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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길 May 02. 2024

자습실에 앉아서

의식의 흐

 11시 2분, 자습시간이 끝나기 까지 58분이 남았다. 하지만 종례시간을 고려하면 실질적으로는 48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보통 자습이 끝나기 1시간 전에 나는 독서를 청한다. 허나 오늘은 왜인지 독서가 땡기지 않는다. 할 것도 없기에 글을 끄적여 본다.


 7시부터가 자습시간이다. 나는 자습시간이 되자마자 얼른 하루치의 학원 숙제를 끝냈다. 끝내고 보니 8시가 다되어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때부터 엔드게임 살인사건을 마저 읽어서 결말까지 보고 싶었다. 허나 내게는 그럴 수 없는 이유가 한가지 있었다. 내일 있을 동아리 시간에 토론을 해야하는데, 논거를 단 한 개도 준비하지를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재빨리 논거를 찾기로 결심하였다.


 내가 토론하는 과학 주제는 물리법칙이라는 것은 자연에 실제로 존재하는가를 주제로 한다. 이 주제는 표면적으로만 보면 '당연히 자연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허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뭔가 굳이 느껴질 필요도 없는데 이상함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할 것이다. 허나 나는 애초부터 물리법칙이라는 것은 인간이 만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기에, 일반적인 다른 사람들과 생각이 달라 이 토론 주제라면 재미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물리법칙, 즉, 여러 물리적 법칙이나 공식들이 자연에 내재되어 있는 법칙을 끄집어 내어 우리만의 언어로 표현한 것이 아니라, 자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서만 기능을 가진다고 생각하고 있기에 그렇다. 허나 학문이라는 것이 원래 그런 것인지, 생각하면 할수록 더 모르겠다. 알면 알수록 더 모르겠다. 사실 수학이나 무리학 같은 것들은 연인과 같은 이치를 가지는 것이 아닐까? 17년 만년 모태솔로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웃기지만, 연애를 경험해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항상 상대방의 마음을 모르겠다고들 한다. 알면 알수록, 같이 보낸 시간이 많을 수록 모르는 게 더 많아지고, 그 이전에 알았던 것들에도 의구심이 생긴다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의구심 때문에 또 연인에게 끌린다고 한다. 나는 커플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허나 수학이나 과학같은 이공계열을 좋아하는 나는, 연인을 수학이나 과학에 비유하여 설명하기를 시작하였을 때, 커플들의 마음을 조금 이해한 것 같았다.


 심심해서 주제도 정하지 않고 글을 막 쓰다보니 별 이야기를 다 적게 된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이번에는 무슨 이야기를 해볼까. 이번에는 자습 시간에 있던 좀 가슴 아픈 이야기를 해보겠다.


 중간고사도 끝난터라 나의 친구들은 자습 시간에 공부를 하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나에게 소설 책을 많이들 빌려가는데....하...

 내 책을 빌려간 친구 중 하나가 책을 펼쳐놓고 그대로 잠들었는데, 펼쳐놨던 페이지에 얼굴을 비비면서 잠들어가지고 해당 페이지가 다 꾸겨져버렸다.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이런 걸로 이렇게 까지 가슴이 아플 수 있다는 사실도 신기했다. 평소에 별 생각도 없이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나인데, 내 돈으로 산 소설책이 구겨진 모습을 보니 분노라는 감정이 내 온몸을 지배하는 것이 느껴졌다. 마음 같아서는 그 친구에게 책임을 묻고, 당장 새 것을 내놓으라고 재촉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에게도 이미지라는 것이다. 나의 대부분의 행동은 이미지 관리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천성이 착하게 태어나서 행동이 좋다고 난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주변의 시선을 너무 의식한 나머지, 내 행동의 결과를 매번 생각하는 나머지 결국 착하다라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이성적 사고 과정을 걸쳐서 나의 모든 행동들이 정해지는 것 같다. 어찌되었든, 난 그 친구에게 사실 여부부터 확인했다. 내 책을 꾸겼다는 소식을 다른 친구로 부터 접했던 것이기에 그 친구에게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너가 자면서 내 책을 망쳐놨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 말이 사실이냐고 물으며 대화를 시작했다. 그러고 그 친구가 말하길,

 "잠자느라 기억은 잘 안나지만, 그랬던 것 같아"

 라고 말하며 내게 사과를 했다. 하지만 그냥 사과만 했다면 나는 받아주지 않았을 터인데, 음료수를 사준다는 것이다. 이건 못참지, 나는 바로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내일 기숙사도 퇴실하는 날이겠다, 음료수나 한잔 사면서 헤어지자고 했다. 그 순간에는 내 스스로가 관대해진 느낌이고, 손해에 대한 보상이 주어졌기에 기분이 잠시 좋았는데, 지금와서 다시 생각하니 소설 책이 구겨졌다는 사실이 너무 가슴아프다. 내가 서점에서 얼마나 신중하게 골라서 샀던 책이었는데... 내일 모레 토요일에는 오랜만에 서점이나 가야겠다. 시험 이후로 서점에 들린 적이 없다.


 서점에 들려서 무엇을 살까, 나는 원래 로맨스 소설만 주로 읽었다. 로맨스 소설이나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수학에 관한 책, 수학의 역사라든지의 책만 읽었는데, 중학교 3학년 시절에 셜록홈즈에 푹 빠져서 시리즈를 다 읽게된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 추리 소설에도 빠져서 추리소설도 간혹 읽는다. 토요일에는 어떤 책을 사는 것이 내게 가장 큰 행복감을 주게될 지 모르겠다.

 서점에 가서 책이 아름답게 진열되어있는 것을 보면 몸과 마음이 흥분되는 것 같다. 책이 깔려 있는 광경 자체가 나에게 행복을 안겨주며, 서점 특유의 냄새가 완벽한 조미료 역할을 수행하여 책이라는 메인디쉬에 완벽한 풍미를 더해준다. 허나 이것뿐이 아니지, 내가 읽을 책을 내가 직접 선택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또 즐겁다. 내가 평생을 소장할 수 있는 책을 선택하다니, 가슴이 어떻게 설레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얼른 서점에 가고 싶다. 하지만 내 한 달 용돈으로는 2권이 마지노선이다. 그 부분이 너무 아쉽긴 하지만, 생각보다 고등학생이라는 신분에게는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 거의 매달 시험을 보는 느낌이다. 3월 모의고사를 보고, 이제 책 좀 읽을라고 했더니만 중간고사가 곧이고, 이제 책 좀 읽을라고 했더니만 6월 모의고사가 날 기다린다. 이렇듯 시험에 쫓기며 살다보면 책을 읽을 여유가 많이 없어서, 굳이 그렇게 많은 책을 살 필요는 없다. 하지만 한달에 2권밖에 새 책을 살 수가 없다는 부분은 여전히 가슴이 아프다. 이 마음의 허전함은 아마 내 집 주변의 도서관이 해결해주긴 할 것이다.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쓴다는 게 이런 것일까, 아무런 계획도 없이, 어떻게 보면 그저 글이라는 충동에 휩쌓여 노트북을 키고 타자를 치고 있다. 공부 하기가 너무 싫다. 그럴 때 마다 난 브런치 스토리에서 글을 읽거나, 내가 집에서 가져온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 지금 타자를 치면서 발견한 것이 있다. 내 오른손이 무진장 떨린다.


 이것이 수전증인지는 모르겠다. 최근들어서 왼손은 멀쩡하지만 오른손은 힘을 조금만 주기 시작하면 덜덜 떨리면서 펜으로 글 쓰기가 힘들 정도로 떨린다. 내 오른손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병원에 가봐야할까. 그냥 가봐야 겠다. 충치라는 존재가 병원은 자주 들르는 것이 좋다고 내게 일깨워준 경험을 되살려 이번 주말에는 학원을 들렸다가 서점을 들렸다가 병원에나 들려야 겠다. 치아가 아파서 몇개월 방치하다가 치과를 갔더니 신경 치료를 했던 그 경험... 나는 그 일 이후로 몸이 조금만 이상하다 싶으면 병원에 간다. 어떤 일의 필요성은 누군가가 말로 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느꼈을 때에 비로소 무언가를 해야겠다느 마음이 생기는 것 같다.


 이제 곧 취침시간이다. 오늘도 무사히 살아온 나에게 스스로 박수를 쳐본다. 짝짝짝. 내일도 잘 버티자. 불타는 금요일과 서점이 나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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