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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돈이 뚝 떨어진다면?

by allen rabbit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두 드라마. <작은아씨들>과 <모범가족>

가난한 오인주는 죽은 직장 동료로부터 이십억이 든 돈 가방을 받는다. 인주는 창문이 새시로 된 집에 살고 싶다며 돈이 든 커다란 더블백을 짊어지고 집으로 향한다. 드라마 <작은아씨들>은 이렇게 시작된다.

동하는 우연히 자동차 사고를 당한다. 그런데 사고를 낸 차에는 사람들이 죽어 있고 얼마인지 알 수도 없는 돈이 더블백에 잔뜩 들어 있다. 동하는 그 돈을 아들 수술비로 쓰기로 결심한다. <모범가족>의 도입이다.

수십 년 전 대니보일의 <쉘로우 그레이브>도 그랬다. 죽은 하숙인의 방에서 돈 가방을 발견하고 알렉스는 그걸 가지기로 하면서 위기에 빠진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또 어떤가. 거기서도 모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돈 가방을 들고 튄다. 지금까지 이런 이야기는 사실 굉장히 많았다. <돈을 갖고 튀어라> <돈가방을 든 수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머니백> ... 등등.

이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일단 어마어마하게 큰돈이 짠! 등장하고, 주인공이 그걸 갖기로 결심하는 거다. 곧이어 돈의 주인이 등장해서 사람이 죽기 시작하면서 사태는 점점 심각해진다. 이런 유의 이야기는 대게 비극으로 끝난다. 안 그런 경우도 있지만 어쨌든 별로 유쾌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간다. 함부로 남의 돈을 탐내면 죽는다는 교훈이라도 심어주려는 것일까? 이렇게 엔딩이 찝찝한데도 불구하고 이런 이야기는 자꾸만 만들어지고, 하늘에서 떨어진 돈 때문에 주인공이 그렇게 고생하는 것을 보고도 또 사람들은 또 흔하게 이런 소리를 하곤 한다.

"어디서 갑자기 돈이 뚝 떨어졌으면 좋겠다"

큰 일 날 소리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이 세상을 월세로 살아가고 있다. 매달 은행에 대출 이자를 내고, 통신료를 내고, 아파트 관리비를 내고, TV 시청료와 자동차 할부금을 내고, 정수기 렌트비와 아이들 학원비를 낸다. 한 달이 마치 꽉 물린 톱니바퀴처럼 돌아간다. 사람들은 돈을 벌어서 이런 월세를 내며 살아간다. 매달 월세를 내지 않으면 우리는 당장 전화기가 끊기고, 전기가 끊기고 가스와 수도가 끊긴다. 세수도 하지 않고 일하러 가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도무지 이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다.

이렇게 월세로 인생을 살아가며 우리가 가장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렇다 세상을 전세로 사는 거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집을 사는 거다. 그래서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이 나왔다. 그렇다면 그 방법은? 돈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거다. 월세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보다 더 신나는 상상은 없을 거다. 그래서 이런 드라마와 영화가 계속 나오는 거다.

"어렵게 살아가던 주인공.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돈가방이 뚝 떨어지고 건물주가 되어 행복하게 잘 살게 된다. “

눈앞에 돈이 생겼는데 얼른 주머니에 넣지 않는 건 개연성이 없다. 돈만큼 사람들에게 진심인 대상은 없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현실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잘 알고 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돈이 걱정 없는 돈일 리 만무하고. 이런 돈은 내 인생을 악몽으로 만들기 십상이라는 것을. 그래서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주인공이 그 돈을 들고 튀면 칼을 맞는 이야기로 끝난다. 그런데 "하늘에서 돈이 뚝 떨어졌으면"하는 건 그저 우리들의 바람일 뿐인데 이 바람이 이토록 지독한 결과가 되어야만 하나? 뭔가 이야기가 앞뒤가 잘못된 건 아닐까?

지금의 자본주의 세계에서 생산적 활동으로 돈을 버는 건 더 이상 큰 가치가 없다. 농부가 흙에서 일구는 생산물, 노동자가 땀 흘려 일한 대가로 받은 돈만이 의미가 있고 주식이나 부동산으로 번 돈은 의미가 없다고 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지금 우리들은 생산적 활동 대신 소유한 재산으로 소비만 하는 계층이 되어 살기를 바란다. 그런 계급을 유한계급이라고 하고 우리는 이제 과시적으로 소비하며 인생을 낭비하는 바로 그 유한계급이 언젠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네 월세 인생은 그저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같이 시작한 월세 인생에서 수없이 낙오되어 가는 주변의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쫄깃할 지경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 이 무한루프에서 벗어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그렇다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면 된다. 하늘에서 돈이 떨어진다면 그걸로 월세 인생 청산하고 계층상승을 하는 거다. 월세 인생 청산하고 조물주 위의 건물주로 살면 된다. 사람들은 현실을 부정하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꾼다. 영화나 드라마는 이 점을 반영한다. 떨어진 돈가방은 계층 상승을 하고 싶다는 우리들의 바람이 투영된 산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는 이야기는 돈의 정체 때문에 주인공이 무수히 고난을 겪는 이야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돈은 우리들의 계층 상승의 욕망을 표현한 아이템인데, 이것 때문에 주인공이 다치고 고통을 당하고 심지어 죽는다면 곤란하다. 결국 하늘에서 떨어진 돈 따위 절대 탐하지 말라는 교훈극 밖에 되지 않으니까. 아이들에게 돈 주으면 경찰서에 가지고 가라는 꼰대 소리가 될 뿐이니까.

<이태원클래스>는 원래 2등 시민인 박새로이가 1등 시민에게 복수를 하고 스스로가 1등 시민이 되는 이야기다. 물론 어마어마한 부자가 되어서. 이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것은 바로 계층상승의 꿈을 실현해 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는 대신 음식 레시피가 떨어졌지만, 어쨌든 사람들이 원하는 이야기는 이런 거였다.

<브레이킹 베드> 역시 나는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가난하고 병든 화학 선생은 지긋지긋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마약애 손을 댄다. 계속 위험은 닥치지만 그는 늘 위험을 이겨내고 승리한다. 이제 그는 가난하고 병들었던 세상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비록 아슬아슬한 마약왕의 삶이지만 우리들이 원하는 건 고통받는 게 아니다. 승리하는 거다.

<쉘로우 그레이브>도 그런 면에서 <이태원클래스>나 <브레이킹 베드>와 같다.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고 알렉스는 그 돈을 갖고 사라진다. 그는 벌 받지 않았다. 아마 그는 그 돈으로 더 이상 월세 따위는 살지 않을 거다.

나는 바로 이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는 이야기의 목적은 이 꽃 같은 세상에서 유한계급이 되어 떵떵거리며 살고 싶은 월세 인생들의 바람이 이루어지는 걸 보여주는 거다. 사람들의 바람대로 하늘에서 돈을 뚝 떨어뜨려 주고는 우리가 "우와 이걸로 뭘 하지? 우선 새시창문 있는 집을 사자!" 하고 잔뜩 설렐 때 뒤통수에 총을 겨누면 배신감이 드는 거다. 그래서 최근에 만들어진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는 이야기“들이 내게는 꼭 주소를 잘못 써넣은 소포 같다. 그 돈으로 계급을 업글하는 신나는 이야기로 가지 않고, 자꾸 함부로 남의 돈을 탐내지 말라는 교훈으로 향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원래 하늘에서 돈이 떨어졌으면 하고 말한 건 꼬질꼬질한 고생 좀 안 하고 근사하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던진 말 아닌가. 농으로 던진 말을 다큐로 받으면 그것만큼 답답한 게 또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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