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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사 Jan 18. 2023

명절에 시가먼저 가는 거 너무 싫어요

근데 우리 엄마가 그럼

딸만 있는 집의 서러움은 쓸쓸한 명절이라는 말을 들었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나도 항상 친가에 먼저 갔다가 외가를 가곤 했는데, 그래서 제일 속상한 것이 외숙모를 만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외숙모는 나에게 특별한 감정으로 남아있는데 '어쩜 저렇게 예쁜 언니가( 당시에 대학생 언니처럼 느껴졌다) 우리 외삼촌이랑 결혼을 한다니'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다.


외숙모는 나에게 있어서 시집살이하는 안타까운 독녀였고(오빠들만 있으심) IMF 여파를 정면으로 맞으며 고운 손에 물집 잡히도록 일을 해낸 멋진 여자였다. 그래서  외숙모를  좋아했는데  맘이 전달된 것인지 외숙모도 특별히 예뻐해 주신다. 몇 년이나 보지 못한 외숙모가 특히 보고 싶은 날이다. 하지만 외숙모가 외숙모의 가족을 더 먼저 만나기를 바란다.






친가에 먼저 가고 외가에 먼저 가는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암묵적인 규칙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스트레스가 발생한다. 누구나 자기 집 먼저 가고 싶겠지. 혹은 여행을 떠나거나.



이렇게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나도 명절엔 시가에 먼저 가곤 한다. 친정 근처에 살고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세상의 암묵적 규칙을 온 식구에게 깨라고 하기엔 용기가 없어서이다. 특히, 우리 엄마는 평생을 시가 식구들을 케어하며 사셨고 이는 현재 진행형이다. 나는 우리 집부터 가고 싶은데, 엄마는 이미 할머니 댁에 가 계신 것이다. 엄마를 만나기 위해서는 할머니 댁을 가야 하고... 결국 도돌이표다.


엄마는 항상 헌신적으로 가족 모두를 돌보셨다. 명절 전부터 미리 음식을 하고 과일을 사고 선물세트를 준비해서 바리바리 싸서 시가에 가셨다. 어릴 적에는 친할머니 댁에서 이 삼일 자고 외할머니댁으로 가 하루 자는 것이 익숙했다. 엄마도 엄마의 엄마를 먼저 만나 어리광 피우면서 명절을 보내고 싶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면 마음이 불편하다. 결국 나도 엄마의 희생으로 자라났기 때문에.







내가 기억하는 내 나이대의 엄마는 아이를 둘이나 키우는 너무나 완벽한 어른이었는데 나는 여전히 회사에서 안 풀린 일 가지고 집까지와 끙끙 앓는 애송이일 뿐이라 답답하다. 가끔 인류가 점점 멍청해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무언가를 해결해야 할 때 가장 많이 생각한다. 아직도 엄마에게 전화해서 징징 거리는 나는 엄마의 또 하나의 짐일 뿐이다.


그래서일까? 엄마를 너무 사랑하고 존경하지만 역시 엄마처럼은 살기 어려울 것만 같다. 자신을 희생해서 일가를 아루는 그런 삶. 그래도 다행인 점을 굳이 찾자면 남편이나 시가가 꽉 막힌 것은 아니라 명절에 꼭 가야 하고 꼭 만나야 하고 그렇진 않다는 것. 실제로 꽤 여러 번 서울로 오셔서 간단히 식사하시고 내려가시기도 했으니, 이런 기억들로 위로해 본다.


그렇지만 올해는 시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첫 명절이라 아무래도 남편고향에 가는 것이 맞는 것 같아 내려가기로 했다. 기왕 가는 것 맛있는 밥이나 먹고 올라와야지! 회사에서 명절 앞뒤로 쉬게 해 주어서 내 할머니댁에 들릴 시간도 있을 듯하다. 이런 것으로 위로하는 내가 구질구질하다. 명절은 가족 모두가 모여 안부를 묻고 해후하는 것으로 알았는데 명절다운 명절 보내기가 참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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