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가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부여하는 전형적이고, 압박적인 과제들의 종착지는 바로 자녀를 낳는 것이 아닐까 싶다. 좋은 대학에 가야한다, 좋은 직장에 취직해야한다, 좋은 배우자를 만나야한다, 그리고 최대한 일찍 자녀를 낳아야한다... 이 미션들을 순차적으로 통과하지 않을 시 듣게 되는 기성세대의 잔소리 혹은 과한 오지랖은 한국인이라면 피할 수 없는 숙명 같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다행히도 좋은 학교와 직장,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미션까지는 달성하여 어른들의 기대치를 어느 정도 충족시켜왔다. 그럼에도 아직 마지막 과제가 남아있다. 결혼함과 동시에 가족 친지들은 물론이고 직장 상사들의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언제 자녀를 낳을 것이냐', '빨리 낳을 수록 좋다', '낳으면 얼마나 행복한지 아느냐'... 등등...다들 나의 자녀 계획에 크게 관심을 두었고, 남편의 주재원 발령을 앞두고 그 궁금증은 더 커져가는 것만 같았다.
지난 브런치 글들에서 가볍게 언급하였지만, 우리 부부는 자녀 계획이 없다. 시부모님께서는 상견례 다음 날부터 신혼여행을 떠나는 날까지도 늘 손주를 너무나도 기대한다고 하셨다. 계속되는 은근한 압박에 결국 남편은 계획이 없으니 더 이상 불편하게 언급하지 말아달라고 선언하였고, 그의 단호한 말에 시어머니는 눈물을 훔치시기까지 했다. 사실 우리 부부가 처음부터 자녀를 원치 않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연애 초반에는 서로를 닮은 딸을 낳으면 정말 예쁘겠다는 실없는 소리를 하곤 했었다. 내가 아이를 딱히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출산에 대해 큰 공포심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출산, 육아 브이로그를 즐겨보기도 하고, 친구들의 자녀들도 다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든게 한 두 번이 아니다. 어쩌면 종족을 번식하는 것이 동물의 자연적인 본능이니, 자식을 낳아야한다라는 그 본능이 내 속 어딘가에서 꿈틀거렸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렇게 동물적인 감각을 거스르면서까지 왜 자녀를 갖고 싶지 않는 것일까? 처음에는 넉넉하지 못한 경제적인 상황, 경력 단절에 대한 두려움, 사라져버리는 '나만의' 시간, 쇠퇴하게 되는 신체 능력과 같이 통계에서 볼 수 있는 그런 표면적인 이유들과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책임감이 강하고, 통제 성향이 강한' 내 성격에 때문에 그런 결심을 했음을 깨닫게 되었다.
성실함과 책임감만큼 나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있을까. 한 번 무언가 맡게 되면, 내가 해야하는 일이 되면, 무엇보다 성실하게 수행하고,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 내 성격의 최대 장점이다. 장점을 스스로 얘기하는 것이 조금 민망하지만, 남편도 나의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성격을 보고 결혼을 결심했다고 하니, 딱히 자화자찬만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성실함과 책임감이 내 스스로를 너무 옥죄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직장에서 과도한 업무가 너무 버겁게 느껴져도, 책임지고 마쳐야한다는 생각에 무리하게 일을 하며 스트레스 받기 일수였고, 결혼 전 친정에서 어려운 경제적인 상황도 내가 다 짊어져야한다고 생각했다. 가끔은 책임감의 굴레에서 벗어나 내 멋대로 살고 싶은 순간들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못했다. 그냥 나는 그럴 수 없는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력단절이 걱정되면서도, 배우자 해외발령 휴직을 결심한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있었다. 한국에서 나에게 주어진 다양한 책임감들에게서 이렇게라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자녀를 낳는 순간부터는 남은 평생 자녀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야한다. 그 책임감 속에는 돈도 포함되겠지만, 사실 이는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한 사람을 '잘' 키워서 독립시키는 일이야말로 심적으로도 엄청난 책임을 요하는 일이고, 사실 나는 이게 너무 두렵다. 너무 책임감이 강한 사람에게, 너무나도 막중한 책임이 부과되면, 그 압박을 스스로 더 이상 이기지 못하는 상황이 언젠간 올 것 같은, 그런데 벗어날 수도 없을 것 같은 그런 결의 두려움이었다. 나는 오랜 세월 동안 착한 아이 컴플렉스에 갇혀 있었는데, 아이를 낳는 순간, 그 것이 모범 엄마 컴플렉스로 변질될 것만 같았다.
나의 MBTI 는 ENFJ이며, 남편은 INTP이다. 상당히 대척점에 있는 성격인 것은 사실이다. 보통 커플들은 F와 T 성향의 차이로 다툼이 생긴다고 하지만, 나와 남편이 가장 크게 싸우는 이유는 나의 J 성향과 남편의 P 성향이 부딪힐 때이다. 대부분 J를 계획형으로 이해하지만, 사실은 통제형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명료하게 설명 가능하다.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든 상황이 자신의 통제 안으로 들어와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황 통제를 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우리의 부부싸움은 대체로 각종 집안일과 생활 방식을 내 스타일에 맞춰 남편을 통제하려는 데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남편이 내 생각의 영역을 벗어난 행동을 한 순간, 어떨 때는 화가 나기도, 속상하기도, 서럽기도, 견디기 힘들기도 하다. 가끔 스스로도 내 과도한 J 성향이 너무하다고 생각될 때도 있지만, 생각보다 쉽게 바뀌어지지가 않는다.
다 큰 성인 남성을 내 맘대로 통제하는 일은 사실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게 자녀라면 어떨까. 자녀를 키우다면 쉽게 통제할 수 없는 상황도 있을테지만, 오히려 반대로 쉽게 자녀를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상황도 있을 수 있다. 미디어 등에서 그려지는 수 많은 통제적인 부모들의 군상을 보아왔다. 그리고 대체로 통제적인 부모의 자녀들은 딱히 행복해보이지 않았다. 지나치게 통제적인 성격을 가진 내가 과연 잘 아이를 양육할 수 있을지는 답이 뻔해보인다.
결국 내 스스로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하고 불안정하기 때문에, 자녀를 낳지 않고 싶다는 것이다. 이런 내 속도 모르고, 독일행을 앞두고 주위에서는 독일에서 아이를 낳으라는 조언을 많이 줬다. 자녀에게 외국 국적의 취득의 기회를 줄 수도 있고, 어렸을 때부터 외국어 환경에 노출 되는 장점을 누리라는 것이었다. (물론 독일은 기본적으로 속인주의 국가로, 독일에서 태어난다고 해서 국적이 부여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내 자녀 계획을 잘 아는 친구들은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기도 하였다. '주재원 와이프로 나가면 다 애 낳고 오더라' 라는 말로 겁 아닌 겁을 주기도 했다. 주재원 와이프의 인맥이나 활동이 한국에 비해 상당히 제약되어있으니, 외로움에 못이겨 자연스럽게 자녀를 원하게 된다는 의미였다. 실제로 자녀가 있는 주재원 와이프들의 경우에는, 자녀를 매개로 여러 커뮤니티에 소속되기도 하고, 이로 인해 고립되지 않은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주재원 와이프 생활 1년이 다 되어가는 요즘, 내 생각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사실 요즘 마음은 반반이다. 자녀를 절대 낳지 않을거야! 라고 생각했던 마음이 조금은 느슨해졌다. 어떤 날에는 한국보다는 독일에서 출산하는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는 외로움 때문이 아니다. 한국의 가족과 친구들만큼 가깝고 깊은 사이는 아니더라도, 나는 내 나름대로 이곳에서 사람들을 사귀고 관계를 형성해가고 있다. 그래서 자녀가 필요할 만큼의 깊은 외로움을 느끼지는 않는다. 어찌보면 한국에서 나에게 부여된 많은 책임감들에서 지금은 벗어났기 때문에 생각이 풀어진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큰 계기는 "보람"이라는 측면이다. 지난 브런치 3, 4편에서는 가사 노동과 집안 경영이 주는 성취감이 전무해 힘들다고 토로하였다. 성인인 남편을 이래저래 내조하는 일은, 가장에 대한 나의 고마움의 표현일 뿐 그 어떤 보람이나 뿌듯함을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가정주부로서 밥을 차리고, 집안일을 하고, 가족의 여러 일정을 관리하는 일은 자녀가 있든 없든 해야하는 일이다. 성인 남성 1명만을 위해 그 어떤 보람도 없이 가사일을 하는 것보다, 같은 일이라도 내가 낳은 자식을 위해 한다면 적어도 보람이나 성취감, 뿌듯함은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많은 부모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건강하게 바르게 자녀를 잘 키워 온전한 성인으로 독립시킨다면, 그 것이야 말로 가장 인생의 가장 큰 업적이자 자랑거리일 수 있다.
책임감. 통제적인 성격. 보람. 요즘에는 이 세 가지가 내 마음에 왔다갔다 하고 있다. 남편은 여전히 자녀가 없이 사는 것을 추구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나이가 들어 후회할까봐 두렵다고 한다. 물론 이 물음에는 정답은 없지만, 그렇다고 절대 쉽게 답을 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남은 주재원 기간동안 우리는 어떤 심경의 변화로,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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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로만틱 가도가 시작되는, 독일의 뷔르츠부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