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아병동 터줏대감입니다.> 출간기
"안네 프랑크와 그녀의 가족은
원래 독일에서 살았으나,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한 1930년 초에
네덜란드로 이주하여
거기에서 잠시 평화로운 생활을 했다.
안네의 아버지는 장사를 크게 벌였고,
안네와 언니 마르고트는 학교에 다녔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네덜란드가 독일군에게 점령당하자,
유대인인 안네의 가족은
다시 달아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갈 곳이 없었으므로
암스테르담에 남아
‘프린센 그라흐트’라고 불리는
운하를 향한,
사무실로 쓰던 낡은 건물의 한 모퉁이에
숨어 지냈다.
그때 안네는 열세 살이었다.
- <안네의 일기>, 안네프랑크 지음"
출처 https://www.annefrank.org/
<안네의 일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유대인으로 태어난 작은 소녀가
2차 세계 대전 당시 2년간 숨어 있던
네덜란드 비밀의 공간.
이후 나치에게 발각되어
15세의 나이로 수용소에서
참담한 죽음을 맞이하는 그날까지
한 소녀의 시선으로 기록된
전쟁과 성장, 고통,희망에 관한 일기.
어릴 적 읽었던 안네의 일기는
내용은 가물했으나 책 서문에 찍혀있던
안네가 숨어 기거하던
비밀의 방 입구 사진만은 잊히지 않았다.
책장을 열면 나오는 비밀의 공간.
나치의 압박을 피해 2년을 기거했던 곳.
영화에나 나올법한 비밀의 통로를 거치면
풍전등화 같은 시간 속에서
2년간 동고동락하며
희망의 불씨를 끄지 않고 살았던
한 소녀의 삶이 펼쳐진다.
출처 https://www.annefrank.org/
13살의 소녀 안네는 비밀의 방에서
총성이 끝나고 탄압이 끝나는,
평화와 자유의 날을 기다렸다.
8번의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을
8명의 가족과 함꼐 지내며
고통을 견디는 법을 배웠다.
마음껏 뛰어놀아야 할 한 아이의 삶이
어느 날 멈춰서 비밀의 공간에서 보낸 2년의 시간.
언제든지 비밀의 통로를 뚫고
누군가가 그들을
아우슈비츠로 끌고 갈 수 있다는 불안 속에서도
매일 밤 살아서 학교에 돌아갈 수 있다고 믿으며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던 안네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하루를 살았고
정성을 다해 자신의 일상을 기록했다.
출처 https://www.annefrank.org/
유일하게 생존한 안네의 아버지는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네덜란드로 돌아온 후
안네의 일기를 전 세계에 알리는데 일생을 바쳤다 했다.
"우리 은신처의 여덟 명은
검은 비구름에 쫓기는 비둘기 떼와 같단다.
우리가 모여 있는,
뚜렷이 구분된 이 밀폐된 장소는 아직은 안전해.
그러나 우리를 향해 밀려오는 검은 구름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줄 벽은 점점 얇아져가고 있어.
지금 우리는 빈틈없이 에워싼 위험과 암흑 속에서
안주할 구멍을 찾아 발버둥 치고 있는 거야.
아래에서는 인간과 인간이 서로 싸우고 있고,
위에는 조용하고 푸르른 세계가 펼쳐져 있지만
우리는 감히 뛰어오를 수 없는
위만 쳐다보면서 캄캄한 암흑 속에 갇혀 있어.
나는 울면서 이렇게 신에게 호소한다.
“아, 우리를 희롱하는 저 검은 구름을 거두시고,
우리에게 길을 열어주소서.”
출처 https://www.annefrank.org/
10대 소녀가 썼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의 성숙한 글 속에서
어른이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현실 속에서
그들이 보낸 시간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는
막연히 글을 통해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안네의 일기를 다시 읽은 것은
아이가 병원에 입원하면서부터이다.
왜 안네의 일기가 떠오른 건지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아주 작은 공간, 병실 한 칸
도저히 벗어날 것 같지 않은 병원 생활 속에서의 아이와 나의 일상이
안네의 삶과 오버랩되는 부분이 있어서였으리라.
아이가 잠 들고 난 불 꺼진 병실에서
덩그러니 하루를 마무리할 때면
내일은 저 병실 문을 열고 담당 교수가 기적처럼 나타나
"이제 다 나았습니다. 퇴원해도 좋습니다."
라고 말할 날이 오기를 기원하며
나도 모르게 하염없이 병실 문을 바라보곤 했다.
마침표의 기약 없는 병원 생활이
억겁의 시간 같았다.
아이가 아프고 나서 시작된 글쓰기가
어느덧 내 마음을 위로하고 있었고
에세이에서 나아가 소설로 써보라는 선배의 말에
용기를 내어
현실과도 다른
동화 같은 소설을 쓰게 했다.
"나는 소아병동 터줏대감입니다"의 주인공 선우는
결국 여러 번의 수술을 겪지만
희망찬 발걸음으로 병원 문을 나서며
완치된 제2의 삶을 향해 나아간다.
소설 속 선우가 퇴원하기 전 병원 정원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느끼는 봄의 햇살이
그토록 따스하고
고마운 것인 줄 몰랐다는 소설의 문구처럼
매일매일 병원 문밖을 나서는
그날을 상상하며 소설을 마무리했다.
결국 소설처럼 현실에서도
마법 같은 일이 벌어졌고
아이와 난 길고 긴 병동 생활을 끝내고
제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오늘은 퍽 날씨가 좋아.
비록 숨어 사는 생활일망정
우리는 햇빛이 가득 흘러드는 다락방에
캠프용 침대를 놓고 드러누워서
우리의 생활을 좀 더 밝고 즐겁게 지내려고 애쓰고 있어.
안네. - <안네의 일기>, 안네프랑크 지음 "
출처 https://www.annefrank.org/
<안네의 일기>에서 유독 마음에 와닿는 구절이 있다.
"재물은 잃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마음의 행복은 비록 베일에 싸여 있다 하더라도
살아 있는 한 어느 때든지 다시 소생하는 것이다.
두려움 없이 하늘을 우러러볼 수 있고
마음이 순결하다고 자각하는 한 행복을 구할 수 있는 것이다. "
<안네의 일기> 그 이후의 이야기는 아래와 같다.
"안내의 어머니 에디스 프랑크는
1945년 1월 6일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에서
굶주림과 극도의 체력 소모로 사망했다.
언니 마르고트와 안네는
10월 말에 아우슈비츠를 떠나 베르겐-벨젠 수용소로 이송되었다.
끔찍한 위생 상태로 말미암아
1944년과 그 이듬해에 발진티푸스가 유행했고,
수천 명의 포로들이 이 병으로 죽어갔다.
마르고트가 죽은 지 며칠 후에 안네도 사망했다.
안네는 2월 말 또는 3월 초에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8명의 포로 가운데 수용소에서
오토 프랑크만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아우슈비츠가 소련군에 의해 해방되면서
오토는 암스테르담으로 송환되었다.
1945년 6월 3일 마침내 오토는 암스테르담에 도착했고
이곳에서 1953년까지 거주하다
스위스의 바젤로 이주하여 가족들과 살았다.
오토는 마우트하우젠 수용소에서 남편과 아들을 잃고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여자와 결혼했다.
1980년 8월 19일, 사망할 때까지 오토는
바젤 외곽의 비어스펠덴에서 살면서
딸이 남겨 놓은 일기장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전념했다."
https://www.annefrank.org/
어딘가에서 안네와 같은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모든 고통은 끝이 있다.
살아 있는 한 어느 때든지 다시 소생하는 것이라는
안네의 말을 기억하며 함께 힘을 내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