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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 아내덕에 애니메이션 보면서도 성장합니다.

-아내만의 성우 되기-

by 용기

얼마 전, 아내처럼 시각장애를 가진 아내의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다 같이 즐겁게 이야기하던 중, 한 친구가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을 봤다고 말했다.

사실 예전에 아내도 진격의 거인을 보고 싶다고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더빙이 없는 걸 확인하고 "더빙이 없네. 자막을 다 읽기도 어렵고… 나중에 더빙판 나오면 보자"라고 말하며 넘겼던 기억이 있다. 당시엔 그게 우리에겐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친구는 그 애니메이션을 어떻게 본 걸까? 궁금해서 물었더니, 남자친구와 동생이 자막을 전부 읽어줬다고 했다. 처음엔 "그게 가능해?" 싶었지만, 동시에 ‘우리도 한번 해보자!’고 아내에게 말했다.

그날부터 우리는 진격의 거인을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의외였다. 일본어는 같은 의미라도 한국어보다 말이 길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자막을 따라 소리 내어 읽어도 충분히 따라갈 수 있었다. 전혀 무리가 아니었다.

“뭐야, 이거 되잖아? 진작 볼걸!” 하고 후회가 될 정도였다.

누군가는 "자막을 다 읽어주려면 힘들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이 방식은 나에게 두 가지 장점이 있었다.


첫째, 평소 집중력이 약한 나는 드라마나 시리즈물을 볼 때 스토리를 따라가지 못해 이해가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자막을 소리 내어 읽다 보니 집중도 잘 되고, 복잡한 이야기 흐름도 잘 이해하며 훨씬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둘째, MC라는 직업을 가진 나에게는 발음, 스피치, 연기 연습에 더없이 좋은 트레이닝이 되었다.


아내와 함께하기엔 무리라고 생각했던 일이, 막상 해보니 전혀 어렵지 않았고, 오히려 나를 더 성장시키는 기회가 되었다.

조금은 웃기지만, 애니메이션을 아내와 함께 본 이 경험 덕분에 앞으로도 '아내와 함께하긴 어렵겠다'라고 미리 포기했던 일들에 다시 도전해보고 싶다는 교훈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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