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nnaregio

스튜한그릇

by 마르치아


사람이 기억하는 맛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자 한다. 내가 말하려는 맛은 평면적인 맛이 아니라, 추억과 함께 떠 오르는 그날만의 유니크한 맛이다.


그날, 나는 베니스의 카나레조(Cannaregio) 시장에 갔다. 햇살이 눈부시게 따뜻한 아침, 시장에 들어서자 빨래들이 창가에 줄지어 걸려 있었고, 제라늄 화분들이 그 아래에서 붉게 피어나 있었다. 시장 구석구석에는 사람들의 발소리와 웃음소리가 가득했고, 그 소리들 속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그 골목을 지나가고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제라늄의 빨간 꽃, 햇살을 머금고 반짝이는 벽돌길, 모든 것이 내 마음을 끌어당겼다. 그런 날이었기에, 나는 그곳에서 의도치 않게 길을 잃었다.


골목 끝에서 할머니가 나를 불렀다. 그곳에서의 만남은 어쩌면 필연적이었을지도 모른다. 할머니는 낯선 이방인인 나에게 미소를 지으며 손짓을 하셨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할머니는 내게 친근하게 말을 건네며, 마치 오래 전부터 기다린 사람처럼 나를 반겼다. 그때, 나는 비로소 이 골목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할머니는 내 손을 잡고, 그렇게 나를 집으로 데려가셨다. 내 손에 든 봉투가 흔들릴 정도로, 할머니는 자연스럽게 내게 길을 안내하며 자꾸만 내게 자신만의 따뜻한 집으로 초대했다. 햇살에 비친 골목과 제라늄 화분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흐르는 그리운 향기들 이 나를 더욱 이끌었다. 그 길을 걸으며 마치 모든 것이 나를 준비하고 있었던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할머니의 집은 따뜻한 향기가 흐르고, 고요함 속에 따뜻함을 품은 공간이었다.


할머니의 집에 도착하자, 할머니는 내가 가져온 토마토를 보며 웃으시며 말했다. “오늘은 내가 스튜를 끓일 거야. 네가 가져온 토마토로 말이야.” 그 말을 들으며, 나는 할머니의 손끝에서 하나하나 정성스레 준비하는 사랑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할머니의 손은 그 작은 스튜를 준비하는 동안, 그 손길 하나하나에 수많은 시간과 기억들이 쌓여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할머니는 부엌에서 스튜를 준비하시며, 나는 그 옆에서 그 따뜻한 시간을 함께 했다. 할머니의 집에는 그 어떤 장식도 화려하지 않았지만, 그곳의 분위기는 무언가 특별했다. 할머니와 나, 그리고 스튜가 끓는 그 시간이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온전히 연결되는 순간이었던 것 같다.


할머니는 내게 스튜를 대접하시며 말했다. “이 스튜가 다 끓으면 너도 좀 먹고 가라.” 그 말을 듣고 나는 할머니의 사랑을 그릇에 담아 먹을 준비를 했다. 스튜는 보글보글 끓다가 불을 낮추니 뭉근하게 가끔 한 번씩 퐁퐁 끓어 올랐다.


사랑은 버글버글 끓는 것만이 아니라, 사랑은 뜨거운 온도로 타는 것이 아니라, 정말 미세하게 작은 불로 가끔씩 퐁퐁 끓어 오르는 것이다.할머니는 나를 소파로 안내하며 앉게 하셨다. 그곳은 내가 이 차원에서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 모든 것이 신선한 경험이고 충격이었다. 그리고 내가 그를 이 자리에 초대하는 건 사실 할머니와 나와의 이 거룩한 경험을 망치는 것 같았다. 어쩌면 나는 이 온전한 사랑을 혼자 독차지 하고 싶은 본능이 올라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할머니는 말로 사랑을 가르치지 않고 자리를 그대로 내어 주시고 스튜가 끓기전까지 내 등을 가만히 반복해서 쓰다듬어 주셨다. 사랑은 이런것이구나. 상대가 나에게 다가와 주기를 기다리며 애 태우는게 아니라 상대의 자리를 존중하면서 내가 그 자리로 가서 가볍게 등을 쓰다듬는거구나. 나는 그 일상적인 모습에서 깊은 감명을 받고 사랑에 대한 정의도 새로 명명할 수 있었다.


할머니의 그릇과 접시, 그리고 그 부엌 한켠에서 나는 외로움의 냄새가 맡아졌다. 어쩌면 할머니는 매일 그 누군가를 기다리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리고 나의 늙어버린 모습도 할머니와 오버랩 되었다. 나도 저 할머니처럼 늙어 갈까. 그럴까 라는 물음 앞에 자유롭지 못했다.


그때 할머니는 토마토를 씻어 도마에 쓱쓱 잘라냈다. 나도 손을 얼른 씻고 뭐라도 도와야겠다고 부산을 떨었지만, 할머니는 온전히 나에게 스튜를 혼자 끓여 대접하고 싶으셨고 했다. 스튜는 보글보글 끓다가 불을 낮추니 뭉근하게 가끔 한번씩 퐁퐁 끓어 올랐다.


사랑은 버글버글 끓는 것만이 아니라, 사랑은 뜨거운 온도로 타는 것이 아니라 정말 미세하게 작은 불로 가끔씩 퐁퐁 끓어 오르는 것이다. 따뜻한 스튜와 할머니의 조건 없는 환대 속에서 나는 훗날 이런 기억으로 현재 진행 하는 #더세인트 의 철학의 바탕이 되었다. 할머니는 이 낯선 이방인에게 국적도 나이도 질문하지 않고, 오직 당신의 방법대로 자신이 앉았던 자리를 말 없이 내어주고 따뜻한 스튜 한 그릇을 내어주는 그 진심어린 위로 나는 많은 생각을 남겼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위로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자신의 공간이나 집에 누군가를 들일 때 얼마나 많은 검증을 거쳐야 하는가. 그러나 그런 계산된 초대 말고 살면서 이렇듯 우연히 만나는 인연을 삶에 초대하는 방식. 나는 이곳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사랑은 한 그릇의 스튜와 같아. 혹은 그 스튜를 끓이는 마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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