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민이 저녁 식사를 채 마치기 전, 경희는 보란 듯이 청첩장을 찢어 우민을 지나 분리수거함에 던져 넣었다. 경희의 퍼포먼스에 우민이 밥을 씹는 속도가 느려졌다.
결혼을 앞두고 프러포즈를 할 때 내밀었던 청첩장 봉투에는 ‘나랑 결혼해 줄래요? 대답이 ‘No’라면 열지 마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투박한 글씨체와 상투적인 문구여서 더욱 마음에 들었었다. 너무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삶을 함께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던 것 같다고, 경희는 돌이켜 생각했다.
어떤 점이 좋아 결혼을 결심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 평소 말하기보다는 듣는 편을 선호하는 자신의 성향과 달리, 계속해서 무언가 이야기를 꺼내게 되더라는 점을 경희는 가장 먼저 꼽았다. 또 어떤 것이 있는지 묻는다면, 데이트하던 시절 경희의 판단에는 약간 노티 나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한, 깃이 다소 헐렁해진 긴소매 셔츠를 즐겨 입는다는 점이었다.
결혼 후에는 다 떨어진 옷을 끝내 버리지 못하게 하는 것도 무척이나 안심이 되었다. 지나치게 멋을 부리는 사람은 믿음직스럽지 않은 편이라는 판단은, 아버지의 해어진 속옷을 개며 어머니가 입버릇처럼 하신 말씀을 통해 형성된 관념일 것이었다.
필부필부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는 안도감에, 경희는 이러한 일화를 짐짓 투덜거리듯이, 하지만 애정을 담아 자랑스레 이야기하곤 했었다. 평범한 삶을 함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우민은 세상에서 가장 특별했다.
바람이 마음에 스쳐가는 일들을 몇 차례 겪으면서 경희는 스스로가 불안하게 여겨지던 시절도 있었다. 교회의 누군가가 멋지게 보인다거나, 누군가의 눈빛에 마음이 설렌다거나, 다른 누군가의 탁월함을 닮아가고 싶다거나 하는 마음이 괴로움으로 번지는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경희는 자책했고,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탐독하던 어머니를 떠올렸고, 마음의 파문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시일이 다소 지속되는 어떤 파문에 대해서는, 기도하며 의식적으로 성경을 펴 들었다. 세월을 뚫고 가정을 지켜낸 부모님에 대한 생각 또한 경희가 마음을 다잡는 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혹자는 의리로 산다는 말을 농으로 삼지만 '의리야말로 사랑의 가장 완성된 형태'라는, 어쩌면 어디선가 들었을지도 모를 말을 생각해 낸 자신을 대견하게 여기며 경희는 결혼을 꿈꾸는 젊은 연인에게 제법 설교를 하기도 했다.
현재의 우민은 다른 의미에서 매우 평범하고, 그래서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평범한 점이라면 경희도 분명 경험하여 알고 있는 어떤 흔들림을 동일하게 느꼈다는 점이다. 남들 다 저지른다는 외도를 실천한 것 또한 '평범함'의 범주에 속하는지도 모른다.
우민의 특별한 점은, 경희가 견뎌하기 힘들어하는 어떤 사람들과 매우 비슷한 방식으로 경희를 고통스럽게 한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다른 어떤 사람과는 견줄 수 없을 만큼 특별한 점을 우민은 보유하게 되었는데, 남녀노소 유추할 법한 일련의 사실을 전혀 인식하려 들지 않는다거나, 한 때 매우 사랑하던 한 사람의 절규가 고스란히 담긴 글에 대해 독자를 끌어모을 수나 있겠냐는 조롱을 함으로써 철저한 비애감을 안겨준다는 점이었다.
경희 또한 의지적으로 사랑하기로 했던 누군가의 치부를 낱낱이 드러내는 잔인한 행동까지 서슴지 않게 되었다는 점에서 누군가에게 둘도 없이 특별한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경희가 퍼포먼스를 통해 찢은 것은 請牒狀이 아니라 請妾場이 된 가정, 그리고 자신과 아이의 마음이었다고 해두자. 찢겨나간 대상에서 우민의 마음을 의도적으로 배제하여 혹시 상처를 주었다면,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
하지만 기억하자. 경희는 뛰어내리고 싶지 않아 하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