스 마라톤에 도전했을 때, 42km라는 거리는 막막하기만 했다. 그러나 꾸준한 연습 끝에 첫 완주의 감격을 맛볼 수 있었다. 그때부터 마라톤은 인생의 일부가 되었다.

춘천마라톤, 서울마라톤, 동아마라톤… 계절마다 대회를 찾아다니며 달렸다. 40회가 넘는 풀코스를 완주하며 느낀 것은, 마라톤이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것은 인내와 의지를 기르는 수행이자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는 도전이었다. 30km를 지나며 몰려오는 극한의 피로, 그것을 이겨내고 결승선을 통과할 때의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이었다.

특히 춘천마라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을 때의 기쁨은 지금도 생생하다. 비바람이 몰아쳐도 포기하지 않고 달렸던 시간들이 모두 보상받는 순간이었다.


다시 꺼낸 러닝화

그러나 어느 순간 나는 달리기에서 멀어졌다. 바쁜 일상에 치여 러닝화는 신발장 구석에서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었다. 가끔 한강을 걸으며 달리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언젠가는 다시…’라는 생각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요즘 한강의 러닝 열풍을 보며 잠들어 있던 러너의 DNA가 깨어났다. 예전만큼은 아니어도 다시 달리고 싶어졌다. 그래서 결심했다. 처음은 2km였다.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던 거리가 숨이 차고 다리가 무겁게 느껴졌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조금씩 거리를 늘려가며, 내년 봄 하프 마라톤 완주를 목표로 삼았다.

강바람을 맞으며 늘어나는 거리를 확인하는 작은 성취가 삶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 젊은 러너들의 패셔너블한 모습에 미소 짓기도 하고, 때로는 그들의 열정에서 자극을 받기도 한다.


건전한 러닝 문화를 위하여

마라톤은 혼자 하는 운동 같지만 결코 외롭지 않다. 같은 길을 달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격려가 된다. 인생도 그러하지 않은가.

변화하는 러닝 문화 속에서도 지켜야 할 본질이 있다. 건강한 몸과 마음을 만드는 것, 자신의 한계를 넘는 도전, 함께 달리는 동료들과의 진정한 유대감. 과시보다 겸손을, 경쟁보다 격려를, 개인의 만족보다 공동체의 조화를 중시할 때 러닝 문화는 더욱 건강하게 발전할 것이다.

내년 봄, 다시 완주의 기쁨을 맛볼 그날을 기대하며 오늘도 한강을 달린다. 과거의 추억과 현재의 열정, 그리고 미래의 꿈이 만나는 그 지점에서, 나는 달리기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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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수로 글이 삭제되어 다시 올립니다.

likeit 19 댓글 2


채수아

Sep 12. 2025

저도 달릴 겁니다

다시 파이팅하세요

응원합니다 ^^


불씨작가

Sep 12. 2025

고맙습니다.

작가님, 출판계약도 축하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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