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진짜 알게 되는 순간은, 그가 내 곁에 없을 때다.”
나는 관계라는 정의를 그 사람과 만날 때보다는 헤어졌을 때 정의한다. 만나서 많은 것을 공유하고 정서와 향기로운 차를 마시고 맛있는 음식을 먹었더라도, 나는 그때 관계를 정의하지 않는다. 모든 관계의 정의는 시간의 끄트머리에서 내리는 게 가장 현명하다. 만났을 때는 모두 좋은 사람들이지만, 그 사람과 헤어진 시간이 주는 내 마음 공간에 울리는 배음(餘音)을 느끼며 관계라는 이름을 새긴다. 장자는 『제물론』에서 말한다. "그것이 이렇기도 하고, 저렇기도 하며, 옳다고도 할 수 없고 그르다고도 할 수 없다." 나는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관계 역시 그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 사람을 좋다 나쁘다 판단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내가 기대하는 프레임 안에 가두게 된다. 관계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시간 속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흐름이기 때문이다. 훌륭한 연주도 그 연주가 마쳐졌을 때 공간과 관객의 마음을 울리는 배음과 그 공간을 느끼며 감동을 받는 것처럼, 사람도 마찬가지로 헤어졌을 때 그 사람과의 물리적·공간적인 일정한 거리에서 그 사람과의 관계를 그때부터 비로소 정의한다. 연주 중에는 화려한 음색에 취하지만, 연주가 끝난 뒤 고요 속에 남는 여운이야말로 진짜 음악의 얼굴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나이가 들수록 소모적인 관계는 줄어들고, 서로의 인생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관계만이 남겨진다. 무언가를 증명하거나, 과하게 나를 드러낼 필요가 없는 사람들. 장자는 그런 관계를 일컬어 ‘허(虛)한 마음이 통하는 사이’라고 말했는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은 다 좋고 친절한 사람이라는 전제로 사람을 만나지만, 나는 그 사람과 만나는 시간보다 그 만남이 종료되고 서로 각자의 삶의 자리로 돌아갔을 때, 그 사람과 나의 거리와 공간 안에서 그 사람을 떠올렸을 때 피어오르는 의미로 관계를 정의한다. 그러므로, 내 앞에 내 눈앞에 있는 상대의 모습보다는, 떠난 후에 헤어진 후에 보이는 태도에 따라 그 사람과 더 깊은 관계를 맺을지 말지를 결정하게 된다. 말보다 태도, 존재보다 여운. 관계는 언제나 떠난 후의 침묵 속에서 더 정확한 형태를 드러낸다. 내가 보고 듣고 느낀 상대의 모습보다, 그 상대가 남긴 의미에 대해 비중을 두고 관계를 정의한다. 남겨진 것이야말로 진실일 수 있다는 믿음 아래에서.
만날 때는 한없이 좋고 즐겁고 많은 공감을 나누었던 관계라도, 헤어져 있을 때 물어오는 단 한 줄의 안부와, 내가 무심코 남겼던 내가 좋아했던 아주 미미한 취향들을 기억해 주고 그것을 떠올리며 기억해 주는 사람의 잔향, 나는 그때부터 진짜 우리 관계가 어떤 관계인가를 다시 정의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얇은 종이가 점점 쌓여 나가며 계절을 지나고 시간을 향유할 때 관계는 자라난다. 하루치의 진심, 한 줄의 안부, 작은 배려들이 얇은 종이처럼 차곡차곡 쌓여 관계라는 한 권의 책이 되어간다.
그러나 우리는 관계의 시작을 사람을 만났을 때 섣부르게 정의한다. 그러나 그 정의는 허상이다. 장자는 그것을 ‘시비지심’이라 불렀다. 옳고 그름을 너무 빨리 가르려는 마음이 오히려 사물의 본모습을 가린다고 했다. 관계도 그렇다. 우리는 너무 빨리 사람을 파악하려 하고, 너무 쉽게 친밀함이라는 이름을 부여한다. 관계란 내가 상대에게 바라는 모습을 섣부르게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상호작용에 의해 상대와 쌓아가는 의미를 경험하고 내려도 전혀 늦지 않다. 오히려 상대와의 느낌이나 좋은 감정만으로 관계를 정의하면 우리는 많은 실망과 마주해야 한다. 감정은 물결 같아서 언젠가는 가라앉는다. 그러나 진심으로 맺은 관계는 깊은 강처럼 남는다. 좋다, 나쁘다라는 이원론적인 의미로 사람을 나누는 것만큼 섣부르고 어리석은 일도 없다. 사람은 늘 변화하고, 관계는 언제나 흘러간다. 장자가 말한 '물과 같은 삶'은, 아마도 이러한 관계의 유동성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일 것이다.
니체는 말했다. “인간은 해석하는 존재이며, 모든 진실은 하나의 관점이다.” 그렇다면 관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사람과의 관계는 언제나 완성된 하나의 실체가 아니라, 나의 내면이 그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매 순간 새롭게 해석되고 다시 써지는 이야기다. 그래서 진짜 관계란, 기억 속에서 수없이 재생되고 다시 구성되며, 마침내 그 사람을 나의 생 안에 하나의 문장처럼 새기는 일이다. 우리는 그 문장이 아름답기를 바라며 누군가를 사랑하고, 관계를 맺고, 때로는 떠나보낸다. 결국 관계는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느껴지는 것이다. 마치 장자의 바람이 그러하듯, 방향은 없고 움직임만 있는 것. 그것이 관계의 본질이며, 우리가 평생 배우고 또 놓치는 어떤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