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이의 인연에는 여러 겹이 있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모르는 채 스쳐지나가는 인연이 있고, 말을 섞는 인연도 있고, 차 한잔을 나누는 인연도 있다. 그러나 밥을 먹는 인연은 그 모든 것을 지나 더 가까운 곳으로 다가온다.
밥은 허기를 채우는 일이기도 하지만, 어떤 날엔 허기보다 고독을 먼저 달래는 일이 된다. 나는 그걸 아주 오래전, 할아버지와 겸상을 하던 밥상머리에서 알게 되었다. 그때 나는 다섯 살 꼬마였고, 숟가락을 들기도 전에 할아버지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며 먼저 밥을 뜨셨다. 밥알 사이사이 박혀 있는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어,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방식으로 나누어주셨다.
“경화야, 밥은 말이지, 같이 먹는 거다.”
그 말엔 많은 의미가 숨어 있었는데, 나는 그걸 한참 뒤에야 알게 되었다. 같이 먹는다는 건 단순히 식탁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마음을 나누는 일이라는 걸.
어른이 되어 수많은 식탁을 지나왔다. 형식적인 회식의 자리도 있었고, 조금 더 가까운 친구들과의 식사도 있었지만, 진짜 밥을 함께 먹는 인연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밥을 먹는다는 건, 내가 너를 받아들였다는 뜻이고, 너 역시 나를 받아들였다는 암묵의 동의다. 눈빛으로, 반찬을 건네는 손길로, 밥그릇을 비워내는 속도로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읽는다.
그래서 나는 밥을 먹는 인연이 생기면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이 사람과 같은 밥을, 같은 시간에, 같은 숨결로 먹는 일이 얼마나 깊고도 놀라운 일인지.
할아버지가 그랬다. 밥상 앞에서는 누구도 높지도 낮지도 않다고. 밥상은 땅에 가깝게 놓여야 하고, 고개를 숙여야만 국그릇 안의 온기를 만날 수 있다고. 그래서 나는 오늘도 누군가와 밥을 먹을 때, 그의 마음에 온기를 건네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다. 한 그릇의 밥으로 서로의 삶을 조금 더 따뜻하게 데우고 싶다.
밥 먹는 인연, 그건 말로 시작되는 게 아니라, 뜨거운 밥알 사이로 피어오르는 침묵 속의 믿음으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