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나눈 철학~20

다채로움 속의 진심~수국

by 박영선


우리는 여름의 한복판 서늘한 기운을 머금고 피어나는 수국을 마주할 수 있다. 어쩌면 장마철에 더 많이 피어있는 모습을 보았던 것 같다. 소나기처럼 세차게 쏟아지는 비가 아니라, 며칠씩 이어지는 끈질긴 비 속에서 가장 아름다웠다. 수국은 자신이 뿌리내린 땅의 성질에 따라 제 몸의 색깔을 바꾸는 기묘한 꽃이다. 산성 토양에서는 서늘한 청색으로, 알칼리성 토양에서는 따스한 분홍색으로 응답한다. 사람들은 수국의 이런 변화를 두고 변심이라 말하며 지조 없음을 탓하곤 하지만, 내가 마주한 수국의 색채는 자신이 처한 환경을 온몸으로 받아들여 피워낸 가장 정직한 수용의 모습이면서 스스로를 증명한 유연함이라 느껴진다.


우리는 종종 변하지 않는 것만이 가치 있다고 믿으며 자신의 색을 고수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 나 역시 타인과의 관계에서 나만의 색깔이 흐려질까 두려워, 주변의 변화를 외면한 채 고립된 원색으로 남으려 애쓰던 날들이 있었다. 그러나 수국은 말한다. 내가 푸른색이 된 것은 땅이 산성이었기 때문이고, 붉은색이 된 것은 땅이 알칼리성이었기 때문이라고. 그것은 내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세계와 비로소 한 몸이 되었음을 증명하는 꽃의 대답이다. 상대의 아픔이 내게 오면 나도 함께 푸르게 멍들고, 상대의 기쁨이 내게 오면 나도 함께 분홍빛으로 상기될 수 있는 유연함. 수국은 색의 변화를 통해 진정한 공감이란 나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나를 열어 상대를 받아들이는 일임을 몸소 보여준다.


이렇듯 지극히 유연한 수국이지만, 그 화려한 꽃잎 뒤에는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단단한 본질이 숨어 있다. 우리가 수국이라 부르는 커다란 꽃 뭉치는 사실 암술과 수술이 없는 '가짜 꽃', 즉 무성화다. 벌과 나비를 유인하기 위해 헛꽃잎을 크게 키워 화려하게 치장했을 뿐, 정작 생명을 잉태하는 진짜 꽃은 그 거대한 꽃다발의 중심부에서 아주 작고 보이지 않게 숨어 있다.


이 대목에서 나는 내 삶의 무게중심을 되돌아보게 된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헛꽃잎을 키우는 일에만 매몰되어 살았던가. 남들에게 보이는 화려한 이력이나 사회적 지위라는 헛꽃잎을 키우느라, 정작 내면의 작고 소중한 진짜 꽃을 돌보는 일에는 소홀하지 않았던가. 수국은 화려한 헛꽃잎으로 세상을 유혹하지만 결코 그것을 자신이라고 착각하지 않는다. 헛꽃잎이 바람에 흔들리며 세상의 시선을 붙잡아주는 동안, 중심부의 진짜 꽃은 소리 없이 내일의 씨앗을 준비한다. 나를 지키기 위해 겉모습을 꾸미는 것은 속물적인 행위가 아니라, 본질이라는 가장 연약한 중심을 지켜내기 위한 영리하고도 숭고한 전략인 것이다. 겉은 유연하게 세상의 색을 입되 속은 단단하게 자기만의 생명을 품고 있는 그 이중적인 모습이야말로 삶을 지탱하는 진정한 힘일지도 모른다.


생을 다한 수국이 시들어가는 모습 또한 예사롭지가 않다. 수국은 줄기에 매달린 채 천천히 색이 바래간다. 청색은 탁한 녹색으로, 분홍색은 마른 갈색으로 변하며 서서히 건조되어 갈 뿐이다. 세상의 색을 다 받아들여 제 몸에 새겼던 수국이 이제 그 색들을 하나둘 지우며 원래의 무채색으로 돌아가는 과정은, 열정적이었던 관계의 계절을 지나 고요한 자기 성찰의 계절로 접어드는 노년의 뒷모습과 닮아 있다. 화려한 색이 빠진 자리에 남는 것은 단단하게 마른 꽃의 뼈대와 지난 계절을 오롯이 통과시킨 자의 평온스러운 모습이다.


수국 앞에 서서 나는 다시 생각해 본다. 땅의 성질을 탓하기보다 그 땅에 어울리는 색을 피워낼 줄 아는 너그러움을 갖기를, 헛꽃잎의 화려함에 취하지 않고 내 안의 작은 진심을 끝까지 지켜내기를 기도해 본다. 그리하여 삶의 계절이 저물 때, 내가 피워냈던 수만 가지의 색깔을 미련 없이 비워내며 가장 가벼운 몸으로 바스러질 수 있기를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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