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의 퇴임과 새 출발 이야기
규칙적인 도서관 출퇴근 생활을 1년 가까이 유지해 왔다. 생체 리듬도 두뇌 활동에도 큰 흔들림은 없었다. 하지만 가슴속에 아릿한 불안감이 문득문득 스쳤다. 아마도 퇴임 직후부터 내 마음 깊은 곳에 싹트기 시작한 감정이 아닐까.
지난 12월 가까운 회사 후배와 둘이서 저녁 식사 시간을 가졌다. 규칙적인 나의 일상 이야기와 회사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후배는 회사 상황에 대한 나의 의견을 묻기도 했다. 자리가 마무리될 즈음에 후배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전무님. 누가 봐도 좋아 보이는 포지션으로 가야 한다는 부담감, 후배들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시는 것이 어떠실지 조심스럽게 말씀드립니다.”
‘헉! 어떻게 알았지?’
친밀한 관계의 후배이지만 내 속마음을 들여다 보고 정곡을 찌를 줄이야.
지난 1년 동안 적극적 구직 활동을 하지 않았고, 헤드헌터로부터 제안받은 포지션 중 ‘내가 갈 수준의 포지션은 아니다’라는 자만심으로 수 차례 거부해 왔었다.
후배가 말을 잇는다.
“우선 빨리 포지셔닝하시고, 다니시면서 새로운 기회를 보시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비상근 고문 혜택이 1년 더 있으시지만, 경력 단절 기간이 길어지는 것은 부담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만.”
잠시 내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침묵이 흘렀다.
“동의합니다. 지금까지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다음 날부터 적극적으로 구직 활동을 하기로 했다. 하루에 2번, 이른 오전과 늦은 오후에 서치펌의 채용 공고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지원 가능한 포지션이 있으면 저울질하지 않고 지원해 보기로 하였다.
채용 공고를 올리고 알람을 주는 수많은 서치펌 회사들이 있지만, RM社와 BP社 2곳만 활용하였다. 헤드헌터들이 나에게 여러 번 제안을 준 곳이 이 2개 회사를 통해서였다.
널리 알려져 있는 SI社는 자주 채용 공고 안내 메시지를 보내왔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신입 또는 대리급 사원’을 뽑는다는 공고였다. SI社의 AI는 IQ가 한자리 숫자인 것 같았다.
‘내가 등록해 둔 이력서를 학습했다면 그런 포지션을 제안하지 않을 텐데.’
SI社에 등록했던 나의 이력서를 삭제하고 바로 탈퇴하였다.
적극적인 구직 활동을 시작하고 보니 내 마음속의 불안감은 정체를 드러내고 점점 커져 갔다. 조바심이 생기고 흔들림이 자주 일어난다.
‘지금의 나를,
나의 시간과 노동을,
사 줄 회사가 있을까?’
올해 1월 초 오전 이른 시각, 도서관 테이블에 올려둔 휴대폰이 꿈틀거렸다. ‘이 시각에 전화할 사람이 없는데?’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니 회사의 후배 임원이었다.
‘바로 전화드리겠습니다.’
답신 메시지를 보내고, 도서관 열람실 밖으로 나갔다.
제11화_2번의 행운을 맞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