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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그게 뭐가 대수라고.

9화-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by 데이지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나오고 대학도 강원도 춘천으로 가서 강원도를 벗어나고 싶었다. 원주, 춘천은 강원도에서도 나름 도시축에 속했지만, 나에겐 왠지 시골같은 느낌이 강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나는 입버릇처럼 친구들에게 말하고 다녔다.


"나는 무조건 서울에서 살거야!!"


서울은 나에게 꿈 같은 곳이었다. 다양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고, 가볼 곳도 많고, 수많은 백화점에 대형 쇼핑몰 그리고 놀이공원, 마지막으로 다양한 일자리까지. 딱히 뭘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그저 서울을 하고 싶었다. 서울만 가면 행복해질 줄 알았다.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수많은 경험들을 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이라고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언제부터 였는지는 몰라도 서울을 가기 전까지 끊임없이 서울을 갈망했던 나였다.


하지만 무작정 서울을 갈 순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해야했지만, 당장 서울에 이력서를 내기엔 한없이 모자르다고 생각했다. 운좋게 교수님의 추천으로 첫 직장 수학전문학원의 강사를 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5년을 일했다. 20대 초중반까지 춘천은 나에게 기회의 땅으로 가기 위한 발판이 되어주었다. 서울보다 물가가 확실히 저렴했던 그곳은 돈 모으기에도 충분했고, 5년 일하면서 내 앞으로 받은 학자금대출 약 2000만원 정도를 갚았다. 사실 5년동안은 대출을 갚느라 돈을 모으고 일을 하는데 정신이없어 서울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학자금 대출을 모두 상환하자마자 떠오른 생각은 '이제 떠날때다.'라는 것이었다. 어렵게 퇴사를 하고, 잠시 고향 원주로 돌아와 서울로 갈 준비를 했다. 사실 모아둔 돈이 조금 부족했지만, 무리해서라도 서울에 가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서울의 작은 오피스텔을 보고, 계약금까지 걸었다. 서울의 일자리를 구하기도 전이었기에 조금 성급할 수도 있었겠지만, 왠지 그때는 마음이 참 급했다. 그렇게 이사 전 날, 별로 많지도 않은 짐을 싸고 있던 나에게 원주에서 꽤 오래 종합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사촌오빠에게 연락이왔다.


조건은 춘천에서보다 20-30만원정도의 월급을 더주고, 딱 1년만 도와달라는 이야기였다. 당장의 서울에 가서도 뾰족한 수가 없었던 나는 그 제안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1년 더 나의 서울 생활은 미뤄지게 되었다. 1년동안 열심히 일했고, 돈도 꽤 모았다. 꽤 괜찮은 곳으로 갈 수 있는 보증금과 한두달치 월세정도는 모을 수 있었다.


난... 오로지 서울로 갈 생각 뿐이었던 것이었는지, 그 1년동안의 우리, 마루와의 추억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땐 그저, 서울만 가면 이곳보다 훨씬 좋은 공원도 가고, 더 자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거라고, 당장의 함께하는 시간보다 나중의 시간을 위해서 조금만 참으면 될거라고만 생각했다. 나는 분명 더 나은 미래를 꿈꿔왔으니까.


1년을 일하고, 1년이 채워지기 1-2달전부터 서울 출판사쪽으로 이력서를 냈다. 학원강사보단 훨씬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고, 시험기간의 주 7일 출근도 없을 것 같은 쪽이 출판회사였기 때문이었다. 학원강사 경력 6년이 도움이되었는지, 다행히 한 곳에서 면접 연락이 왔고, 학원 쉬는 주말에 면접을 보았다. 어떤 스타강사의 교재와 문제집을 만드는 연구실이었던 그 곳은 꽤 조건이 괜찮았다. 면접에서 꼭 이 곳에 오고 싶다고 어필하고, 2달만 기다려달라고 무리한 부탁을 했음에도 끝까지 기다려준 그 곳에 바로 출근할 수 있었다.


원주 학원에서 전날까지 일하고, 밤 심야 버스를 타고 우선 친구집으로 향했다. 다음날 바로 서울 직장으로 출근해야했기때문에 집을 구할 시간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연스럽게 우리와 마루는 고향집에 두고,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하고 새롭고 설레는 서울 생활에 뛰어들었다.


참 좋았다. 우리가 가기 전까진, 친구의 집에 함께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월세와 관리비만 반반씩 내며 어쩌면 이곳에서 1년 더 지내며 여유를 가지면 우리와 마루를 더 좋은 집에 데려올 수 있을거란 희망도 가졌었다. 그렇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라고 당연히 함께 할 미래가 있을 거라고, 그런 시간은 분명 내가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줄 것이라고, 어리석게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전혀 아니다. 시간은, 행복은 전혀 기다려주지 않는다. 지금 당장의 소중한 것을 챙기지 않으면 어쩌면 그것과 영영 함께 할 시간이 없을 것이다. 그때, 우리와 마루를 두고 온 그때, 사고로 우리를 보내고서야 나는 그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의 행복을 미루면 더 나은 미래가 절대 올 수 없다. 지금 가질 수 있는 행복은 지금뿐이다.


내가 조금 더 빨리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어쩌면 처음 그때 우리와 마루를 함께 데려올 것을... 이제는 그러지 않기 위해 마루와 함께 하는 시간이 참 소중하다. 함께 산책을 하고, 함께 딩굴거리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더이상 더나은 미래를 위해 미루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참 아이러니하게 행복하면서도 후회스럽게 느껴진다. 어쩌면 우리와도 이렇게 함께 행복할 수 있었을텐데...하면서.


서울, 그곳에 간 걸 후회하진 않는다. 나에게 정말 많은 기회들을 주었고, 많은 경험을 하게 해준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서울 그곳에서의 시작은 여전히 참... 서글프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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