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 구석의 옆 테이블을 지키던 연인을 포함한 독서객이 하나둘 자리를 비웠고, 점원이 다가와 폐점 시간이 임박했음을 알렸다.
경희가 마침내 휴대전화 전원을 켬과 동시에 경찰 실종 신고팀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수사팀에서는 실종이 아니라는 사실만 확인하면 되며, 위치 확인까지 해주지는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었다.
이상한 패배감으로 인해 답신은 하고 싶지 않았으나, 당직 근무를 무사히 마치고 성탄절을 맞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을 경찰관의 모습이 떠올랐다.
경희는 만지작거리던 휴대전화 측면의 버튼을 눌러 액정을 켜고,
‘실종 아닙니다’라는 답신을 남기고,
휴대전화 전원을 다시 차단한 뒤,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어두운 밤거리를 걸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인적이 드문 거리의 취객이 무섭게 느껴졌고, 숙소를 잡기는 더욱 무서웠기에 하릴없이 지하철역 계단으로 접어들었다.
경희처럼 혼자였던, 역사 내 의자에서 웅크린 채 잠든 이를 무심코 지나쳤다가, 돌이켜 가방 속에 있던 찰떡을 꺼내 옆자리에 놓아두고는 개찰구에 카드를 갖다 대었다.
퉁퉁 부은 눈으로 현관을 들어서는 경희의 품에 와락 달려들어 안겼으나 차마 접착이 이루어질 수는 없었던 아이가 품에서 떨어져 나올 때쯤, 우민은 웃는 얼굴로 ‘잘 왔다’고 말했다.
경희의 편에서는 형용하기 힘든 분노가 일었다.
우민의 편에서는,
스릴만점이었던 애정행각의 결과물에 대한 검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물증’이랄 것이 없어지게 된 마당에, (애초부터 실종 신고까지 할 생각이 없었으나 장모의 종용으로 인해 마지못해 신고를 했는데,) 역시나 경희가 알아서 집으로 기어들어오는 꼴을 보는 순간의 만족감이랴.
물론 안도감도 섞여 있기는 했을 것이다.
경희가 이불의 무게를 이길 수 없던 아침, 우민은 아이와 함께 빨래를 접으며 성탄절 노래를 흥얼거렸다.
역시나 찬양은 정말 강력하게 역사하는 힘이 있는 것일까, 경희는 이불도 문도 세차게 박차고 나올 수 있었다.
‘엄마, 꼭 돌아오셔야 해요.’
아이는 엄마에게 말했다.
또 다른 아이가 엄마에게 말했다.
‘저는 괴로워서 죽을 것 같은데 아침부터 노래를 흥얼거리는 사람과는 도저히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없어서 뛰쳐나왔어요. ‘나는 아무 편도 안 든다, 혹은 네가 참거라’라는 말씀도 저를 지독하게 외롭게 해요. 혼자 책 좀 읽고 시간 보내려 해요. 심려 끼쳐드려서 죄송해요. 죽고 싶지 않아서 나온 거예요.’
그리고 아이는 또 한 차례 휴대전화 전원을 차단했다.
연어김밥과 콩나물 라면으로 간단한 요기를 하며, 밥이 이토록 잘 들어간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던 아이는, 이번에는 동네 책방에 틀어박혔다.
책을 읽는 동안 김밥집에서 눈물을 닦다가 주머니에 접어 넣었던 냅킨이 젖었다 말랐다를 반복했다.
퉁퉁 부은 눈으로 온 동네를 찾아다니던 어머니가 역시 눈이 퉁퉁 부었지만 커피를 마시고 싶었던 딸과 마주한 것은, 이틀 전 CCTV 확인 결과와 DNA 검사 등에 대해 논의하며 딸을 다독이던 커피숍 앞이었다.
가게에 잠시 다녀올 테니 그네 타고 있거라.
아버지는 바로 앞 가게에 담배를 사러 가며 네 살배기 경희에게 당부했다. 없어진 경희를 찾아 온 장터를 헤매던 아버지는, 골목 저쪽에서 눈물범벅이 된 채 ‘아빠~’하고 소리치며 뛰어오는 경희의 표정과 목소리를 이후로도 많이 흉내 내며 안도감을 나누곤 했다.
산책로의 찬 바람이 모녀의 눈의 부기를 가라앉히는 동안, ‘너는 내 사랑하는 딸이다, 네 마음 편한 대로 하거라,’ 어머니는 딸의 손을 부여잡고 몇 번이고 되뇌었다.