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가을이 천천히 깊어간다.
한때 뜨겁던 햇살은 부드러워지고, 바람은 살짝 서늘하다.
이 계절이 오면 늘 마음이 조금 흔들린다.
사랑의 설렘과 오래된 기억들이 조용히 문을 두드린다.
나는 운명적인 사랑을 믿지 않는다.
‘운명’이라는 말은, 어쩐지 자신의 선택을 그럴듯하게 포장하기 위한
조심스러운 변명처럼 들렸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이야기도 그랬다.
이졸데가 이름을 숨기지 않았다면,
트리스탄이 전리품을 왕에게 바치지 않았다면,
그들의 사랑은 비극이 아닌 단순한 ‘선택의 결과’였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사랑을 감정보다 ‘책임’으로 여겨왔다.
사랑은 결국 서로를 향한 약속이고, 감정의 불꽃이 아니라 신뢰의 불씨로 이어지는 일이라 믿었다.
하지만, 내 첫사랑은 그 믿음과는 조금 달랐다.
그때 나는 스물여섯 살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뜨겁고, 조금은 서툰 나이였다.
친구가 들려준 첫 키스의 이야기에 웃으며 넘겼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 한쪽이 허물어졌다.
“어느 집 강아지가 오줌을 싸고 간 담벼락에서 술김에 했다.”
그 한마디에, 내가 품고 있던 첫 키스의 낭만이 조용히 무너졌다.
그래도 내 마음속 첫 키스의 장면만큼은 아직도 또렷하다.
9월의 바닷가, 저녁 햇살이 물결에 부서지던 날.
흰 와이셔츠를 입은 그의 단정한 모습, 바람에 살짝 흩날리던 머리카락,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다가와 입을 맞추던 순간.
천사의 나팔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때 세상의 모든 소리가 멈춘 것 같았다.
그 한순간이 사랑의 완성이라고 믿었다.
그 떨림이 영원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 믿음의 책임감으로 나는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했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사랑의 본질은 감정도, 운명도 아닌 ‘지속’이라는 것을.
매일의 피로와 오해, 다툼과 화해 속에서도 다시 손을 잡아주는 용기, 그게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첫사랑은 내게 ‘설렘’을 가르쳐주었고, 결혼은 ‘믿음’을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안다.
사랑은 완벽함이 아니라, 서로의 불완전함을 견디며 함께 자라나는 마음이라는 걸.
이제는 가을이 올 때마다 그날의 바닷바람 대신 남편의 숨결이 떠오른다.
그때의 설렘과 지금의 믿음이 결국 같은 마음이었다는 걸, 이제야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