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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수 Oct 24. 2021

부귀와 교만의 끝은?

노자와 두영, 전분 이야기   




부귀이교 자유기구
공수신퇴 천지도 

富貴而橋 自遺其咎

公遂身退 天之道 


"부귀한데 교만하면 그 허물을 남기는 것이다.
공을 이루었으면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이다."

(노자 9장)








사마천이 “재앙은 그 원인과 결과가 있다”라고 평한 인물이 있는데, <위기무안후열전>의 전분과 두영이다. 

이들은 왕의 외척으로 권세를 누렸지만 우리가 짐작하듯, 비극적인 결말의 인물들이다. 

왜 그런 결과로 끝날 수 밖 에 없었을까? 

부모복, 형제복이 최대치였던 인물들인데 재앙으로 끝난 그들의 인생의 원인이 궁금했다. 


두영은 한나라 효문제의 왕후이자, 효경제의 모후인 두태후의 조카이다. 

효경제 때 한나라에 위기인 오초 7국의 난이 벌어지자 그 사태를 진압하는데 황실의 외척으로 대장군으로서 공을 세워 위기후에 봉해졌으며,  조정에서 큰일을 논할 때면 위기후를 대적할 만한 열후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후 두태후가 두영을 승상으로 추천했지만 효경제는 두영이 경솔하다는 과거의 일을 이유를 들어 등용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두태후가 죽자 위기후는 더 이상 의지할 곳이 없어지자 세력이 약해졌다.  그러다 그를 유일하게 따르던 관부 장군이 무안후 전분과 감정 싸움을 하다 소송에 휘말리고 그를 두둔하다 결국은 기시형에 처해 죽었다.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자신의 권세가 약해지자 불평하며 지내다, 결국 술자리에서의 사소한 감정 싸움에 휘말려 모든 것을 잃은 것이다. 난을 해결하면서 세운 공으로 권세를 얻었지만 그 권세가 언제까지나 계속되기를 바란 그 욕심이 문제였던 것이다. 게다가 자신의 배경이 되어준 두태후가 죽고 효경제가 장성해졌다. 그렇게 세상이 바뀌었는데도 계속 권세를 유지하고 싶은 그 마음을 들여다 보는 수양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럴때 걸맞는  노자의 “공수신퇴 천지도” 라는 말이 있다. 공을 세웠으면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라는 것이다. 공을 세웠으면 그 공 안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물러나야 하는 것이 순리라는 그 이치를 되새겼어야 했다. 그러면 사소한 싸움에 휘말려 어의없게 죽음을 맞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사마천은 위기후 두영을 두고 "시운의 변화를 모르고 불손하게 살다 억울하게 죽은 인물"로 평한 것이다. 


전분은 효경제의 왕태후의 동복 동생이다. 태후의 동생이라는 귀한 신분으로 전분은 무안후로 봉해졌고, 천하에 권세와 이익을 쫓는 벼슬아치들은 무안후에게 몰렸다. 그러다 두태후도 죽고, 효경제도 일찍 죽어 왕태후가 대신 정치를 했고, 그 덕에 외척인 무안후는 승상이 되었다. 당시 효무제는 어린 나이로 막 즉위하여 무안후는 어린 황상을 도와 관리 임명 등에 일일이 관여하면서 '호가호위' 할 수 있게 되면서 그의 권세가 최고로 높았다. <사기>에 전하면  “그의 저택은 어떤 저택보다 컸고, 전답과 동산은 매우 기름졌으며, 각 지방에서 기물을 팔러오는 자가 길에 줄을 지어 있을 정도였으며, 제후들이 바치는 뇌물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하니 그의 교만함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다 지는 해와 같았던 두영의 편에서 의리를 지킨답 시고 관부 장군이 술 기운에 무안후 전분에게 불손하게 대들자, 무안후는 술자리에서 일어난 일인데도 그를 옥에 가두고 재판에 넘겼다. 이에 급암이나 한안국 같은 대신들도 별거 아닌 감정싸움에 과다한 형을 삼갈 것을 요구했지만, 황상이였던 한무제는 결국 왕태후를 의식해 두영을 비롯해 관부 일족을 기시형으로 죽인 것이다.  그러나 전분도 인간이기에 양심은 속일 수 없었던 듯, 그 이듬 봄부터 '귀신에 홀린 듯 무언가에 잘못했다' 라고 헛소리를 하며 괴로워하다 시름시름 앓고 곧 죽었다 한다. 


위기후 두영도 어린 황제와 태후를 도와서 승상으로서 나라를 대신 다스리며 온갖 권세와 부귀를 누렸다. 하지만 그것에 도취되어 역시 심히 교만해졌고 힘이 약한 다른 신하들에게 아량을 베풀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힘을 이용해 모함으로 궁지로 몰아 처참하게 죽이는 사건을 만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도 결국에는 자신의 과오로 고통스러워하다 죽어 간 것이다. 


이처럼 부귀와 교만은 자신의 허물을 만들 뿐이다. 전분도 두영도 외척으로 세상의 온갖 부귀를 누렸지만 결국 남은 것은 교만함으로 빚어진 허물뿐이였다. 이 상황이 노자의 “부귀이교, 자유기구”이라는 것이다.   

어린 황제와 태후를 보필할 수 있었던 자신의 소임에만 최선을 다했다면 이들도 오랫동안 최고의 복을 누리며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사마천이 “재앙에는 그 원인과 결과가 있다”는 말을 되짚어 보면,  두영과 전분이 맞은 비참한 죽음이라는 재앙은 그 원인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갖고 있는 ‘복’에 있었고, 그 복이 결국 ‘교만함’이라는 결과를 낳아 재앙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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