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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고단하지만 계속 가야 하는 이 길

나를 믿어요, 그리고 지치지 말아요

by 비터스윗

친구들을 만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조그만 트럭 안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닭강정 사장님을 봤어요. 아직 정리가 덜 끝났나 봅니다.

오늘은 매주 목요일 아파트 장 서는 날. 채소, 과일, 생선 사장님들과 함께 오시는 닭강정 사장님은 오늘 재료가 다 떨어졌는지 마감 시간이 오후 9시인지 부지런히 쓸고 닦고 하시네요.




참 고되요.

가족 부양을 위해 아님 자신을 위해 일하실 사장님. 오늘 하루 얼굴 붉힐 일 없었는지 허튼소리 듣지 않으셨는지, 매출도 괜찮으셨는지 궁금하네요.

자존심은 다치지 않으면서 미소를 지어 보이느라 정말 힘드셨을 텐데.


참 고단해요, 사는 건.

두 달 만에 초등학교 때 친구들을 만나고 왔거든요. 제가 골라서 추천한 장소는 친구들이 다들 정말 만족해서 기분이 좋았거든요. 오랜만에 기분이 좋아져서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사장님이 열심히 일하시는 모습을 보니까 한없이 곤두박질치던 오늘 아침이 떠오르네요.

요 며칠, 갑자기 몸이 안 좋아져 생각의 회로까지 망가졌는지 쓸데없는, 불량스러운(?) 질문들에 대처가 안되더라고요.


나는 누구일까, 어디로 가는 걸까,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 나의 끝은 어디일까.

아무도 정답을 쥐어줄 수 없는데도 끊임없이 이런 질문으로 나를 괴롭혔어요.

열 살, 스무 살, 서른 살... 예순이 넘어도 일흔이 넘어도 생의 마지막까지도 자신에게 물어보는 질문들.


일회성... 오늘 이 순간은 절대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일회성.

가끔 데자뷔처럼 이미 지나간 시간이 재연된다고 느끼기도 하지만 똑같은 일이 다시 일어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일회성이 아니라면 아마도 우린 이런 고민을 하지 않겠죠. 나의 인생은 다시 리부팅될 테니까요.




우리 모두는 철학자예요. 철학자가 뭐 대단한 사람인가요 뭐.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사나, 어떻게 살 것인가. 그런 고민을 끊임없이 하는 사람들이 철학자죠.


남에게서 답을 구하기도 했었어요. 누군가 나에게 그 길은 아니라고, 이 길로 가야 한다고 말해주길 바랐어요.

나를 믿지 못하는 시간이었거든요. 나의 선택은 여러 번 실패했었어요.

누구 탓도 아닌데, 원망도 소용없는데.


부지런히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사장님을 보면서 그의 오늘 하루는 어땠을까, 그는 또 어떻게 내일을 살아갈까 물어보고 싶었어요.

무력감에 빠져도 어서 일어나라고 채근하고, 삶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으려고 희망으로 근육을 키우고

너무 힘들 땐 실컷 눈물로 씻어내고, 그렇게 살아내고 있진 않을까.

건강한 회복력으로 내일은 또 다른 아파트에 닭강정을 팔러 가실 사장님.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해답은 영영 찾지 못할 거예요.

그저 이건 알고 있어요.

나의 삶을 미친 듯이 사랑해야 해요. 나를 믿어야 해요.

나의 길을 그냥 가는 거예요. 또 실패하고 또 좌절하면 어때요. 얼른 일어나 서둘러 가던 길 가면 돼요.

지치지 말아요.

쉬면 좀 어때요. 운동화 끈 다시 묶는 척 쉬면서 또 추슬러 보는 거예요.

빨리 가면 뭐 하려고요. 그저 내 보폭으로 주변도 둘러보면서 그렇게 가요.

바라봐주지 않아도 무심히 피어있는 들꽃,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를 앞질러 가는 네 바퀴자전거들, 수십 년 절대 손 놓지 않고 살아온 부부의 소곤거림, 세상 신난 귀여운 털뭉치 강아지들 그리고 사람들.

나를 믿으며 지치지 않으면서 내일도 나의 하루를 열심히-아니 열심히가 안되면 슬렁슬렁-살아내리라 다짐하면서 오늘을 정리해 봅니다.


눈부신 아침, 눈부신 하루, 당신의 삶에서 지금이 가장 눈부신 사장님, 내일도 많이 파시고 부자 되세요. 다음 주엔 꼭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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