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젠가> 3화
“제목 : 남친 있는데 썸남이랑 모텔.
내용 : 남친 있는 29. 남친이 다른 여자랑 나 저울질해서 헤어지려고. 오늘 모임에서 처음 본 남자애 데리고 모텔 옴. 증거 남기려고 모텔비 나보고 내래서 냈는데 기분 더럽네. 대실 하라길래 화나서 그냥 1박 지름. 썸남은 샤워 중. 그냥 나갈까?”
시간이 꽤 지났지만, 남자애는 아직도 씻는 중이었다.
“더럽다더니 뭐가 더럽다는 거야?”
시윤은 도경이 자주 드나드는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썼다. 시윤은 도경이 이 게시물을 볼지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게시물이 베스트에 올라가면 확실히 볼 가능성이 컸다. 시윤은 도경이 알아볼 수 있도록 게시글에 도경의 키와 몸무게, 좋아하는 게임 캐릭터, MBTI 따위 힌트도 덧붙이기 시작했다.
시윤이 핸드폰으로 게시글을 쓰는 중에 아빠에게 톡이 왔다.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말고, 너무 늦지 말라는 늘 하는 말이었다. 문득 아빠가 했던 말이 떠 올랐다.
“죽은 602동 남자도 그랬을 거야. 마약 끊어질까 무서웠던 거지.”
아빠는 오십이 되면서 회사에서는 명퇴를 권했지만, 아빠는 굵고 짧기보다는 얇고 길게 남는 것을 택했다. 아빠는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실 때면 시윤을 불러 앉히곤 했다. 그날 아빠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조금 우울한 것 같았다.
“다 괜찮거든 월급만 받으면. 월급이 마약이거든.”
“아빠 그 사람 알아?”
“아니. 뻔하지.”
602동의 자살을 전하던 엄마의 호들갑과 달리 시윤은 전혀 관심이 없었다. 뉴스에는 602동이 대기업에 다니는 과장이었고,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자살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아빠는 602동이 마약 때문에 죽었다고 설명했다.
“씻어.”
남자애가 화장실에서 나왔다. 시윤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조르르 화장실로 향했다. 옷을 벗으며 보니 팬티는 다행히 베이지색이 아니었다. 이 상황에 팬티 걱정이라니. 어쩐지 언제나 똑같은 대답을 하는 아빠의 AI 기기 같았다. 다른 사람에게 이런 건 보이고, 저런 건 감추라고 프로그램된 탓일지도 몰랐다.
시윤은 샤워하면서 생각했다. 계속 게시판에 증거를 남기면 결국 회사까지 그만둬야 할지도 몰랐다. 회사 사람들은 결국 다 남이다. 남의 스캔들에 온정이 있을 리 만무했다. 회사를 그만두는 건 괜찮지만 월급이 끊기는 건 싫었다. 그냥 이대로 나가면 다시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때 화장실 문이 열리고 벌거벗은 남자애가 들어왔다. 당황한 시윤이 몸을 가렸다.
“왜…. 잠깐만…. 좀 기다려. 나 씻잖아.”
“싫어.”
남자애가 무표정한 얼굴로 다가와 키스를 했다. 시윤이 계속 밀쳐냈지만 소용없었다. 모텔에 들어오고부터 시윤은 계속 망설이고만 있었다. 그걸 눈치챈 남자애는 수중에 들어온 새를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시윤이 화난 얼굴로 노려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남자애는 시윤의 어깨와 머리를 힘주어 아래로 내리눌렀다. 무릎이 바닥에 닿자 시윤은 세상에 무릎 꿇은 기분이었다.
더럽다던 바키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아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시윤은 구역질을 해대며 맹렬히 양치질을 했다. 침대에 걸터앉은 남자애는 TV에서 영화를 검색하고 있었다. 시윤은 수건으로 몸을 감싸고 침대에 누웠다. 남자애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리모컨을 조작했다. 시윤은 핸드폰을 열고 조금 전 샤워 부스에서 있었던 일을 게시판에 올렸다. 바키에게 톡이 왔다. “어디 있냐. 대답 좀 해라.” “집에 갔냐.” “전화해 이년아.” 그 잠깐 사이 게시판의 글은 댓글과 조회 수가 치솟아 있었다. 대부분 글쓴이가 누군지 밝히려고 애를 썼다. 시윤은 알았다. 사실 사람들은 남의 일에 관심이 많았던 거다. 자신의 욕망을 투사할 대상에, 특히 남의 불행에. 시윤은 잠시 망설이다 바키에게 아까 그 애와 모텔에 있다고 답을 보냈다. 그러자 톡의 1이 사라지기도 전에 전화가 걸려 왔다. 바키가 흥분해서 소리쳤다.
“야! 이 미친년아! 너 왜 그래? 뭐 하는 거야! 당장 튀어나와! 빨리!”
“나 지금 전화 못 받아. 이따 전화할게. 톡 해. 톡.”
시윤은 서둘러 전화를 끊고 핸드폰을 무음으로 바꿨다. 남자애가 시윤을 돌아봤다.
“누구?”
“아니야. 아무도.”
바키에게 또 전화가 왔다. 시윤은 종료 버튼을 누른다는 게 그만 통화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바키가 고래고래 지르는 소리가 스피커폰처럼 울렸다.
“이 미친년아! 너 왜 그래? 어쩌려고?!”
“몰라.”
“왜 몰라? 네가 무슨 짓을 하는지 몰라?”
“응. 몰라.”
“오지네 정말. 그게 무슨 말이야! 이년아!”
시윤이 전화를 끊고 입을 비죽이며 말했다.
“모르니까 모른다고 하지.”
“친구? 왜 그렇게 화를 내?”
남자애가 피식 웃더니 침대 위로 기어 올라왔다. 시윤의 뺨에 가볍게 키스했다. 귓불에서 목덜미로 다시 어깨로. 샤워실에서와 다르게 남자애는 부드럽게 시윤을 어루만졌다. 시윤은 도경이 게시판의 글을 봤을지 모른다고 생각하자 배가 뜨거워졌다.
두 사람은 천천히, 오랫동안 아주 높은 곳에 올라가 있었다.
남자애가 몸을 떼자 뜨거워진 시윤은 에어컨을 세게 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