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육감을 믿어라 상대가 뭐라하든'이란 말이 있다. 예로 남친(여친)이 변심한거 같은데 그들은 아니라고 박박 우겨댄다 . 그럴땐 무엇을 믿고 선택하는게 맞는가, 하는 말이다. 예로 든 거뿐, 이것은 모든 관계, 사건 사고,일상 모두에 적응되리라.
친구하나는 남친이 홀로 여행간다며 새 운동화를 사달라고 했다고 한다. 낚시를 가니 신발이야 필요하겠지만, 그럼 발이 편한 신던 신발을 신는게 낫지, 왜 ...하다 불쑥 '동행'이있구나 ,'그녀'와 갈 여행에 신을 신발을 내게 사달라고 하는구나,해서는 그를 추궁했더니 의부증이라고 몰아대다 결국엔 동행(여자)이 있음을 고백했다고 한다.
물론 모든 육감이 들어맞는건 아닐지 몰라도 내 경험으로는 거의 70-80%는 맞는다. 육감은 거의 본능에 가까운 직감이라고나 할까. 그 어떤 기존의 필터를 거치지 않은 날것그대로인 셈인데...
그런가하면 며칠전엔 이런 글귀도 페이스북에서 보았다. '어리석음이란 진실을 보고 알면서도 거짓말을 믿으려고 하는것이다'라는 것이다. 이말에 나는 1000% 공감한다. 쉽게 말하면 우리는 우리가 믿고싶으면 그게 설령 거짓인걸 알아도 믿으려 들지 않는가. 진정 우매한 일이지만 나역시 매일 경험하고 잘못되었다는걸 알면서도 고치기가 쉽지 않다. 흔히 그것들은 '관계'와 연관돼 있으므로.
내 안의 무엇인가가 '안돼'라고 소리칠땐 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오랜 세월 가스라이팅 당해온 삶의 메커니즘을 전복시키고 올바른 길을 제시하는 새로운 시작 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나역시 이 육감을 무시하고 사랑에 빠지고 돈을 주고 정성을 다해 우정을 키우려 하고 그런 일이 다반사다. 돌아온건 역시 내 육감이 맞았다는 것. 그들은 내게서 잠깐씩 기생하면서 물질적 심적 위안과 도움을 받은뒤 뒤도 안돌아보고 다 떠나간다.
난 제법 스스로를 영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무엇, 누구 하나에 빠지면, 아니 홀리면, 앞뒤를 가리지 않고 올인하는 우스꽝스런 습성이 있어 이런것들이 내 삶을 갉아먹고 물질적 피해를 보게 하고 회한에 젖게 만든다.
그리고 이런 배반이나 가스라이팅은 늘 가까이서 일어난다. 먼 타인이야 내게 말을 걸리도 뭘 부탁할리도 없지 않은가. 절친, 연인, 가까운 친지 이런 사이에서 일어난다.
우리들의 육감은 조련되지 않은 야생동물같은 것이어서 조악하고 거칠고 그렇다. 하지만 그래서 탈 사회적, 탈 관습적이다. 누가 뭐라든, 내가 거짓이라고 생각되면 , 아니라고 생각되면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갖고 결정은 유보하기로 하자. 상대가 그 어떤 달콤하고 화려한 수식으로 나를 유혹해도 내 본능이 아니라 한다면 그건 아닌것이다.
세상은 온통 '기생'하는 인간들로 넘쳐난다. 난 그 사실을 최근에야 내 어떤 개인사를 통해 알게 됐다. 절친에게 이야기했더니 회사 생활을 하는 자기는 외부인을 많이 상대하다보니 그런 케이스를 너무나 많이 봐왔다면서 그렇지 않은 사람이 오히려 적을 지경이라고...즉, 많은 이가 사기를 치고 거짓으로 남의것을 탐하고 갈취하고 산다는것이다. 그러다 '단물'을 다 빼먹었다 생각되면 다른 대상을 '물색'해 똑같은 짓을 되풀이한다는것이다.
세상은 ,우리들의 삶은 너무나 잔인한 유기체다. 이 안에서 내것을 온전히 지킨다는건 거의 불가하지만 조금이라도 내 안의 소리, 내 직감, 내 육감이 말하는것에 기울인다면 빼앗기고 탈취당하는걸 조금은 줄일수 있으리라는게 내 생각이다. 물론 그런 결단은 모진 마음을 요한다.
언젠가 지식인과 지성인의 차이를 들은적이 있는데, 전자는 말 그대로 지식이나 배움이 많은자를 말하고 후자는 그 지식과 배움을 행동으로 옮기는 자,라고 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내 안의 소리, 내 살아온 경험에 의해 'no'라고 판단되면 거절하고 그 관계를 정리하는 ,즉 행동으로 옮기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설령 그런 다음 참혹한 외로움이 밀려온다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