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맞는 게 어렵다

그로기 상태

by 연패맨
그로기 상태


시합을 대비하면서 인파이팅 스타일의 코치님과 스파링을 하게 되었다. 작은 공방이 있은 후, 나는 발을 살려 도망가지 않고 붙어서 싸워보기로 했다. 퍽 퍽 퍽 몇 번의 주먹이 오가다가 쾅 쾅 머리가 울리더니 점점 눈앞이 어두워지는 것을 느꼈다. 헤드기어에 시야가 가려서인지 맞다 보니 내가 눈을 감아서인지 모르겠다. 분명한 건 머리를 연타로 세게 맞으면서 정신을 잃을 뻔했다는 것이다. 즉, 그로기 상태를 경험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빠져나오자 관장님이 스탑을 외며 괜찮냐고 물어보셨다. 괜찮지 않았지만 괜찮다고 말했다. 코치님이 나보다 체중이 10kg로 정도 많이 나가기는 했지만 풀파워로 때린 것이 아닌데도 머리가 하루 종일 어질어질했다. 스파링이 끝난 후 관장님과 코치님 두 분 다 같은 조언을 해주셨다. "투지를 가지고 붙는 것은 알겠으나, 그것은 전략이 아니다. 아웃 스타일을 살려 치고 빠져야 한다." 몸무게에 비해 키가 크고 팔이 긴 나는 원거리 공격을 살리는 게 좋다는 것이다.

한 번 그로기 상태를 경험해보고 나니, 주먹의 무서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풀파워로 치고 박을 시합에서는 상대의 주먹이 얼마나 플지 생각해보니 살짝 두려워졌다(물론 상대도 나의 주먹이 상당히 아플 것이다). 더해서 복싱은 정신력이라는 것을 몸소 깨달을 수 있었다. 그 풀파워의 주먹을 맞으면서도 정신을 잃지 않고 버티는 것은 물론, 오히려 그 고통을 견디며 상대에게 주먹을 날려야 하기 때문이다. 담대함은 물론, 착함과 정함도 필요하다. 복싱은 정말이지.. 어려운 스포츠다.



잘 때리고 잘 안 맞는 것


관장님이 말씀하셨다. "니가 언제 많이 맞는 것 같냐? 때리고 나서야 때리고 나서. 니는 때리는 건 잘해. 근데 한 대 때리고 2대, 3대 맞으면 뭐하냐.. 잘 때리고 안 맞아야지." 복싱은 잘 때리고 안 맞는 것이다. 언제나 머리로는 알고 있는 이 사실이, 사각의 링위에서는 정말이지 어기 그지없다. 관객의 입장에서 보면 그냥 딱 맨몸으로 1대 1로 치고박는 아주 단순해 보이는 스포츠가 복싱인데, 참가자 입장이 되어 복싱을 해보면 그 단순함이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온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상대방과 거리재기, 타이밍 싸움, 맞았을 때의 고통 참기, 정확한 타격, 전체적인 체력 분배 등등 실시간 단위로 끊임없는 계산과 속임수, 반사신경, 체력 등이 요구된다.

또 관장님이 말씀하셨다. "니는 복싱을 너무 정석으로 하고 있어." 이 말이 무슨 말이냐. 잽 원투 같은 정석적인 공격을 아주 일정한 타이밍에 하니 상대방에게 쉽게 읽힌다는 것이다. 몇 주 전 다른 코치님과 스파링을 할 때도 비슷한 말을 들었다. "어떻게 나올지 보이니까 기술이 들어가기가 쉬워요." 그렇다. 생각해보니 스파링을 하면서 때리는데만 집중했지, 딱히 어떤 변칙적인 스탭이나 공격을 들어간 적이 없었다. 긴장을 해서도 있지만, 사실 페인팅을 주거나 치고 빠지는 스탭을 하면 그만큼 체력이 빨리 소진되기 때문도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아웃복서는 인파이터보다 상대적으로 체력 소진이 많이 될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발을 움직이며 뛰고 빠지고 들어가는 스탭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무하마드 알리가 앞으로 달리기뿐만 아니라 뒤로 달리기까지 했겠는가..

앞으로 일주일도 남지 않은 시합, 잘 안 맞기 위한 스탭과 체력훈련에 집중해야겠다고 느꼈다.

이미지 출처 : Sweet Science Lab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