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자신에게 물을 주었던 사람을 잊지 않는다

by 마르치아


꽃은 자신에게 물을 주었던 사람을 잊지 않는다. 한 번이라도 자신을 위해 내밀어진 손길을 잊지 않고 단 한 번이라도 자신에게 물을 건네준 다정한 마음을 잊지 않는다. 흙이 메말라 가는 날에도 바람이 거칠게 흔드는 날에도 꽃은 조용히 버티며 자신이 받은 사랑을 꿰어 간다. 꽃은 스스로 물을 찾지 못한다. 스스로 어디론가 걸어갈 수도 없다. 그저 그 자리에서 주어진 것들을 받아들이고 받은 만큼만 피어난다. 그렇게 꽃은 온 몸으로 받은 다정을 기억하며 살아간다.


어릴 적 우리 집 앞마당에는 채송화가 피어 있었다. 빨강 분홍 주황 하양 노랑의 채송화들이 마당 가장자리를 따라 줄지어 서 있었다. 어머니는 매일 아침 물뿌리개를 들고 채송화들을 돌보셨고 때로는 작은 발끝으로 흙을 다져가며 "얘들은 물 한 모금만 줘도 금방 웃어" 하며 웃으셨다. 한참 가물던 여름날 어머니가 바빠 하루 이틀 물을 주지 못했을 때 채송화들은 고개를 축 늘어뜨렸지만 다시 물을 건네자 거짓말처럼 고개를 들고 작은 꽃잎을 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알았다. 생명이란 참으로 쉽게 상처받고 참으로 고맙게 살아나는 것임을.


살면서 우리는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 헤어진다. 어떤 인연은 스쳐가는 바람처럼 지나가고 어떤 인연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그러나 정말 마음 깊이 남는 이들은 화려한 말이나 대단한 약속을 한 사람들이 아니다. 가장 외로웠던 순간 가장 무너졌던 순간 작은 다정함을 건네준 사람들이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말없이 곁에 있어준 사람들. 말 한마디 없이 등을 토닥여준 사람들. 조용히 앉아 함께 숨 쉬어 준 사람들. 그들의 다정은 바람처럼 빠르게 사라지지 않고 물처럼 깊게 스며들어 지금까지도 내 안에 남아 있다.


삶은 생각보다 자주 메마른다. 꿈꾸었던 것들이 부서지고 기대하던 것들이 무너진다. 사랑은 식고 믿음은 흔들린다. 외로움은 바람처럼 찾아오고 절망은 모래처럼 쌓인다. 그런 세상 속에서 한때 받았던 작은 온기는 오래도록 나를 살아가게 한다. 한 번 건네받은 따뜻한 물 한 모금 같은 다정이 때로는 거센 폭풍도 버티게 만든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누군가에게 조용히 물을 건네고 싶다. 말 한마디로 미소 하나로 짧은 눈맞춤 하나로.


"꽃은 꺾이면서도 피어나는 법을 안다." 루이자 메이 올콧의 말처럼 꽃은 꺾이고 상처 입고 스러지면서도 다시 피어난다. 꺾였다고 해서 생을 포기하지 않고 상처받았다고 해서 살아가기를 그만두지 않는다. 오히려 꺾임을 품고 다시 햇살을 향해 손을 뻗는다. 그것이 꽃이 살아가는 방식이고 그것이 또한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이어야 한다.


내가 받은 사랑은 내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건네받은 다정은 내 몸을 지나 또 다른 이에게 건네진다. 그렇게 사랑은 흐르고 이어진다. 오늘 내가 건넨 작은 미소가 또 다른 이의 하루를 환히 밝힐지 모른다. 내가 놓은 작은 손길이 누군가를 다시 일으켜 세울지 모른다. 그렇게 믿고 오늘도 조용히 마음을 내어 준다.


꽃은 스스로를 치장하지 않는다. 누구를 따라가려 하지도 않고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피어난다. 그것 자체로 아름답고 그것 자체로 존재의 이유가 된다. 나도 그런 삶을 살고 싶다.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지 않고 비교하지 않고 내 자리에서 묵묵히 살아내고 싶다. 받은 사랑을 기억하고 받은 다정을 조용히 품으며.


살면서 나는 여러 번 넘어지고 꺾였다. 희망이 부서지는 소리를 들었고 사랑이 멀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 모든 시간 속에서도 나는 알게 되었다. 아픔은 나를 무너뜨리지 않았고 오히려 나를 더 깊이 뿌리내리게 했다. 슬픔은 나를 꺾지 않았고 오히려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삶은 아프면서 자라는 것이다. 꽃이 어두운 흙을 뚫고 올라오듯이 사람도 고통을 견디며 자란다. 눈물 없이는 사랑을 알 수 없고 상처 없이는 타인의 아픔을 헤아릴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내 상처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내 안의 모든 아픔과 흔들림을 껴안는다. 그것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앞으로의 나를 빚어낼 것이다.


나는 오늘도 마음속에 작은 정원을 가꾼다. 그 안에는 어릴 적 채송화가 있고 어린 시절 어머니의 손길이 있고 한때 나를 일으켜 준 이름 모를 손길이 있고 조용히 등을 토닥여준 작은 다정들이 있다. 그 정원은 시간이 지나도 시들지 않는다. 누군가 내게 물을 주었고 나는 그 물로 다시 꽃을 피우고 있기 때문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받은 사랑을 기억하는 일이다. 받은 사랑을 다시 건네는 일이다. 나 또한 누군가의 정원에 조용히 물 한 모금 건넬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언젠가 내 삶이 저물어 갈 때 마지막까지 마음속에 따뜻한 향기로 남고 싶다. 꽃은 자신에게 물을 주었던 사람을 잊지 않는다. 그리고 나도 내게 물을 주었던 이들을, 내가 건네주었던 다정함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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