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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을 이겨내기 위해 쓰다, 애쓰다

당신은 지금도 잘하고 있어요

by 비터스윗

유난히 격언을 찾아서 읽을 때가 있다. 좋은 말, 좋은 글귀, 격언들을 찾아서 곱씹어 본다.


막막할 때 그런다. 사는 게 참 힘들다 느껴질 때.

격언이라기보다는 인용구라고 해야 할지 눈에 들어온 문구가 있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다"

그래, 기대가 없어야 돼. 뭐 하러 기대해. 왜 기대를 하고 실망을 하냐고.

난 누구에게 기대를 했을까? 가족에게? 가족이 아니라면 누구? 어디에? 무엇을?

어디선가 행운이 뚝 떨어지기를 기대했을까.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왜 아직도 편치 않은 거냐며 청구서를 내밀고 싶었을까.

좀 더 편하게 살고 싶고, 좀 더 여유 있게 살았으면 좋겠는데 그게 안 되는 현실에 원망도 했더랬다.

그래도 기대하지 말자, 하지 말자.

하지만 속으로 다짐하다가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한참을 끅끅거렸다.

힘이 쭉 빠지면서 그럼 나는 이대로 이렇게 살다가 그냥 때가 되면...

삶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으니 실망은 없지만 희망도 없었다.

기대를 하지 않으니 절망했다.


기대를 하지 않으니 절망하다


너무 나간 것이다. 실망을 하지 말랬는데, 절망을 한 거다.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고 인정해 주지 않으니, 더 이상 나의 효용성은 이 세상엔 없다고 극단적으로 생각했다.

나의 상태가 별로 좋은 상태가 아니었다.

요즘 말하는 '나락'이라는 것이 얼마나 순식간에 벌어지는 것인지 깨달았던 6개월.

잘 다니던 직장에서 재계약이 불발되고, 덕분에(?) 받은 퇴직금으로 딸과 호기 있게 유럽으로 달콤한 여행도 다녀왔지만, 건강하시던 친정아버지가 40일 만에 세상을 떠나시고 그 여파로 친정어머니의 건강도 안 좋아지셨다. 2년 전부터 친정에 더부살이하고 있던 나는 이제 엄마 집의 세대주가 됐다. 엄마의 가장 가까운 보호자가 됐다.

그 와중에도 아버지 빈소에 한걸음에 달려와준 친구와 지인들 덕분에 맏상주로서 아버지를 잘 보내드리면서, 언제나 자신감 있는 척, 호쾌한 척, 넘어져도 툭툭 털고 일어나며 까지고 멍들어도 눈 질끈 감던 내가 남의 도움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을 제대로 깨닫게 됐다.

인생의 파고를 서너 번은 넘었지만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을 치르고 나니, 마치 잘 조립된 퍼즐이 산산조각 난 것처럼, 어디서부터 다시 끼워 맞춰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그렇지, 정신 차려. 실망하지 말라는 가벼운 말을 절망으로 바꿔넣다니.


절망을 이겨내기 위해 쓰다, 애쓰다


지금도 어느 곳에서는 절망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내게도 그 절망의 터널을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기억하기 싫은 시간들이 있었다. 사실 그때가 지금의 나보다 훨씬 몇 갑절 힘들었을지 모른다.

반려견까지 온 식구가 원룸으로 이사를 가야 했던, 채권 수심도 당했던, 둘째 아이는 재수를 포기하고, 온 식구가 아르바이트를 했던 시절. 그래도 '무한도전'을 보면서 웃고 서로 절망하지 않도록 다독이던 시간들.

그 시간들은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아도 끝이 있었다. 어쨌든 애썼다. 절망하지 않으려 애썼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다고? 이렇게 바꾸는 거다. 기대가 작을수록 실망도 덜하다.

실망은 하겠지만, 기대를 한다는 것은 그래도 애썼다는 거다.

애썼으나, 기대가 크지 않아서 덜 실망했다고, 아니 다른 말로 어느 정도는 만족했다고 할 수도 있지 않은가.

(왜 애쓰지 않았냐고 다그치려는 건 아니다. 타인의 삶에 대해 누가 과연 다그칠 수 있는가)


그래서 나는 애쓰기로 했다. 절대 절망하지 않겠다.

다양한 방법으로 애쓰고 있다. 일자리도 알아보고 면접에 떨어져도 낙담하지 않으려 애쓰고 현재 나의 현실에 빨리 적응하려고 애쓰고 하루 종일 좌불안석인 엄마의 컨디션을 잘 파악하려 애쓰고.


그리고 쓰기로 했다.

내가 잘하는 것도 아니고 아마도 타고난 것도 아니지만 내가 좋아하는 거니까 하기로 했다. 내게 공간을 허락한 브런치스토리 덕분이다. 오랫동안 들락날락 만 하다가 다시 돌아온 글쟁이들의 파라다이스.

아직 일천하고 구독자수도 다른 작가들에 비하면 정말 '나노' 수준이지만 그들의 라이킷과 댓글을 보면서 내가 끄적거리는 것들의 방향도 수정하고 좀 더 잘 읽힐 수 있는 글을 쓰려고 애쓰고 있다.

생전처음 시도 써본다. 시를 배우기만 했지, 내가 시를 쓰는 건 상상도 하지 않았다. 아무나 시인이 될 수 있나. 그래도 내 진심을 담아 써본다. 낯간지럽고 쑥스럽지만 나의 감성을 최대한, 천연 암반수 마냥 끌어올리고 있다. 다행히 고갈되진 않았나 보다. 퍼올릴수록 쏟아져 나온다.

나 스스로에게 진심으로 다가가기 위해서, 또 영원한 나의 눈물 버튼인 두 아이에게도 엄마는 늘 애쓰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오늘도 쓰고 있다.

나의 애씀을 증명하는 공간, 브런치 스토리. 이제는 들락날락 안 하고 나의 목표를 향해 착실히 준비하는 공간으로 꾸며볼 생각이다.


뭘 걱정하세요, 그냥 쓰세요.

당신은 지금도 잘하고 있어요. 저보다도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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