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다는 세계의 여러 도시들에 대해 보고 들을 때마다 내가 떠올리는 도시가 있다.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다. 파리와 스페인의 여러 도시, 로마나 프라하, 뉴욕, 나폴리 등, 저마다 가장 아름다웠다는 도시를 이야기할 때 나는 단연 시리아의 다마스쿠스였다! (사실 다른 덴 가본 데가 없다)
성경에도 나올 만큼 유서 깊은 도시 다마스쿠스. 2011년에 갔을 때 이 도시는 사방 어느 곳을 보아도 아름다웠다. 흔히 생각하는 고풍스러운 유럽의 도시에 비하자면 시골 같겠지만, 나지막한 집들이 층층이 쌓여 있는 도시 풍광은 수 천년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 아름다웠다. 집집마다 수백 년은 됐을 듯한 각양각색의 대문과 돌쩌귀, 유적 같아 보이는 반석과 오묘한 모양의 창문, 그리고 실내의 화려한 타일의 장식들... 골목마다 도사리고 있는 매력적인 옛 정취들은 넋을 놓게 만들었다. 고고학은 잘 모르지만 이 도시는 모든 것이 고고학 유산 같았고 모든 것이 다 귀해 보였다. 열사의 태양 아래 아름답게 빛나던 이 도시는 그러나 이제 지구상에 없다. 전쟁이 모든 것을 망가뜨렸기 때문이다.
내가 시리아를 다녀온 뒤, 시리아 국민들은 아랍에 퍼지던 "중동의 봄"에 영향을 받아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정부는 군대를 동원해 무자비하게 진압했고, 시민들은 민병대를 조직해 맞섰다. 이렇게 시리아는 내전에 휘말리게 된다. 당연하게도 이 내전의 배경에는 러시아와 미국이 있었다. 때문에 시리아 정부는 더욱 잔인하고 비열했다. 자국민에게 폭격을 가하는가 하면 ISIS까지 내전에 끌어들인다. 수많은 사람이 가족을 잃고 난민이 되어 조국을 등졌다. 시리아에서 "중동의 봄"은 내전이라는 끔찍한 결과를 낳은 것이다. 그렇다면 중동의 봄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그걸 따지자면 다시 10년 전 미국의 911 사태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온 세계 사람들에게 잊을 수 없었던 쌍둥이 빌딩 붕괴 장면. 911은 미국인들에게 수천 명의 자국민이 자국땅에서 죽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오사마 빈을 잠깐 감춰줬다는 이유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아프가니스탄을 때려잡은 다음 오사마 빈은 찾지 않고 이번엔 엉뚱하게 이라크를 침공한다. 미국이 이 전쟁을 일으킨 이유는 차지하고, 가장 큰 문제는 이 전쟁에 명분이 너무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미국은 중동의 민주주의를 지원한다는 다소 엉뚱한 명분을 내세웠고, 이에 따라 1차 이라크 전쟁의 작전명은 "이라크의 자유"가 되었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전쟁이었다. 지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하는 건 여기에 비할 것도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중국 시리아 베트남 등과 함께 치러간 셈이다) 이라크 기자의 신발은 부시 면상에 정확히 꽂혔어야 했다! 미국은 10년간 이라크를 전쟁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지만 이곳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는 더욱 요원해졌다. 아프카니스탄은 전쟁을 무려 20년이나 치러야 했다.
때문에 전쟁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미국은 더욱 국제적 횡포를 저지른다. 갑자기 팔레스타인의 멱살을 잡아끌었고, 중동 여러 나라에 민주주의를 강매했다. 악의 축이라는 말도 만들어 전 세계가 미국의 눈치를 보게 만들었다. 악의 축은 그러니까 번역하자면 “누구든 까불기만 해. 그럼 다음 차례는 너야!”라는 뜻이다. 부끄러운 짓을 하자니 면이 안 서고 그러니 아무도 말 못하게 아예 강짜를 부리는 상황이었다. (그나저나 난 어쩌다 이 이야기를 이리 길게 하게 됐을까?)
이러한 중동의 상황은 엉뚱한 곳에서 엉뚱한 방향으로 번진다. 그 시작은 튀니지였다. 2010년 튀니지에서 행상 좌판을 몰수당한 한 청년이 분신을 시도했고, 그러자 그간 쌓였던 정부에 대한 불만이 시위로 번지면서 재스민 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이 재스민 향은 봄바람을 타고 이집트로 넘어가 무바라크 정권을 무너뜨리고 곧이어 예맨, 오만, 사우디, 바레인, 시리아로 번졌다. 이것이 2011년 "중동의 봄"이다. 하지만 중동의 봄은 각 나라를 더욱 심각한 탄압과 내전으로 치닫게 했다. 그리고 “중동의 봄” 끝에 발생된 시리아와 중동의 난민들이 대거 유럽으로 향하자 유로는 난민 문제로 사분오열되는 위기를 맞는다. 그 결과 영국은 브랙 시트를 감행하고 수많은 나라에서 극우 정당이 득세하게 된다. 그리고 이 불길은 동쪽으로도 번져가 인도차이나 반도의 태국과 미얀마에서 격렬한 시위를 낳았다.
유럽은 미국에 대해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 모든 일은 미국이 시작한 일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멕시코 국경에 담벼락이나 세우며 딴청만 피웠다. 그렇게 미국이 자국 우선주의를 주창하는 동안 전세계는 코로나로 몸살을 앓았다. 코로나로 쩔쩔매던 미국은 유럽으로 가는 백신을 가로채기도 하고, 미국 백인들은 의사당에 총을 들고 난입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치고 올라오는 중국을 욕하며 겁을 줘봤지만 도무지 말빨이 먹히지 않았다. 세계 일등 국가로서 미국의 위상은 완전히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다. 이렇게 미국의 말빨이 안 서는 틈을 타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다. 쏟아지는 국제적 지탄에 러시아는 도리어 석유, 가스, 곡물 등의 자원을 가지고 세계를 경제 위기에 빠뜨린다. 이쯤 되면 미국이나 러시아나 세계 시민들을 향해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그래서 뭐 어쩔 건데?”
그동안 무지막지한 돈을 풀어 온갖 경제 위기와 코로나를 막아 왔던 미국은 전쟁으로 원자재 가격이 출렁이자 인플레의 위협에 노출된다. 그러자 이번에도 미국은 혼자 살겠다며 빅 스텝이니 자이언트 스텝이니하며 이자율을 마구 올리기 시작한다. 허약한 나라 몇 개 쓰러져도 나만 살면 된다는 식이다. 이런 상황이니 누가 미국의 말을 듣겠나. 그저 뒤로 욕하며 눈치나 보는 거지.
다마스쿠스 골목
전 세계는 지금 20세기에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것과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밀접하고 빠르게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세계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좁아진 탓에 동시다발적으로 온 세계가 난리법석을 겪는 중이다. (이런 이야기를 쓰면 뽀대 난다고 생각했나 보다. 나도 안다. 쓸데없이 진지한 거 이거 다 지적 열등감의 표현이란 거)
그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요새 자동차를 새로 구입하려면 일 년을 넘게 기다려야 한다고 아우성이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반도체 수급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반도체 수급이 부족한가? 그 원인은 코로나다. 언뜻 이 두 개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납득이 잘 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 원인은 코로나다. 코로나가 터지면서 사람들은 밖으로 나다니지 못하게 됐고, 그 때문에 비대면 활동이 많아졌다. 비대면 활동이 많아지자 컴퓨터, 모니터, 티브이 등의 수요가 많아졌고 반도체수요도 많아졌다. 그 영향으로 자동차 반도체의 공급이 달리게 된 것이다.
앞에서 말한 불과 20년 만에 벌어진 온갖 일들을 보자. 하나의 사건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사방에 영향을 끼친다. 정교하게 연결된 글로벌적인 생산벨트는 어느 곳 하나만 잘못되어도 연쇄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전 세계 국가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탓에 서로에게 수많은 영향을 주고 있지만, 대체로 우리는 그 결과를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편이다. 그리고 모두가 함께 대혼란에 빠져 들어가는 중이다. 아마 이것은 인간의 태생적 한계일지도 모르겠다. 한 개인이든 한 국가든 어떤 식으로든 감정을 가지고 있고, 이것이 일을 더 복잡하게 꼬는 무시할 수 없는 경향도 그렇다. 이라크는 전쟁 전에 미국의 우방이었고,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연방이었다. 이들 국가들은 상대국가에 대해 가진 어떤 종류의 감정으로 전쟁의 시작을 결심했다. 긴밀히 연결된 세계. 그리고 각 국가의 다른 국가에 대한 감정 등등으로 세계는 앞으로 더욱 심각하게 반목하고 싸우게 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세 이미 3차 대전의 초입에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 나는 페북에서 AI 드로잉 생성 앱 광고를 봤다. 어떤 그림을 그려달라고 텍스트를 입력하면 AI가 그대로 그림을 그려주는 프로그램이다. 놀랍지 않은가. 그뿐만이 아니다. AI는 이미 음악을 창작하고 저작권도 가지고 있으며, 항공기 운항에서도 이제는 오토 파일럿뿐만 아니라 랜딩까지 책임지는 시대로 가고 있다. 이미 엄청나게 많은 곳에서 실재로 사용되고 있는 AI. 정말 AI의 시대가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지난 AI DAY에서 테슬라는 휴머노이드형 AI 로봇 옵티머스를 선보였다. 이날 엘런 머스크는 이 로봇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 일을 자신이 아니라 테슬라라는 회사가 맡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AI가 세상을 지배할까 두렵다는 그는 이 로봇을 자기 혼자만의 독단으로 좌지우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런 상상을 해 본다. 이미 자아를 획득한 궁극의 AI가 개발되어 있어서 어느 날 빈정 상한 푸틴이 핵 버튼을 누를 가능성을 90프로 이상으로 계산한다면? 그래서 AI는 인간을 위해, 그리고 자신의 소거를 막기 위해 스스로 판단하여 푸틴이 누르게 될 핵단추를 무용지물로 만든다면? 그래서 마침내 푸틴이 단추를 눌렀을 때 핵폭탄이 발사가 안되고, AI가 핵전쟁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한다면?
가정이지만 AI가 이런 일을 한 것을 우리가 알게 된다면 우린 정말 화들짝 놀랄 것이다. 인류의 생사를 AI에게 맡길 수 없다고 인간들은 또 격렬하게 저항하고, 심지어 AI를 파괴하려 할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이 AI가 인간보다 냉정하게 사태를 바라볼 수 있고, 무엇보다 예측 가능한 미래를 계획할 수 있다면, 그래서 그간의 모든 차별을 없애고 인류에게 평화와 번영을 줄 수 있다면? 그래도 인류는 싸우려나? 그렇다면 AI가 인간을 죄다 없애 버리는 쪽을 택하는 게 더 자연스러우려나?
AI에게 인류의 운명을 맡기다니, 아직은 이상한 말처럼 보인다. 하지만 테슬라의 자동차는 사람이 운전에서 손을 떼는 완전한 자율주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도우리 대신 고도로 발전한 AI가 맡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3차 대전의 초입에 있을지 모르는 우리. 수 십 년간 사태를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어 놓은 우리. 개별 국가 안에서, 국제 사회 안에서 심각한 차별을 만든 우리. 적당한 시절이 오면 감정적인 우리 인간들보다는 AI에게 세상을 맡기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지구가 더 더워지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