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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게 다정할 필요가 있을까요?

챙길 사람 챙기고 버릴 사람 버리고

by 비터스윗

10여 년 전 어느 후배와의 일화.

초등학교 후배였던 그는 자기 주변의 친한 사람들을 모아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관심사도 비슷하고 연령대도 비슷하고 유쾌한 사람들이라 쉽게 친해져서 오프라인으로도 자주 만나 친교를 나눴다.

그러다 내가 어떤 회원과 좀 껄끄러운 사이가 돼서 후배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ㅇㅇ씨가 도대체 왜 날 싫어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난 그 사람을 좋게 생각했는데.

말이 고민상담이지 험담이었다. 같은 얘기를 30분 넘게 반복해서일까. 기야 후배가 폭발했다


"언니, 언니는 왜 그렇게 착한 척을 해?"

"뭐? 내가?"

"그냥, 언니, 언니도 같이 욕해. 그 사람 맘에 안 들면. 사람들은 안 맞는 사람들이 있잖아. ㅇㅇ씨가 언니 싫은가 부지. 서로 대화도 하지 말고 그냥 말하고 싶은 사람이랑만 말해."


ㅇㅇ씨의 댓글에서 가시가 느껴져서, 내가 딱히 잘못한 게 없는데 왜 그러는지, 뭔가 오해를 풀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 건데, 후배는 잘잘못을 따질 일이 아니라 그냥 누구나 싫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인정하면 되는 거란다.

논리로 푸는 게 아니라 그냥 적절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적어도 그때까지 나는, 사람이 사람을 싫어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내가 착한 척 한건 맞는 것 같다. 이왕이면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야 될 것 같았고 꼭 챙기고 싶은 사람이 아니어도 최대한 친절하게, 또 관대하게 대했다.

하지만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런 갈등이 불거지자 자존심이 무척 상했다. 나를 미워하고 긁고 조롱하는 사람은 성격이 이상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싫어하는 사람 일거라고 저주했다.

하지만 후배와의 대화 이후, 세상에는 이유 없이 -이유야 따져보면 있으리라-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아무리 내가 잘해준다 한들 그들은 내 본심을 알고 있으며 그러니 굳이 한 척하고 대한 척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게 됐다.

나는 내 인생의 중심이면 된다. 사람들은 남의 인생사에 크게 관심이 없다. 그때그때 안 맞으면 관계를 끊어버리고 무시하면 되는 거였다.

그 후로 대인관계에 고민하고 집착하던 버릇이 사라졌고, 사업을 할 것도 아니면서 네트워킹이 필요하다고 굳이 여러 사람을 만날 필요도 없다는 것 그리고 내 마음이 가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중 짧은 장면 하나가 내 마음을 울렸다.


너는 밝고 따뜻하고 착하고 다정한 사람이야.
'봄날의 햇살’ 최수연이야.


난 다정한 사람일까?

표현을 먼저 하기보다 주로 받는 쪽이어서 먼저 다정하게 말을 걸거나 충고나 응원을 했던 기억이 별로 없다.

내게 중요하지도 않은 사람들에게는 좋은 이미지를 남기려고 노력했던 내가 정작 챙겨야 하는 사람들은 챙기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자신들도 일상에 지치면서도 나를 배려하고 신경 써 주었으며 안심시켜 주었다. 연락도 잘 안 하고 혼자서도 잘 지내는 척 무심하게 대하는 내 곁을 한결같이 지켜준 친구들이었다.

'봄날의 햇살'. 얼마나 따뜻한가.

이제 나는 앞으로도 함께 고락을 같이 할 이들에게 정말 다정한 사람이 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당신은 다정한 사람인가. 당신에게도 다정한 사람이 있는가.

다정함은 갑자기 뚝딱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서로에게 느껴지는 따스함은 오랫동안 지속해 온 그 사람의 진심이며 정성의 드러냄이다.


무엇이든 누구든 영원히 내 곁에 머무를 거라는 확신은 없다. 아쉬운 사람이 먼저 붙들어야 한다.

힘껏 끌어안고 마음을 다해 다정하게 바라보려 한다.

조금 오글거리긴 하지만 말이다.


(다음 주부터는 매주 금요일에 연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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