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근한 내 집으로 돌려보내주오

물건의 주소 만들기

by 아이스블루



"자기야~~~"


일요일 오후에 흔히 마주하게 되는 풍경이 있다.

이른 저녁을 먹고 거실 한가운데 자리 잡고 앉은 남편은 가족 한 명씩

자기 무릎아래로 불러들인다.

인생의 즐거움 중에 하나라는 일을 지금 하려나보다.


그런데 또다시 다급하게 나를 부르고 다음은 애들을 향한 취조가 시작된다.

“지난번에 제일 마지막으로 쓴 사람 누구야?”

집안에 있는 서랍들을 모두 뒤적거린다.

소파와 의자가 들썩인다.

온 집안을 다 뒤지고 나서야 거실선반 구석에서 아주 잘 끼워둔

그것을 발견한다.

“엄마~~ 귀이개 찾았어!! “

딸아이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리고 드디어 요란했던 상황이 종료되었다.

여기는 빔프로젝트와 TV 리모컨이 있는 곳,

귀이개가 있어야 할 곳은 아닌 것 같은데 왜 여기에 있는 건지 알 수 없다.


물건을 쓰고 제자리에 놓는다는 것은 다음번에 꼭 같은 상황에서의 편리함을

보장해 주는 준비이다.

특정물건이 주로 사용되는 곳에 주소를 만들고 수납하면

동선이 짧아지고 물건 찾기도 쉽다.




출처- unsplash





남편은 귀이개를 쓴 후 제자리에 갖다 놓지 않고 거실에 리모컨과

나란히 놓아두는 행동을 하곤 한다. 매우 자주 한다.

내 정리방식만을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불편하지 않을까?

귀를 소제하는 일은 어쩌다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수시로 찾게 되는 물건인데 그때마다 당장 귀찮다는 이유로

제자리에 되돌려 놓기를 꺼려한다면 다음에 그 물건이 필요할 때 바로 사용할 수 없다.

어디에 있을지 추리를 해내야 한다.

운 좋게 소파틈에서 찾게 된다면 다행이지만

어차피 잃어버린 거라 생각하고 별 망설임 없이 또 사게 되는 것이다.

겨우 손가락만한 귀이개 하나 찾으려고 온 집안 물건을

몽땅 뒤집어보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물건은 그렇게 천천히 늘어난다.

지금은 아주 작고 값싼 물건의 경우를 얘기했을 뿐이지만

물건이 불어나는 과정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부피가 큰 물건은 잃어버려서 다시 살 일이 드물겠지만 조금만 방심하면

이것 또한 순식간에 우리의 여유공간을 꿰찬다.

그런데 이렇게 물건이 내 공간을 조금씩 빼앗아 가고 있다 해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별로 없어보인다.

다이* 에 가면 단돈 1000원으로 손쉽게 해결될 일이라서 그런 걸까?




그깟 1000원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





더 중요한 것을 위해 우리 앞에 놓인 미션 하나.

물건을 찾아서- 쓰고- 갖다 놓는다 까지 한 세트가 되는 행동을 하기로 한다.

쓰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쓰고-갖다 놓기까지..

이런 일이 익숙하지 않던 남편이기에 처음에는 귀찮을 것이다.

쓰고 아무 데나 놔두더라도 원위치시켜주는 나 같은 안달쟁이가

항상 옆에 있어서 그렇다.

몇 번 대신해 주는 게 큰일은 아니지만 가족 모두를 위해서 자동반사로 나오는

정리벽 행동을 앞으로는 꾹~ 참기로 했다.

내가 쓴 물건을 다시 제자리에 갖다 놓는 사소해 보이는 일이

정리정돈의 기본이자 어떤 일을 마무리지을 줄 아는 생활습관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꺼냈으니 내가 갖다 놓는다.

이렇게 내 일은 내가 책임진다.


집안 여기저기를 떠돌던 작은 물건이라도 주소가 생기고 갈 자리가 정해지면

더 이상 하찮은 물건이 아닌 것이 된다.

서랍 한쪽, 선반 한 귀퉁이라도 지정석이 있고 관리받는 중요한 물건이 되는 것이다.

쓰임이 있을 때마다 떠올리고 잘 쓰면서 나와 함께 세월을 입게 되는 물건은

사소한 것이라도 소중하게 여겨진다.

이렇게 언제든 익숙하게 꺼내 쓰던 물건이 어느 날 안 보인다면?

더 좋은 새것으로 들인다고 해도 좀 서운할 것 같다.

오래 써서 무뎌지고 빛이 바랬어도 손에 익어 편했던 물건인데

새것으로 사면 또다시 그만큼의 세월이 필요하니까.

이제 나도 나이가 들어서인지 새것에 익숙해지는 시간이 더디게 느껴지고

말 안 해도 알아주는 오랜 친구 같은 물건들이 편해진다.


유일한 인생의 즐거움이라는 일을 하며 써야 하는 그 물건을

앞으로는 잃어버리지 않길 바라며 주소에 맞는 자리로 잘 돌려보내줘요.

다시 꺼낼 때 그대가 당황하지 않도록...


이번에 남편에게 기쁨을 줄 차례는 딸인가 보다.

“이야~~ 시리얼만 한 게 있네!! 아빠 목소리는 들리니?”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