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식사고 (상편)

악몽의 시작

by 사선에서

유난히 추웠던 12월, 대대장 시절의 일이다. 부대는 연말을 정리하며 새해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여단장이 교체되었고, 새로 부임한 여단장으로부터 전차 사격훈련을 준비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12월에 전차 사격이라니, 혹한기 전술훈련도 아닌데…


훈련장은 부대 강원도 북쪽에 위치해 있었고, 당시 기온은 주간 -3~-5도, 체감온도는 -8도, 야간에는 -15도 내외였다. 장비를 보유한 부대는 특히 겨울철에 주의해야 한다. 부대 이동과 훈련 중에는 드라이아이스만큼 차가운 쇠떵이를 조심해야 했고, 마지막으로 잠자리 안전도 중요했다.


나는 이런 기상 제한사항을 들어 일정 조정을 건의했지만, 새로 부임한 여단장은 “무엇이 문제인가? 문제가 있으면 대비하면 되는 것 아닌가?”라며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는 부대원들과 회의를 했다. 주임원사와 다수의 경험 많은 부사관, 참모들 모두 훈련 일정을 조정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이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다시 여단장에게 건의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훈련 출동을 결정해야 했다.


훈련 계획을 논의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것은 추운 날씨 속 숙영 문제였다. 전차 사격을 위해 출동하면, 소대별로 24인용 천막을 설치해 숙영을 했다. 난방은 비닐 후라이와 실내 난로뿐이었다. 하지만 동계 사고 사례 중 대표적인 것이 등유난로로 인해 침낭에 불이 붙어 화재·인명사고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 점을 주임원사와 다시 논의하던 중, 정비반장이 ‘튜브 히터(휴게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설치를 제안했다. 안전망이 설치되어 있고 직접적인 불꽃이 없어 화재사고를 줄일 수 있어 좋은 생각이라 판단했다. 현장에서 최종적으로 가동 상태를 확인하니, 충분히 안전했다. 부대에 보유 중인 수량이 부족해 인접 부대의 협조를 받아 총 12대를 준비했다.


출동 준비를 마친 뒤, 12월 셋째 주에 50여 대의 전차와 장갑차를 이끌고 전차포 사격장으로 향했다. 65km의 거리를 전차의 굉음으로 무력화하며 무사히 도착했다. 곧바로 숙영지를 편성했다. 12동의 텐트에 각각 튜브 히터를 설치했고, 비닐 후라이와 환기구를 마련했다. 소화기를 두 개씩 비치하고, 히터 주변에는 야전침대를 활용해 안전거리를 확보했다. 주임원사는 난로 사용 수칙과 불침번 운용 등 안전지침을 행정보급관들에게 하달했고, 이를 수시로 점검했다. 이제, 남은 것은 사격뿐이었다.




전차포 사격훈련을 시작한 지 3일째였다. 그날따라 훈련장의 기온은 영하 13도, 체감온도는 영하 20도를 넘어섰다. 너무 추워 부대원들의 잠자리가 걱정돼 숙영지를 순찰하며 튜브 히터의 작동 상태를 점검했다. 다행히 텐트 안은 예상외로 훈훈했다. 텐트마다 실내온도는 영상 7~12도를 유지했고, 침낭 안은 핫팩 덕분에 따뜻했다. 안심할 수 있는 상태였다. 중대장과 행정보급관에게도 계속 확인하라고 지시했다.


대대는 비사격 기동훈련과 영점사격까지, 차가운 먼지를 마셔가며 열심히 훈련에 임했다. 추위 속에서도 전차장들의 솔선수범으로 각 단차별 사격 성과를 달성하기 시작했다. 대대원들이 정말 고마웠고, 자랑스러웠다.


3일차 훈련이 끝나고, 부대원들은 인접 부대의 목욕탕에서 따뜻한 온수로 샤워를 한 후 중대 행정보급관들의 정성이 담긴 훈훈한 텐트로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 주임원사, 참모들, 중대장들과 함께 일일 성과를 분석하고, 내일 훈련 일정을 논의한 뒤 결산을 마쳤다. 시간은 밤 9시 무렵이었다. 나 역시 간단히 씻고 차가운 기운이 감도는 텐트에서 잠을 청했고, 곧 깊은 잠에 빠졌다.


“대대장님! 긴급사항입니다!”


작전과장의 다급한 외침에 깜짝 놀라 일어났다.


“무슨 일이야?”


“지휘통제실로 빨리 오셔야겠습니다. 중대에 질식사고가 발생한 것 같습니다.”


“질식사고?”


손목시계를 보니 0시 30분쯤이었다. 지휘통제실 텐트까지 뛰어 가는 20초가 너무 길게 느껴졌다. 도착해 보니 참모들이 급하게 전화를 돌리고 있었다.


“1중대 텐트에서 질식 환자가 발생한 것 같습니다.”


“무슨 질식 환자?”


“세부 상황은 아직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1중대장과 연락해봐.”


작전과장이 전화를 걸어 1중대장을 바꿔줬다.


“대대장님, 2소대 텐트에서 인원들이 질식한 것 같습니다. 다들 의식을 잃었고, 입에 거품을 물고 있는 인원도 있습니다. 일부는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적는 지금도 소름이 돋는다.)


“몇 명이냐?”


“18명입니다.”


“군의관은?”


“바로 옆에서 사고자 확인 중입니다.”


“군의관과 통화하자.”


군의관이 전화를 받았다.


“군의관, 현재 상태는?”


“제 소견으로는 일산화탄소 질식으로 보입니다.”


“환자 상태는?”


“의식이 전혀 없는 환자가 3명, 나머지는 의식이 혼미하게 왔다 갔다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긴급 헬기를 불러야 하나?”


“그렇게 하기에는 시간이 모자랍니다. 당장 인근 00 민간병원으로 이송시켜야 합니다.”


“좋다. 의식 없는 3명은 군의관이 직접 인솔해서 앰뷸런스로 00병원으로 보내라. 나머지는 다른 차량으로 내가 후송시키겠다.”


“알겠습니다. 참고로 00병원에 고용량 산소호흡기가 11대 있는 걸 확인했습니다.”


“알았다.”


전화를 끊자, 마음이 차가워졌다. ‘이제 모든 것을 걸고 부하들을 살려야 한다’고 다짐했다.


“사단에 최초 상황을 보고해라. 지휘통제실은 작전과장이 통제한다. 여단장께는 내가 보고하겠다. 정보과장은 나와 함께 이동하고, 작전과장은 현지 상황을 상급부대에 보고하라. 나는 1중대로 가겠다.”


“알겠습니다.”




나는 지휘용 차량을 타고 피해 현장으로 달려갔다. 눈앞에 펼쳐진 처참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캄캄하고 추운 훈련장에서 하늘을 보고 눈이 뒤집어 진 상태로 누운 인원, 구토하는 인원, 심폐소생술을 받는 인원.... 그때 군의관이 탄 앰뷸런스는 사이렌을 울리며 출동하고 있었다.


“나머지 병력 상태는?”


“의식은 있지만 상태는 안좋습니다.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다고 호소합니다. 군의관은 전형적인 일산화탄소 질식 증상이라고 했습니다. ”


“일단 빨리 후송시키자.”


미니버스로 15명을 00병원으로 긴급히 후송시켰다. 여단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발생했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응급치료가 급선무입니다.”


“군 병원으로 가는 게 낫지 않나?”


“군 병원은 여기서 2시간 이상 걸립니다. 새벽이라 차량사고 위험도 있습니다. 민간병원이 더 적절합니다.”


“알았다. 빨리 조치해라.”


나는 00병원으로 달려갔다. 응급실에는 병력들이 산소호흡기를 달고 누워 있었다. 다행히 1차 후송된 3명도 의식을 되찾았다. 응급실 당직의사는 산소호흡기가 11대뿐이라 나머지 7명은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고 했다.


군의관에게 가장 가까운 군 병원의 고용량 산소호흡기 현황을 확인해보라고 지시했다. 다행히 5대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나는 군병원 응급실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고, 바로 주임원사에게 나머지 7명의 이송을 지시했다.


결국 상태가 위중한 11명은 00민간병원, 비교적 호전된 7명은 00군 병원으로 분리해 응급치료를 받도록 조치했고, 이를 상급부대와 여단장에게 보고했다.


응급상황이 정리되자, 병력들을 찾아가 손을 잡고 상태를 확인했다. 그들도 눈물을 흘렸고, 나도 눈물이 났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이들은 그저 명령대로 훈련했을 뿐인데…’


나의 무능함이 한스럽게 느껴졌다.


마지막 11번째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려는 순간이었다.


귀를 찢는 듯한 간호사의 다급한 외침이 응급실을 흔들었다.








“선생님! 2번 침대 환자, 심정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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