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쏜애플, 청춘 -
우리는 끝이 없는 기나긴 하나의 계절. 지글지글 끓는 땅 위에 이름도 모를 꽃들이 피어나네.
쏜애플 - 시퍼런 봄 가사 中
'이쯤이면 청춘이지. 우린 오늘이 가장 젊다.'
상황 맥락 없이 뱉어낼 수 있는 자기애가 넘쳐흐르는 충동적인 말이다. 성인이 갓 된 내게 선배들이 술만 마셨다 하면 입버릇처럼 내뱉는 소리라고만 생각하며 살았다. 하지만 시간은 멈추지 않고 계속 흐르는 것. 이 나이 먹고 보니 20살의 열정에 지지 않기 위해 발악하는 입버릇처럼 얘기하는 내 모습이 보인다. 현실이라는 총성 없는 전장에서 자기 회피만을 일삼으며 '그래도 과거의 내가 오늘날의 나보다는 낫다.'라는 똑같은 형식의 자기 위로에 늘 빠진다. 이내 변기를 부여잡고 과거의 부스러기들을 토해내는 추하고 안쓰러운 관을 쓰고도 이리저리 흔들거리는 유약한 26살의 내가 있다.
허허벌판에 불어닥쳐오는 철원의 한기와 태양을 등지고 2020년 6월에 그토록 바라왔던 위병소를 나왔다. 생각해 보면 그해의 나는 정말 멋진 거 같다. 몸 다쳐서 나온다는 남들 말과는 다르게 오히려 남부럽지 않은 몸을 만들고 나오기도 했고, 가벼운 바람에도 휘날리는 비닐봉지와 같던 과거는 그래도 깊은 바닷속 뿌리를 깊게 내린 해초와 같이 자리를 지키며 나풀거리는 정도가 됐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해발 700m 언저리에서 부는 고향 바람은 이제 본격적인 사회인으로서의 시작임을 알리듯 속삭인다. 그러면서 어떤 한 친구가 내게 연락을 했다.
그녀는 나와 썩 연이 깊지 않았다. 끽해봐야 같은 면접장에 있다가 아버지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봤던 게 처음이었고 같은 대학교에 합격한 그녀를 마주하고 내심 반가웠다는 정도가 다였다. 이후 17년도 4월에는 만우절이랍시고 교복을 입고 학교를 돌아다니면서 같이 사진을 찍은 정도뿐. 자퇴를 하고 재수를 한다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그건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18년 5월에는 갑자기 연락이 와서 자기를 기억하냐는 연락을 받아준 걸 시작으로 친해졌고 입대했을 때는 인터넷 편지로 '일주일 동안 훈련소 아침밥이 뭐가 나온대.'라든가 '나는 요즘 재수 준비하는데 너무 슬퍼.'같은 그녀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알려주는 등 썩 심심치 않은 얘기를 들으며 살았다. 잠깐 연락의 공백이 생겼다가 전역을 하고 산들바람과 함께 그녀의 연락이 찾아왔다. 전역 축하한다는 그녀의 연락에 나를 한 순간도 외로이 두지 않게 했던 그녀의 사려 깊음에 괜스레 고마움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연락에 순간적으로 뇌정지가 왔다.
"나 7월쯤에 태백 갈듯? 아빠가 태백 시원하다면서 한번 놀러 다녀오래."
얘가 원래 이렇게 밖을 잘 돌아다니는 성격이었던가 싶었다. 누구랑 오냐는 질문에 '혼자'라고 답하는 그녀의 카톡을 한동안 멍하니 바라본다. 이 시기의 그녀는 재수를 끝내고 모 대학 사범대에 합격하고 난 이후 휴학을 했다. 끊임없이 열심히 달려온 그녀가 그녀 스스로에게 주는 어떤 작은 선물이 홀로 여행 다니기였고 그 행선지가 많고 많은 지역 중 하필 강원도에 있는 어떤 산골짜기 마을이었다. 이 시기에 나는 복학까지 돈을 벌기 위해 막노동을 하고 있었다. 반장에게는 이틀 동안 작업에 참여를 못할 것 같다고 얘기를 했고 그렇게 2020년 7월 14일 화요일 비 온 뒤 물안개가 산허리를 뒤틀던 날. 동서울과 태백을 오가는 버스에서 그녀가 내렸다.
시골에선 볼 수 없는 힙스터 같은 패션에 이전에는 못 봤던 타투도 몇 개 있었다. 실물로 본 건 제법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먼저 살갑게 다가온 그녀의 모습에 나도 괜히 기저에 깔고 있던 어색함을 한층 내려놓을 수 있었다. 남의 집에 올 때는 빈손으로 오는 거 아니라면서 아기자기한 가방에 쌀 한 포대를 넣고 왔다. 하루종일 그녀를 데리고 내 고향 구석구석을 구경시켜 줬다.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 갈 때쯤엔 진하게 한잔 기울이며 담소를 나눠본다.
그녀는 밴드음악과 마이너 한 음악을 좋아한다고 내게 얘기했다. 신해경, 에픽하이 등 들어본 이름도 있고 처음 듣는 아티스트도 있었지만 걔들 중에는 '쏜애플'이라는 이들도 있었다. 그녀는 그해 1월에 그들의 콘서트를 다녀온 후기를 쭉 얘기해 줬다. 그들을 좋아해서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는 그녀의 모습에 디제잉을 선망해 와서 기계를 산 내가 오마주 됐었다. 그녀가 추천해 줬던 노래는 '시퍼런 봄'. 입시 준비를 하면서 앞날의 불투명함에 관한 스트레스를 받던 그녀는 이들의 노래를 듣고 위로를 받았던 얘기를 해줬다. 밤 10시가 넘어서는 우리 집에 와서 마저 더 마시다가 늦은 새벽이 되고 나서야 잠에 들었고 다음 날 오후 12시 그녀는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시간은 다시 흘러 현재. 이제는 과거의 건강한 몸과 정신은 고향과 타향의 바람과 언질을 맞으며 뭉툭해지고 나태해졌다. 그럼에도 짧았던 영광스러운 과거를 그리워해서 조금이라도 젊어 보이고 싶어 하는 퇴행적이면서도 진보하는 우리네 모습. 대다수의 20대들의 현주소일 수도 있다. 모습은 둘째 치더라도 고민은 우리가 태어난 순간부터 줄곧 함께하고 있다. 과거에는 문과와 이과를 고민하기도 했고, 어떤 대학을 갈지, 미래엔 음악을 할지 안정적인 직장을 잡을지와 같은 고민은 계속 우리 마음속에 이름 없는 크고 작은 형형색색의 꽃들을 피워내고 있다.
그런 꽃들을 무작위로 곧잘 피우는 우리 가슴속의 토지는 그럼 어떠한가. 땅이 식은 툰드라와 같은 마음이라면 보는 것이 즐겁지 않은 단색의 잡초들만이 가득할 것이다. 하지만 겉으로는 아무것도 하기 싫은 냉소적인 모습일지라도 깊숙한 곳에서는 끊임없이 몸짓하고 지치면서 길을 찾아 헤매고 있다. 형제들이 세상에 나와 자신들이 원하는 답을 찾는 여정을 보이는 강철의 연금술사에서 오프닝 곡을 맡은 'Yui - Again'처럼 강렬한 소년만화의 기운을 뿜는 기타 세션과 나이를 불문하고 이리저리 뛰 다니는 우리의 모습이 곧 '시퍼런 봄'이 아닐까.
우리. 이리저리 흔들리고, 깨지고, 녹아내리고, 경험하자. 짧은 기간 무한하게 뜨겁고, 회복력이 강하며,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건 20대의 특권이니까. 매번 우리가 실패하거나 민망한 상황이 발생할 때 버릇처럼 내뱉는 말처럼 살자고. 「청춘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