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나눈 철학

잊히지 않는 이름~무궁화

by 박영선


무궁화를 생각하면 대개는 상징이 먼저 떠오른다. 우리나라 꽃이라는 사실과 교과서와 애국가 속에 반복되던 이름. 하지만 실제로 무궁화를 마주치는 순간은 언제나 조금 다르다.


여름 한낮, 길가에서 문득 시선을 붙잡는 꽃. 유난히 화려하지도, 향기가 진하지도 않아 무심히 지나치기 쉬운데, 한 번 눈에 들어오면 그 자리에 오래 남는다. 햇볕을 온몸으로 받아내면서도 고개를 들거나 흔들지 않고, 제 자리에서 조용히 피어 있는 모습 때문이다.


무궁화가 우리나라 꽃이 된 이유는 오랜 문헌 기록과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가사를 통해 국민적 상징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중국의 기록에는 우리나라를 무궁화가 많은 군자의 나라로 적어 놓은 대목도 남아 있다.


무궁화는 한꺼번에 여러 송이를 피우지 않는다. 한 송이가 아침에 피고 저녁에 지면,
곧바로 새로운 꽃이 올라와 하루도 꽃이 비지 않는다. 주로 7월 초부터 백일 가까운 여름 동안 끊임없이 꽃을 피운다. 이런 특징 때문에 무궁화는 끈질긴 생명력과 희망을 상징하는 꽃이 되었다.


무궁화를 오래 들여다보다 보면 이 꽃의 진짜 특징은 조금 특이한 ‘방식’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무궁화는 한 번에 낙화되지 않는다. 다 핀 꽃은 꽃잎이 나무에 붙은 채 마르며 시든다. ‘무궁무진하다’는 말은 끝까지 자기 자리를 떠나지 않는 태도를 가리키는 건 아닐까.


초등학교 시절, 무궁화 그리기 사생대회에 나간 적이 있다. 꽃을 보면 분명 무궁화인 걸 알겠는데 막상 그리려니 쉽지 않아 한참을 망설였던 기억이 난다. 그때 선생님은 먼저 가운데 수술대를 그리고, 다섯 장의 꽃잎을 살짝 겹치듯 얹으라고 하셨다. 마지막에 잎을 그리면 어렵지 않다던 그 말씀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 있다.

내 나름 입체감을 살리겠다고 물감을 섞어 붉은색을 칠했다가, 물을 묻혀가며 색을 덜 어내며 무궁화를 그렸다. 그 시간 덕분에 무궁화는 내게 특별한 꽃이 되었다.


지금 떠올려 보면 무궁화는 참 단정하게 생긴 꽃이었다. 요란하지 않지만 흐트러지지 않는 모양. 그 단정함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


무궁화는 특별한 자리에만 피지 않는다. 학교 담장 옆에도, 오래된 골목에도, 사람들이 잘 기억하지 않는 길가에도 서 있다. 그러면서도 해마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방식으로 꽃을 피워 올린다.


무궁화를 보면 이 꽃이 가르쳐 주는 삶의 속도를 생각해 본다. 앞서지 않으면서도
자기 몫의 시간을 끝까지 살아내는 꿋꿋함을 가진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살아간다는 건 크게 한꺼번에 피어나는 일이 아니라, 매번 피어야 할 순간을
건너뛰지 않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무궁화는 오늘도 말없이 서 있다. 다 피운 꽃의 흔적 위로 곧 피어날 꽃을 조용히 준비한 채. 시들어 가는 것과 시작되는 것이 한 자리에 함께 머무는 시간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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