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배려하는 순서
할아버지는 엄마에게 밥을 푸는 순서에 대해 어느 날 말씀하시며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순서에 대해 가르쳐 주셨다.
할아버지는 항상 내 밥을 제일 먼저 푸게 하셨다. 엄마는 할아버지 밥부터 퍼야 하지 않느냐고 되물으셨고, 할아버지는 웃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밥을 푸는 순서는 우리 집에서는 이렇게 하려므나. 여느 집은 보통 집안의 제일 어른 밥부터 푸지만, 우리 집은 그렇게 하지 마. 그 상에 앉을 가장 약한 사람 밥부터 푸거라. 우리 집에서 가장 약한 사람은 우리 경화이니, 경화 밥부터 푸도록 해. 그리고 손님이 오시거든 손님 밥부터 푸도록 하고. 에미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겠지?”
할아버지는 그러시면서 내 밥을 놓아 주셨다. 가장 먼저 나를 살피고, 가장 따뜻한 밥을 건네주시던 그 손길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 말씀엔 단순한 식사 순서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가장 약한 사람을 돌보고, 우리 집에 찾아와 주시는 손님부터 높여야 한다고 할아버지는 늘 강조하셨다.
밥상 위의 질서는 곧 삶의 질서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중과 배려의 언어들이 밥을 푸는 순서, 숟가락을 얹는 타이밍, 먼저 말을 건네는 순서 속에 담겨 있었다.
할아버지는 밥상에서부터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분명한 철학이 있으신 분이었다. 어른이 되니 할아버지 말씀이 단순한 가르침이 아니라 너무나도 소중한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지금도 밥을 푸면서 항상 할아버지를 추억한다. 밥솥 뚜껑을 여는 순간마다, 어릴 적의 그 따뜻한 목소리가 마음속에서 되살아난다.
“가장 약한 사람 밥부터 퍼야지.”
그 말씀을 따라 오늘도 누군가의 밥을 먼저 뜨는 내 마음 한구석이, 은은하게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