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 아주 작은 움직임, 조용함, 아름다움
출근 지하철은 항상 잠실철교를 건넌다.
계절의 변화, 날씨의 변화, 날의 흐름을 잠실 철교를 건너면서 느낄 때가 많다. 아, 물이 많이 불었네, 비가 많이 왔구나, 어머 수면이 얼기 시작했네, 정말 추워지는구나, 강둑이 노랗게 물든 것을 보니 이제 봄이구나, 수면이 거친 것을 보니 바람이 많이 부는구나 등등, 어느 날의 한강 수면은 놀랍도록 잔잔했다. 물이 흐르는 건가 싶을 정도로 잔잔한, 거의 움직임이 없어 보이는, 햇빛을 반사하여 눈부시게 반짝거리는, 약간 울퉁불퉁한 거울 표면을 연상시키는, 검푸른 색과 밝은 흰색이 뒤섞여 있는 표면. 손으로 쓰윽 쓸면 매끄러울 것 같은 느낌. 한강이 이렇게 잔잔한 날은 흔하지 않다. 그래서 생경했고, 그래서 머릿속으로 쑥 파고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잔잔한 표면. 무언가 움직이고 있지만 그 움직임이 너무 작아서 움직이지 않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 움직이지는 않지만 빛 반사로 인해 윤슬이라는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것. 물의 표면은 종종 사람의 마음에 비유되기도 한다. 태풍이 몰아치는 것 같은 마음, 거친 파도가 이는 마음, 콸콸 쏟아져 흐르는 마음, 졸졸 흐르는 마음, 잔잔한 마음, 얼어붙은 마음. 힘차게 흘러가는 표면과 같은 마음은 몸에 에너지를 주고, 집중력을 높이며, 목표 중심적으로 몰입하게 해주는 힘이 있다. 콸콸 쏟아지는 마음은 감정을 주체하기 어렵고 무언가에 이 마음을 쏟아내고 싶어 지면서 다소 다급하고 불안해지게 하는 경향이 있다. 마음이 얼어붙으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고, 아무런 힘이 없으며, 그저 가만히, 어떤 자극에도 반응하지 않는, 말 그대로 얼음 같은 냉기가 몸 밖으로까지 스멀스멀 뿜어져 나오게 하는 파괴력이 있다. 하지만 잔잔한 마음. 아주 평화롭고 조용한 마음. 외부 자극에 잠시 파문이 일기도 하지만 파문이 지나가고 나면 다시 잔잔해지는, 편안하고 고요한 마음. 주로 잔잔한 무언가를 보거나 그러한 공간에 있을 때 마음도 같이 잔잔해지는 듯하다. 피크닉을 가서 혼자 조용히 멍 때리고 있을 때, 강이나 호숫가에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을 때, 간이 의자에 앉아서 산을 바라보고 있을 때, 전망 좋은 카페 창가에 앉아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생각에 잠길 때, 세상 무해한 내용의 책을 읽을 때. 그러다 무언가 예쁘거나 귀엽거나 기분 좋은 것이 지나가면 마음이 반짝 움직인다. 눈으로 좇는다. 그러다 사라진다. 그러면 다시 잔잔해진다. 몸은 사무실에서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지만, 왠지 마음은 잔잔해짐을 느낀다.
개인적으로 잔잔한 마음을 가장 선호한다. 자주 찾아오지 않아서 일 수도 있고, 가장 에너지가 적게 들면서 외부에 티가 나지 않아서 일 수도 있다. 평화롭고 고요하고 그러면서 너무 멈춰있는 것도 아니지만 방해받고 싶지는 않은 마음. (사무실에서는 유지하기 불가능한 마음이기도 하다.) 집에 있을 때는 뜨개질을 하면서 잔잔한 마음 상태를 갖는 시간을 만들곤 한다. 한 땀 한 땀, 한 줄 한 줄 떠 나가다 보면 나도 모르는 새 마음은 잔잔해지고, 시간도 훌쩍 가버리고 만다. 어젯밤에도 바라클라바를 끝까지 뜨겠다고 늦은 시간까지 뜨개질을 하는 바람에 자는 시간이 늦어버렸다. 결국 선물용으로는 완성도와 크기가 부족해서 내가 쓰는 걸로 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긴 했지만. 잔잔한 잠 속으로 들어간다. 잠 속에서도 각종 꿈에 시달리는 흔들리는 나보다는 잔잔한 내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반짝이는 윤슬과 같은 아름다움을 조우하기를 바란다. 그럼 굿나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