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하루를 빼고 매일 아침 쓰레기 수거 차량이 아파트 단지를 돈다. 주 4일 근무를 이야기하는 이즈음 아직도 이분들은 일주일에 하루만 쉬는 모양이다. 일주일에 한 번 오는 재활용 수거 차량은 더 대단하다. 한 사람은 차에 타고 내릴 시간도 없다는 듯 뛰어와 재활용품을 던지고 다음 재활용이 있는 곳으로 뛰어가면, 움직이는 차량 짐칸에 있는 사람이 그걸 받아 산더미처럼 쌓인 재활용 사이에 그것을 구겨 넣는다. 차는 계속 움직이고 한 사람은 뛰고 한 사람은 아찔한 높이에서 그걸 받는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단지에서 사라진다. 이렇게 거대한 도시의 일상을 알뜰하게 챙겨주는 사람들은 이들만이 아니다. 지하철, 공항 또는 큰 빌딩에도 있는 듯 없는 듯 쉴 새 없이 치우고 청소하는 분들이 있다. 그리고 어떤 곳에는 구의역의 김 군이나, 현장실습 나간 고등학생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그런 사람들이 있음을 잊곤 한다.
십여 년 전 다큐 촬영을 위해 레바논 베이루트에 간 적이 있었다. 베이루트는 중동의 파리라 불리는 항구 도시로 무려 기원전 3천 년 전에 세워졌다고 한다. 베이루트 사람들은 활기찼고 도시는 그야말로 자유로운 분위기가 넘쳤다. 간혹 테러가 일어나는 나라였지만, 우리가 바에서 폭탄주를 만들어 마시면서 이걸 “Bomb”이라고 부른다고 했을 때도 흔쾌히 웃을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매일 촬영이 끝나고 가던 바에는 테이블을 치우는 흑인 종업원이 있었다. 나는 레바논에서 흑인을 그때 처음 본 것 같았다. 에티오피아에서 왔다는 그녀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검었고, 그리고 감탄이 나올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나타나 테이블을 치우고는 바텐더 뒤로 돌아가서는 마치 세상에서 사라지듯 사라졌다. 나는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켜 세워 그녀를 찾았다. 바 안쪽에는 지하로 통하는 문이 있어서 그녀는 테이블을 치운 쟁반을 들고 그 아래로 내려간 것이었다. 이후로도 그녀는 새 잔을 가지고 올라왔다가, 테이블을 치우고 다시 지하로 사라졌다. 지하실이 그녀가 있는 곳이었다. 그녀가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레바논의 자유로움과 풍요의 바닥에는 그녀들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이방인의 눈으로 보기에 레바논의 백인 사장과 에티오피아 흑인 종업원은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현실 세계 레바논에서 두 사람은 지상과 지하로 나뉘었고 커다란 격차가 있었다. 하나는 세상의 주인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에 있으되 보이지 않는 그런 사람이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한국인이기도 하고 외국인 노동자이기도 하다. 우리는 흔히 이런 사람들을 없는 사람,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취급하곤 한다. 그들이 있는 자리는 늘 냉난방은커녕 환기조차 되지 않는 구석지고 그늘진 자리였다. 있으되 보이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정말 이렇게 "없는 사람" 으로 대해도 되는 것일까? 레바논 바의 지하실로 사라지던 그녀처럼?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구석에 몰아 놓고 모른 채 외면해도 되는 사람이란 없다. 우리는 모두 똑같은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