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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쉐리 Sep 25. 2022

우울증 집사와 강아지의 엉망진창 동거

철없는 첫 만남

널 만나게 된 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다.

너는 외로움이 많고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아이였다. 나와 퍽 닮았기에 나는 너일 수밖에 없었다.


그날은 2019년 1월 5일이었다.

널 만나기로 결정한 건 고작 이틀 전.

추웠지만 하늘은 맑았고 눈이 내리지 않은 겨울이었다.

나는 부푼 마음을 가득 안고 미리 몇 가지의 네 물건들을 준비해놓은 채 널 만나러 갔다.

널 만나기로 한 곳에서 단번에 널 알아봤다.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로 강아지는 오직 너 하나밖에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너와의 눈 맞춤에 극적으로 시간이 멈췄다거나 슬로모션으로 지나가진 않았다.

지금과는 굉장히 다르게 하네스도 없이 얌전히 앉아있었다.


겨울과 잘 어울리는 흰색 털이었지만, 그 털이 겨울을 나기엔 좀 짧은 듯했다.


너는 나를 기다렸다는 듯, 나에게 단번에 안겼다.

네가 살아온 세상과 작별하는 날이었지만, 넌 그 사실을 예감한 듯 애써 꼬리를 흔들었다.

혹여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네가 긴장하고 무서워서 실수를 할까 챙겨간 배변패드와 휴지를 쓰는 일도 없이, 내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넌 새로운 세상으로 당차게 뛰어들었다.


네가 우리 집으로 온 날을 잊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너의 당찬 발걸음 때문이다.


집에서 기다리던 엄마를 보자마자 힘껏 꼬리를 치며 얼굴을 잔뜩 핥아주었다.

집안 곳곳을 누비며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고 냄새를 맡기에 바빴다.

그러면서 행복하다는 듯 가족을 향해 혀를 내밀고 웃어주었다.


그렇게 낮잠도 자고 밥과 간식도 잘 먹은 네가 밤이 되자 그 누구의 침실에도 찾아오지 않았다.

거실 소파가 네 자리인 것처럼 자리를 잡고 몸을 웅크렸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몇 번이고 방으로 데려와 쓰다듬어주었지만, 절대 같이 자려고 하지 않았다.

지지 않을 태양인 줄 알았건만, 한겨울의 태양은 그 열기가 너무 약하다 못해 추웠다.

딱 네 모습이 그랬다.

결국 나는 이불과 베개를 들고 네가 있는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다음 날 밤에는 무조건 네가 날 찾아왔다.

꼭 나의 다리 사이에서, 이불속에서 자다가 내가 잠에 못 들고 화장실이라도 다녀오면, 넌 내 베개를 베고 잠들어 있었다.

어린 시절 내가 엄마의 베개에서 엄마의 체취를 느꼈을 때처럼 말이다.


이 패기 넘치는 강아지의 이름은 ‘백설’이다.

언제 한 번, 남편(당시 남자 친구)은 백설이란 이름이 백설공주에서 따와서 자신이 지은 이름이라고 터무니없는 주장을 했다.


그러나 백설이한테는 미안하게도 얘의 이름은 White Snow Princess가 아니다.

오늘 백설탕을 사러 마트에 갔지만, White Sugar 아니고 식품 브랜드 이름도 아니다.

음식 이름으로 지으면 오래 산다길래 백설기(Rice Cake)에서 따와 ‘백설’이 됐다.


아빠의 성 씨를 자연스레 받은 자식이 둘이나 있기에 백설이는 박 씨다, 박백설.

엄마는 고작 내 성을 개한테 주냐고 성을 냈지만, 언젠가부터 내심 마음에 들어 한다.


너는 우리 집에서 가장 많은 것들을 바꿔놓았다.

(박살 낸 것도 많긴 하지만.)

서열론으로 강아지가 아닌 개를 대하던 아빠의 퇴근을 제일 반기는 건 네가 되었고 아빠는 누구보다 격한 환대받는다.

엄마가 강아지를 좋아하긴 하지만 사랑할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이미 너는 늦둥이 아기가 되었다.

형제는 나에게 함부로 말을 걸 수도, 행동을 할 수도 없는 죄수 정도였는데, 너는 나와 나의 형제가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줬다.


그리고 나는, 너 덕분에 사랑 주고 사랑받고 너 때문에 상처 주고 상처받기를 계속한다.

자의로 단절시킨 사회적 관계를 너의 존재로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조금씩 만들어 가고 있다.



이름 : 박백설

견종 : 비숑 프리제

나이 : 2017년 11월 29일 생

성별 : 중성화한 여아

특이사항 : 아직도 옅은 갈색빛이 덜 빠진 뒷등 털, 혀 아래에 H 모양의 검은색 잇몸


여담으로 성견을 데리고 왔다 하면, 구조견이나 유기견을 생각하는 분들이 많지만, 백설이의 이전 보호자는 ‘사’ 자 직업으로 우리 집보다 더 좋은 동네에 살았다.


이전 보호자는 브리더를 통해 족보 있는 비숑 2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모견이 새끼를 낳고 새끼들 중 가장 예뻐서 입양을 못 보낸 유일한 새끼 강아지가 백설이다.


백설이가 성견이 되면서 부모견이 예쁨 받는 모습에도 계속 질투를 하자 우연찮게 우리 집으로 오게 되었다. 물론 산책 교육은 엉망이었지만, 사회화가 잘 되어있었고 꾸준히 예방접종도 맞았었고 영양과 관리 상태도 굉장히 좋았다.


유기견 데려와서 키우는 대단한 일을 하는 중이 절대 아니라 오로지 나의 욕심으로 데려온 아이다.


네가 갖지 못한 것들을 누리게 해 주려 데려왔는데, 네 존재로 인해 내가 너에게 맹목적인 사랑을 받는다.

너의 우주가 나여야 하는데, 나의 우주가 네가 되었다.


나의 우울증 정도가 심해지는 과정의 시작과 끝에 네가 차지하는 부분이 늘었다. 너의 우주가 이리도 미약하고 초라해 미안할 뿐이지만, 넌 이미 나와 사람 나이로 60살까지 살기로 했으니 되돌릴 수는 없다.


우울한 개집사와 주인 강아지의 우당탕탕 동거 일기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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