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 다녀온 세가지의 페르조나

by 마르치아


나는 세 가지의 사랑을 지나, 비로소 나 자신에게 다다랐다. 그 사랑들은 같은 이름을 하고 있었지만 나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 어떤 사랑은 나를 무너뜨렸고 어떤 사랑은 나를 길들이려 했으며 어떤 사랑은 내 영혼을 일으켜 세웠다. 사랑은 늘 뜨거웠고 때로는 잔인했지만 그 모든 시간을 지나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사랑을 말하던 내가 아니라, 사랑 앞에서 흔들리던 내가 진짜 나였다는 것을.


1. 카르믹의 나 (Karmic Connection)


카르마로 맺어진 인연이 있다. 지난 생의 카르마를 서로 청산하려고 만났는데 과거 경험에서 해결되지 않았던 문제나 감정이나 상처를 치유할 기회를 갖기 위해 맺어지는 인연이다. 처음 만났을 때는 "이거 운명 아니야, 이 사람 아니야?" 하며 미친 듯이 끌리는데 그 감정 안엔 묘하게 불안정하고 중독 같은 기운이 있다. 그래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다. 이 사람이 나에게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 끌리고 만나고 싶고 다시 돌아가고 싶은 욕구가 일어난다. 그런데 그 욕구는 나의 에고에서 온 것임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그 관계가 끝났을 때 완전히 파괴된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사실은 에고가 부서지기 시작한 것이고 그 경험을 통해 영적인 성장이 일어난다. 그 아픔을 겪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 아픔을 위해 만난 사람들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관계는 거기서 끝난다. 우리가 만난 목적을 완수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 만남이 일종의 신이 제시한 신의 수업인 셈이다. 나도 첫사랑인 줄 알고 만났지만 알고 보니 나의 카르믹 커넥션이었던 적이 있었다.


2. 상처의 나 (Trauma Bond)


이 경우는 영적이라기보다는 심리적인 관계라고 할 수 있다. 무언가 학대적이거나 건강하지 않은 관계에서 생겨나는 강한 정서적 유대감이다. 이 경우는 서로 어린 시절 이야기를 만난 초반부터 많이 한 경우였다. 트라우마 본드에서는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확 바뀐다. 엄청 달콤했다가 엄청 나빴다가 그런데 그 상처 주는 사이클이 계속 반복되고 그 달콤한 짧은 구간을 경험하는 것에 중독된다. 짧지 않게 만난 사람과 나는 트라우마 본드 관계였다. 이때 나는 그에게 상처를 주는 쪽이었다. 나는 내가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게 되면 그 사람을 밀어냈다. 그런 행동이 ‘나는 내 시간이 필요해’ 같은 입장이 아니라 그 사람이 내 그런 행위를 통해서 나를 더 당겨주길 바라는 일종의 애정 확인이었고 나는 그의 사랑을 시험하고 있었다.


그래서 상대는 사랑하는 동안 엄청 불안해 했던 것 같다. 우리는 이 사이클을 5년 넘게 반복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사람에게 미안하고 내가 이 사람에게 상처를 준 것 때문에 나중에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지 않았나 싶다. 어쩌면 내가 그 전 단계에서 카르마를 쌓았으니까. “너는 감사할 줄도 모르고, 나 오늘 기분 좋았는데 왜 내 하루를 망쳐. 너 때문에 내 하루를 네가 다 망쳤어. 네가 책임져.” 나는 항상 이해하려고 애썼다. 아, 이 사람은 어릴 적 상처 때문에 감정을 제대로 전달하는 법을 모르는구나 하고 매번 내가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나를 해치는 관계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 사람이 불쌍하다는 이유로 헤어지는 데 몇 개월이나 걸렸다. 전형적인 트라우마 본드였다. 그러나 그 사람의 비난이 내 자아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3. 영혼의 나 (Twin Flame)


이 경우는 같은 자리에서 온 쌍둥이 불꽃이라고 보는 관점이다. 똑같은 영혼에서 왔으니까 당연히 같은 영혼이라는 동질성을 가진다. 당연히 같은 영혼을 가지고 있으니까 서로의 모든 것을 다 잘 이해할 수 있다. 비슷한 경험을 많이 해온 사람 중 하나다. 겉모습만 다른 존재일 뿐 영적으로는 같은 경험을 쌓아 왔으니까 같은 삶의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결과적으로 같은 길을 가게 되는 사람이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눈빛만 바라봐도 통하는 느낌이 든다. 왜냐하면 사실 같은 사람이나 다름없으니까. 그런데 이 만남은 일종의 거울의 역할을 한다. 서로 거울처럼 모든 것을 비춰준다. 그런데 그것은 내 겉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이 아니라 내 의식부터 잠재의식, 무의식에 숨어 있던 저 구석에 내가 꽁꽁 숨겨둔 감정까지 다 비춰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나랑 너무 잘 통하고 말하지 않아도 잘 통하고 너무 너무 좋은 사람인데, 금방 확 불타올랐다가 꺼진다.


왜냐하면 내 안의 두려움을 비춰주니까 겁이 나는 것이다. 그래서 서로 그 겁남 때문에 물러난다. 우리를 트리거 하는 거울 역할을 하는 트윈 플레임을 만나면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 내가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를 깨닫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도 느끼게 한다. 그래서 카르믹 커넥션은 영적 성장의 시작을 제공한다면 트윈 플레임은 이미 영적 성장을 시작하고 난 다음에 겪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서로에게 위로가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아 나 같은 사람이 세상에 또 있구나. 나 혼자인 줄 알았는데 아니네. 더 이상 외롭지가 않아진다.’ 같이 있지 않더라도 그 감정이 너무 깊으니까, 다른 사람과는 겪어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감정이라서, 트라우마 본딩이나 카르믹 커넥션도 감정이 깊은데 그것보다 더 말할 수 없이 훨씬 깊어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깊이다.


그래서 너무 혼란스러워진다. 말로 설명할 수 없으니까 혼란은 너무 자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금방 만났다가 금방 헤어질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카르믹 커넥션이랑은 다르게 트윈 플레임은 나를 완성시키고 영혼을 통합하는 더 상위 차원의 만남이다. 그래서 만났다 헤어졌다 하는 과정이 있지만 이때는 사랑이 아직 아닌데, 두 영혼이 다 충분한 치유와 시간을 가지고 나서 다시 만나면 하나로 통합될 수 있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하는 게 진정한 사랑이다. 그리고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나는 사랑을 통해 타인을 이해하게 되었고, 사랑을 놓으면서 비로소 나를 이해하게 되었다. 이제 나는 사랑이 오든, 떠나든, 그저 나답게 머물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