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헤스, 하이젠베르크, 칸트 그리고 실재의 궁극적 본질
윌리엄 에긴턴은 철학자 칸트,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 작가인 보르헤스의 지성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실재를 탐구했다. 이 책은 인간은 완벽하게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어떻게 책임 있게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가? 질문한다.
이에 대해 그는 우리가 아는 세계는 사물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인식을 통과한 세계임을 설명한다. 우리는 시간, 공간, 원인. 결과 같은 개념의 틀 없이 세상을 볼 수 없는데, 이 틀들은 경험에서 나온 게 아니라 경험 이전에 이미 작동한다.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구성한 틀이며, 때문에 지금은 순수하게 주어지지 않으며, 기억(과거)과 기대(미래)와 감각이 섞여 만들어진다고 한다. 공간 역시 독립된 무대가 아니라, 관계의 결과로 본다. 때문에 인식은 구조에 의해 제한됨을 설명한다. 우리는 구조안에서만 안다. 때문에 완벽한 객관성은 인간에게 불가능하다. 때문에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자연자체가 불확정적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불확정성은 양자역학의 가장 중요한 개념인데 위치를 정확하게 알면 운동량을 모르고, 운동량을 정확히 알면 위치를 알 수 없다. 또한 관찰자와 대상은 분리될 수 없으며, 관찰은 대상에 영향을 준다. 양자 세계에서 사물들은 독립적으로 자리 잡고 있지 않으며, 관찰. 관계 속에서만 위치가 의미를 갖는다고 보았다. 결국 어디에 있다는 말은 누가, 어떻게, 무엇과 관계를 맺는가에 포함된다.
이것은 세계의 자연스러운 구조이다..
그래도 혹시 전부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우리의 기대를 무너뜨린다. 모든 걸 기억하는 인간(푸네스), 모든 책이 있는 도서관, 모든 장면을 한 점에서 보는 시선의 공통점은 전부 보게 되면 오히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에긴턴은 우리가 전부 알겠다는 오만이나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체념 사이에서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생각을 멈추지 않는 태도, 조심스럽고 검증가능한 방식으로 판단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설명한다. 즉 인간은 천사처럼 다 알 수 없으나 이런 자세 즉 엄격한 태도를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이 부분임을 항상 의식하고, 내가 쓰는 개념. 모형. 자료가 불완전함을 인정하면서도 최대한 정확하고 책임 있게 판단하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틀릴 수 있고, 항상 일부만 보며, 그럼에도 그 판단의 결과를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칸트가 지도에는 한계선이 있다고 말하고,
하이젠베르크가 땅 자체가 흔들리고 있음을 설명하며,
보르헤스는 지도 전부를 펼치면 아무것도 못 읽는다고 주장한다면
에긴턴은 그래도 지금 손에 든 지도는 정성껏 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과학은 계속 정밀해지려고 하고,
철학은 기준을 세우려고 하며,
문학은 끝까지 사유를 밀어붙인다.
어렵다
진짜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