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긴 아깝고 누가 사주면 최고인 그것
나는 혼자 살 때 항상 CD Player와 함께 했는데, 독립 후 첫 오디오도 그때 당시 남자 친구였던 지금의 남편이 선물했었다. 내가 좋아하는 하얀색의 귀여운 아이리버 오디오. 한참 잘 쓰다가 고장 나서 지금은 야마하 제품을 쓰고 있다. 남편 집에도 내 방이 있는데 혼자 자고 싶을 때를 위한 내 침대와 아주 작은 테이블, 그리고 책장에 가득한 책과 CD 음향기기들이 있다. 특히 LP를 조금씩 모으는 중이라 턴테이블이 함께 있는데 이건 동생의 결혼 선물.
이렇듯 나는 듣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TV 없이 사는 건 너무 트렌드를 따라가기 어렵더라. 남편집에서는 빔프로젝트를 사용해서 괜찮은데 내 집에는 그저 아이패드뿐이었다. 아마 남편도 이런 내가 안쓰러웠을까? 몇 번 내 집에 놀러 오더니 깜짝 선물로 스탠바이 미를 배송해주었다.
LG의 스탠바이 미는 덕후인 내게 첫 출시부터 탐났던 제품이다. 그러나, 가격이 사악해서 쉽게 지르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내가 화면/영상을 보는 시간이 길지 않고 꽤 피곤해한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남편이 선물로 주니 내가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은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더라. 우리는 따로 살기 때문에 일부분 함께 투자하는 금액을 제외하고는 각자 알아서 돈 관리를 한다. 그래서 선물에 더 감동하게 된다. 부부의 경제를 하나로 합치면 좀 더 효율적으로 돈을 사용하고 모을 수 있다는 무척 합리적인 장점이 있지만, 이런 깜짝 선물 같은 이벤트를 느끼기는 좀 어려우니까. 덕분에 나는 평소보다 빨리 크리스마스 무드에 젖었다. 영상을 보지 않을 때도 유튜브로 캐럴 플레이리스트를 켜놓고 지낸다. 조금 행복해진 기분.
집순이인 나는 이렇게 내 집안에 있는 가전, 가구를 포함한 여러 물건들을 마치 친구처럼 사랑하게 된다. 그래서 처음 집에 들일 때 내 마음에 드는 디자인과 집에 어울리는 컬러는 필수다. 단지 쓰임만으로 선택된 제품들은 결국 손이 안가 그 쓰임마저 사라지는 일들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집은 나의 안전지대이고 나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니 공들여 하나하나를 고르고 싶은 마음이다. 그렇다고 굉장히 센스 있게 집을 꾸미는 디자인적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내가 만졌을 때 좋은 촉감, 내가 선호하는 향기, 좋아하는 컬러 같은 것들을 꼭 갖춰야 한다. 나는 글씨가 크게 쓰여있는 제품을 좋아하지 않고 보통은 웜한 크림 컬러에 가까운 화이트를 선택하는 편이다. 집안의 포인트 컬러는 내 머리 색깔이기도 한 파란색이고 그래서 파란색의 보색인 노란색도 포인트 컬러로 사용하고 있다. 물건 하나하나에 마음을 쓰게 되는 것. 내 공간이라는 확신이 주는 편안함. 그 누구의 방해도 없고 협의해야 할 일도 없는 나만의 공간을 너무 사랑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혼자 사는 삶에 다시 한번 더 만족하게 된다. 이렇게 사는 것도 좋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