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IT6
국내에서 가장 긴 터널은 인제양양터널이다.
터널 길이는 10.956km. 인제양양터널은 세계에서 11번째로 긴 터널이라고 한다.
공사 기간도 2009년 6월부터 2017년 6월 완공까지 약 8년의 시간이 걸린 거대한 터널이다.
강원도 여행을 갔을 때 인제양양터널을 지나간 적 있다.
터널에 대한 어떤 정보 없이 터널에 입성한 난 놀라운 경험을 했다.
얼마 후면 나올 것 같은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고
바깥이 보이지 않는 암흑의 터널만이 숨 막히게 이어지고 있었다.
끝을 알 수 없었기에 더욱 두려운 경험이었다.
한참을 달려 터널의 끝에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터널이 무너져 갇혀 버릴 것만 같았던 숨 막힘과 터널의 끝이 없을 수도 있다는 공포감이
한 순간에 사라졌다.
1년 후 양양터널을 다시 갈 일이 생겼다.
터널에 들어가기 전 인제양양터널 앞에 쓰인 10.956km의 안내문구가 보였다.
1년 전 그날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글자였다.
터널 입구부터 정해진 속도를 지키며 운전했다.
졸음을 방지하기 위해 만든 무지개와 구름 등의 LED 공간 등이 익숙한 듯 편안하게 다가왔다.
터널의 상단 “백두대간을 지나는 중”이란 LED자막이 보였다.
“백두대간”을 지난다니 웅장한 느낌마저 느낄 수 있었다.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아 공포스러웠던 1년 전 경험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인제양양터널은 최장 터널이고, 따라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들어간다면
터널의 끝이 보이는 시점도 그리 길지만은 않다는 걸 알게 된 “학습”의 효과였다.
두려움은 예측하지 못하기에 온다.
어릴 적 놀이동산 귀신의 집을 가면, 분명 귀신이 나올 것을 알고 들어갔지만
귀신이 언제 어디서 어떠한 모습으로 나올지 모르기에 온몸이 긴장하고, 극도의 공포를 느낀다.
그런데 재밌는 건 귀신의 집을 재입장한다면
다음번 방문 때는 한결 여유 있는 모습으로 귀신의 집을 체험할 수 있단 것이다.
심지어 두 번째 방문 때는 귀신을 더 놀랠킬 장난까지 하기도 한다.
아일랜드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는 “The second coming 재림”이란 시를 썼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스페인 독감에 걸린 와이프를 보며 쓴 시였다.
“Turning and turning in the widening gyre
The falcon can not hear the falconer.
Things fall apart, the centre can not hold."
“나선 모양으로 점점 큰 원을 그리며 돌고 또 돌다 보니
매는 매부리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
중심은 지탱되지 못하고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다."
이 시는 재앙의 시기가 올 때마다 자주 인용되곤 한다.
“재림”을 쓴 당시 세계는 1차 세계대전, 아일랜드 독립 전쟁, 러시아 혁명 등으로 전통 질서는 붕괴되고
새로운 질서는 확립되지 않아 전환기적 상황을 맞고 있었다.
예이츠는 시를 통해 세계가 혼란과 파멸의 시기로 가고 있음을 기독교적 메시지와 함께 전파했다.
예이츠가 당시 겪은 시대상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혼돈의 시기였다.
사회로 치면 기존의 질서들이, 개인으로 치면 개인의 중심이 무너지는 순간,
우리는 긴 터널을 경험하게 된다.
처음 겪는 혼돈 속에서 우리는 분명 끝이 있을 법한 터널을 상상하지 못한다.
터널 끝에 빛이 있다는 걸 아는 건 어찌 보면 혼돈의 시기를 지나야 만 알게 되는 소중한 경험이다.
시의 마지막 구절에 이런 문구가 있다.
“And what rough beast, its hour come round at last,
Slouches towards Bethlehem to be born"
"그런데 흉악한 괴수가, 마침내 자신의 시간이 도래하여,
탄생을 위해 베들레헴으로 어기적거리며 가고 있음을... "
불안하고 혼돈스러운 상황 속에서 괴수는 예수가 탄생했던 베들레헴으로 가고 있다.
새로운 세상이 나타날 것 같지만 새로운 세상은 불길하고 공포스러운 세상이다.
실제로 시가 쓰인 당시 상황은 1차 대전이 끝났지만 끝난 것 같지 않은 전운이 감돌던 시기였다.
얼마 후 다시 발발한 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세계는 또다시 끝나지 않은 터널의 시기를 경험하게 된다.
<미셸 들라크루아,파리의 벨 에포크 전시>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미셸 들라크루아 전시를 갔다.
12월 마지막 금요일 저녁에 찾아간 전시였다.
전시는 크리스마스 시즌의 분위기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았다.
현존하는 파리지앵 작가인 미셸 들라쿠르아의 탄생 90주년을 기념하는, 연말과 잘 어울리는 전시였다.
작가는 1930년대 아름다운 파리를 아크릴 페인팅과 동화적 화풍으로 표현해 냈다.
1933년 2월 26일 미셸 들라크루아는 파리 14구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그가 태어나기 하루 전 히틀러는 지지자들과 독일 의회를 불태운 후 정권을 잡았고,
전쟁의 서막이 시작되었다.
미셸 들라크루아는 2차 세계 대전을 어린 시절 경험했지만
그의 그림 속 파리의 모습은 1930년대 전쟁 발발 전 행복했던 시간에 머물러 있다.
현재 90세가 된 화가 미셸은 1930년대 파리의 평화로웠던 풍경을
마치 사진을 찍은 것처럼 재현해 내고 있었다.
1970년 미셸이 40세가 된 후에야 자신의 행복했던 기억 속
1930년대 파리의 모습을 그리는 화풍을 성립했다고 한다.
마치 현재 파리의 골목골목을 다니며 스케치한 것처럼 당시의 모습을
디테일하게 재현해 낸 미셸 들라크루아의 그림엔 자신을 상징하는 어린아이를
여러 모양으로 변주해 그려놓았다.
<미셸 들라크루아,파리의 벨 에포크 전시>
혼돈의 시기와 고통의 시기를 몸소 겪었던 90세의 미셸 들라크루아는 수없는 터널을 지나왔을 것이다.
터널 후 찾아왔을 수많은 빛의 시간 속 중, 그는 결국 단 하나의 어린 시절을 골라
당시 아름다운 추억만을 재현해 냈다.
터널 끝에 빛이 있다는 건 터널을 지나는 사람들을 위한 친절한 사용설명서다.
암흑의 터널을 고통스럽게 지나야 만 드러나는 한 줄기 빛, 그 빛을 위해 우리는 견디고 살아간다.
터널의 빛이 물론 예이츠의 시, 마지막 구절처럼 또 다른 혼돈의 괴물이 될지,
미셸 들라크루아의 나이가 들고 나서야 추억하는 유년시절이 될지 그건 아무도 모른다.
겪고 나서야 알게 되는 희망의 소중함.
암흑 같은 터널 속에서도 반드시 희망이 찾아온다는 걸 알기에 터널이 견딜 만하다는 것.
그리고 봄의 계절, 언 땅을 뚫고 생명의 새싹을 틔우기 위해 시리고 메마른 겨울을 견뎌야 한다는 것.
너무나 당연한 진리들..
다음 달 다시 한번 떠날 강원도 여행에서 난 다시 인제양양터널을 통과할 예정이다.
세 번째로 맞게 되는 터널은 어떤 느낌일지 문득 궁금해진다.
<미셸 들라크루아,파리의 벨 에포크 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