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을 때마다 어김없이 목표를 세우고 다짐하는 스타일이지만, 직장을 다니는 동안에는 현실의 삶이 바쁘다는 핑계로 정작 제대로 달성해 본 적은 없던 것 같다. 늘 흐지부지되기 일쑤였다. 하지만 올해는 달라야만했다. 휴직을 하고 독일에 온 이상, 바빠서 - 피곤해서 - 등등의 이유는 댈 수 없었다. 그래서 조금은 거창한 목표를 세워보았다. 바로 독일 대학원 석사과정을 지원해보기로 한 것이다. 대학원 진학에 대한 미련은 대학 졸업 이후에 간간히 있어왔지만, 솔직히 무엇을 공부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거니와, 업무와 병행하기도 버거웠고, 무엇보다도 금전적인 문제에서도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게 되었다. 지금 나에게는 3년의 휴직 기간 덕분에 시간은 충분히 생겼고, 독일 대학원은 학비가 아주 아주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지금이야말로 바로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과 직장동료들, 심지어 휴직 전 답답한 마음에 받았던 커리어 상담가 또한 석사 과정을 적극 추천하였기 때문에 올해 목표를 '독일 대학원 진학'으로 삼았다.
그런 내게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독일어 어학 성적이었다. 독일 대학원 중에서는 영어 성적이나 간단한 독일어 성적을 요구하는 곳들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C1 *이상의 독일어 성적을 요구한다. 당시 내 독일어 수준은 고등학생 시절 취득한, 거의 20년이 다 되어가 유효한지도 모르겠는 B1 성적표에 멈춰져있었다. 시간이 넉넉해서 B1에서 C1까지 차근차근 공부한다면 못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생각보다 일정이 빡빡했다. 휴직 기간 (혹은 남편 주재원 근무기간) 은 3년. 매월 10월에 시작하는 독일 학제. 이미 지나버린 1년. 그렇다. 올해 가을학기에는 무조건 입학을 해야, 남은 2년 동안 학업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대학원 원서 접수 기간, 독일어 시험 성적 발표날짜를 고려해봤을 때 내게 C1 자격증을 공부할 시간은 고작 4개월 뿐이었다. 발등에 제대로 불이 떨어졌다.
4개월동안 초집중의 벼락치기를 한 후 시험을 치렀지만, 성적에 자신이 없었다. 제일 자신 있었던 읽기 영역이 생각보다 어려워 막판에 거의 찍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다음 회차 시험을 신청하여 안전하게 재도전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시험비용이 비싼 편이라 괜히 남편의 눈치가 보이기도 했고, 운빨을 믿어보고 싶기도 했다. 남들도 다 어렵지 않았을까, 찍은게 몇 개 맞지는 않았을까 라는 안이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이 예상은 아주 정확히 빗나갔다. 총점 16점을 획득하여야 C1을 인정해주는 시험에서, 읽기 영역에서 1점이 모자른 - 총점 15점을 획득하게 되어, 대학원 진학 조건에 미달하게 된 것이다.
결과 발표 이후, 바로 다음 시험을 접수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고, 다른 꼼수를 찾기 시작했다. 바로 '조건부 입학'이라는 것이었다. 인터넷에서 독일 유학 정보를 뒤져보니 독일어학 성적이 일부 부족해도, 일단 조건부로 합격하고 학기 중 등 일정 시점까지 독일어 성적을 보완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조건부 합격을 기대해보기로 하고, 조건에 미달하지만 다짜고짜 원서를 쓰게 되었다. 그리고 조건부 합격을 받게 된다면, 그 이후 다시 독일어 시험을 준비할 요량이었다. 그렇게 부족한 성적으로 나는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대학에 지원하였고, 결국 입학 허가서(Zulassung) 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입학허가서를 아무리 살펴보아도, 나의 부족한 독일어 성적을 언제까지 보완하라는 이야기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합격이 된 줄 알고 조금은 기뻐하기도 했지만, 어딘가에 찜찜한 마음은 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개강 한 달 전, 등록금을 납부를 완료하고 입학 등록을 하려고 하니, 입학 등록 절차(Immatrikulation 혹은 Einschreibung) 마감일까지 C1 독일어 성적을 제출해야만한다는 공지를 이제서야...!!! 보게 되었다. 지원할 때부터 홈페이지에 나와있었는데 내가 제대로 보지 못한 탓이었다. 입학 등록 마감일까지는 겨우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이제서야 어학시험을 접수해도 마감일까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아뿔싸. 입학 등록을 못하게 되어버렸다.
지난 주, 나는 아쉬운 마음에 학과장 교수님께 이메일도 보내보고, 신입생 오리엔테이션도 찾아가 나의 사정을 설명하는 등 독일어학성적을 추후에 제출할 수 있는지, 예외를 적용해줄 수 있는지 읍소하러 다녔다. 교수님은 친절하셨고, 최대한 도와주겠다고 하셨지만, 결국엔 방법이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리고 이렇게 나의 독일 대학원 도전은 10개월만에 막을 내리게 되었다.
독자님들도 아마 느끼실 것이다. 위의 구구절절한 입시도전기가 얼마나 많은 핑계들로 점철되었는지 말이다. 입학 등록 전까지, 교수님께 읍소하러 다니기 전까지, 나에겐 이미 기회가 많이 있었다. 15점을 확인한 이후, 바로 다른 시험을 접수하고 다시 시험공부를 시작했었으면 됐었다. 하지만 시험 이후 나는 독일에 방문하는 가족들과 여행하느라 너무 바빴다. 4개월 간 열심히 벼락치기 했지만서도, 가장 중요한 시험 1주일 전에는 미리 친구와 약속한 이태리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비싼 시험비용도 핑계에 불과했다. 휴직 전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마이너스 통장을 풀한도로 뚫어놓고 왔다. 그 자금을 융통했으면 되는 일이었다. 의미없이 유튜브나 드라마 정주행을 하며 시간을 흘러보내는 날들도 많았다. 그렇다. 대학원 진학을 그냥 목표로 삼았을 뿐, 그 목표에는 그 어떤 목표의식도, 그 어떤 간절함도 딱히 없었다. 그래서 계속 나는 안일한 마음을 가졌고, 꼼수를 부렸고, 요량을 피웠다.
내가 지원한 학과는 한국학과였다. 사실 그동안의 직장에서의 경험이나 앞으로의 커리어를 생각하면 경영학과나 경제학과에 지원하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독일 대학원은 학부 때의 전공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즉, 학부 때 전공하지 않은 과목으로 석사를 지원할 수 없다. 특히 독일에서 경영학은 이과적인 학문에 가까워, 학부 때 통계학과 수학 과목을 많이 이수해야한다. 나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복수전공을 했지만, 마케팅 위주의 과목을 수강했지, 통계와 수학관련한 과목은 전혀 듣지를 않았다. 그래서 지원 자격이 아예 충족하지를 않았다. 사학이 본 전공이었던 나는 한국학에 지원하는 것이 학부전공과 가장 연관성이 있었다. 물론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아주 익숙하다는 것이 졸업까지 생각했을 때 유리한 부분도 있었다. 평소 한국문화가 해외에 어떻게 비춰지는지 관심은 많은 편이기도 했고, 혹시라도 직장을 그만둘 경우, 석사학위로 새로운 직업을 모색해 볼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었다.
그럼에도 이러한 장점들은 나에게 '간절함'까지 주지는 못했다. 정말로 간절했으면, 뭐든 다 상관없이 목표만 보며 달렸을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한국학 석사과정이 나에게 그렇게 간절하진 않았다. 나도 모르게 '그거 배워서 뭐에 쓰려고...' 라는 의심을 품기도 했고, 그 때마다 '아냐 길이 있을거야, 그래도 뭐라도 해놓으면 좋잖아' 라고 나를 다독였다. 그 다독임이 간절함을 만들어주지는 않았다. 경영학이었으면 조금은 더 간절했을까? 그냥 하게 되면 내 스스로의 자기만족이고, 안해도 크게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무언가를 간절하게 이루려고 노력했던 적이 언제였던가. 아마 취업 이후에는 그런 간절함이 내 인생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만 같다. 입사 후에도 여러 가지 자기 계발에 대한 압박들이 있었지만, 워낙 안정적인 직장이라 굳이 하지 않아도 문제가 전혀 없었다. 휴직 이후에는 더 심해졌다. 직장에 다니며 돈을 벌지 않는데도, 지금 딱히 사는데 문제가 없으니, 모든 것이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 되어버렸다. 새해 다짐으로 목표 몇 가지를 끄적끄적 거리면 뭐하나. 확실한 동기와 목표 의식이 없는데... 그래서 이번 주에는 내내 기분이 우울했다. 대학원에 가지 못해서, 한국학을 더 깊게 공부할 수 없어서, 스펙을 더 쌓지 못해서 스스로가 한심한 것이 아니었다. 정말 '간절히' 원하는 것이 없어서, 그래서 이런 목표 의식 없는 삶이 무언가 내 삶을 공허하게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아서, 그래서 참 마음이 그랬다.
*독일 어학 능력 판단 기준은 CEFR(유럽 공통 언어 기준)을 따르며, A1 < A2 < B1 < B2 < C1 < C2 순으로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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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히틀러 별장이었던 켈슈타인하우스에서 바라본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